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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31. 한국 전통의 현대화

이대형


전통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문화에 있어서의 전통이라함은 과거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맞게 변형되고 창조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특정 목적을 위해 새롭게 재해석되고 변형될 수 있다. 따라서 전통은 국가, 민족, 종교,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표현해내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계층간의 이익을 대변하는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으로 변질·왜곡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 진짜가 아닌 가짜일 수 있고, 휴지통 옆에 방치해 놓은 낡은 달항아리가 진짜일 수도 있다.
3년 전 드라마 ‘궁’을 기억해보자. 당시 선보인 한복과 전통가구들이 황실 스타일로 되살아나 시청자를 매료시켰다. 옛것이어서 촌스럽다고 치부했던 전통 가구들이 황실 가족들이 사용하면서 명품가구로 탈바꿈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전통의 가치는 어떤 문맥에 놓이는가에 따라서 유동적이다. 그래서 그 가치를 표피적인 스타일에서 찾기 시작한다면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수 있다. 표피에 집착해서는 정확한 답을 구할 수 없다. 그 밑에 흐르고 있는 정신, 철학, 삶을 읽어내고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전통은 당대의 모던이다. 옛 스타일 그대로 지켜서는 전통이 살아 남을 수 없다. ‘전통의 원형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의 질문은 ‘전통 속에 담긴 철학과 정신을 어떻게 지켜내고 현대적으로 변용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지난해 겨울 코엑스에서 있었던 디자인하우스 주최 서울리빙디자인 페어 현장에서 장방형의 낯선 건축물을 만났다. 격자 나무를 이어 붙여 거대한 실내 공간을 만들고 그 외벽을 한지로 마감했다. 낯선 외관과 다르게 친숙한 내부 공간 안에는 다양한 전통 장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건축 디자이너 김백선의 아트 디렉팅과 전주의 무형문화재 9인의 장인정신이 만나 색다른 전통 디자인이 태어났다. 이들 장인들이 소중하게 지켜온 전통 스타일을 세계에 알리며 세계시장과 소통할 수 있도록 현대화시킨 작품들이다. 말 그대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좋은 작품들이다.
옛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다. 단순히 옛것을 되풀이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도 없다. 여백의 미와 추상화적인 건축으로 유명한 김백선 건축 디자이너에게 한국적인 전통,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전통 한국의 미는 보여지는 스타일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발현되는 정신에 있습니다. 일본 건축의 지붕이 직선적이고 한국의 그것이 살짝 말아 올라가고, 중국은 좀 더 휘어진다는 식의 표피적 양식에 근거해 한국적인 전통을 단정지어서는 안됩니다.”
그의 말대로 전통은 표피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단순히 전통에 대한 오마주에 머물러서도 안된다. 그랬다가는 전통이 현대에서 살아 호흡할 수 있는 자생적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김백선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국의 그림, 도자기, 사방탁자(동서남북 사방이 트여 있는 다층의 탁자) 등 전통철학과 미학에 대한 학습을 강조했다. 조선후기 서화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볼 줄 알고, 조선 백자의 가치를 읽어 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한국 전통 디자인의 현대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 기 사방탁자가 하나 있습니다. 홀로 있을 때는 그저 탁자이지만, 공간 개념이 확대되면 다른 차원의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방이 되고, 집이 되고, 정원이 되는 것이지요. 일방향 감상이 아닌 쌍방향 소통을 활용합니다. 전시장을 설계할 때 항상 떠올렸던 모티브가 바로 이 사방탁자입니다. 이는 누각을 만들 때 선비 두 사람이 누각 안에서 서로의 대화가 물소리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물과 방 사이에 두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개념이 표피적 양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요.”
그 럼 전통이란 무엇일까? 시골 할머니댁 사랑방 한쪽을 지키고 있는 병풍과 자개함을 말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인가? 둘 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두 영역이 소통할 수 있는가다. 과거와의 소통, 장르 간 소통 그리고 시장과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의미로 전통을 지켜내는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요즘 ‘한국’이 대세다. 한식세계화추진단이 발족됐고, 고급 아파트에 한옥을 입히는 것이 세련된 행위로 인식되고, 수입가구 대신 한국 스타일의 가구가 주목받고 있다. 전통 한국 스타일을 복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발빠르다. 이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시대다.
사 람들은 산 꼭대기 위의 정자를 보면 거기를 꼭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막상 정자 위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면 다시 그 멋진 풍경을 쫓아내려간다.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소통을 이끌어 내는 공간, 그리고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주는 공간, 그리고 보다 많은 장르가 결합되어 새로운 전통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원본 : http://www.fnnews.com/view?ra=Sent1301m_View&corp=fnnews&arcid=090716165430&cDateYear=2009&cDateMonth=07&cDateDay=16
▲ 건축디자이너 김백선
▲ 지난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선보인 전주 전통공예품 통합브랜드 '온(ONN)'. 건축디자이너 김백선이 기획하고 소목장 조석진과 김재중, 선자장 조충익과 이기동, 악기장 최동식과 고수환, 옻칠장 이의식, 침선장 최온순, 한지발장 유배근이 참여해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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