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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29. 세계 미술시장에 아시아 바람

이대형


300개가 넘는 유니트를 관리하고 있는 건물에 입구가 단 하나밖에 없다. 입구에는 24시간 경비요원들이 철통 보안으로 지키고 있다. 불법 침입을 알리는 알람은 기본이고,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을 촬영하여 컴퓨터로 실시간 송출시키는 폐쇄회로가 긴밀하게 내부를 감시한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각 유니트를 분리시키는 철문이 작동해 화재가 번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무엇을 보관하고 있는 공간이길래 미션임파서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보안을 하고 있는 걸까. 여긴 다름아닌 미술품을 보관하는 수장고다. 이 수장고가 그 유명한 크리스티 파인아트수장고(Christie’s Fine Art Storage Services·CFASS)다.
크 리스티의 자회사이기도 한 CFASS는 매우 특별한 컬렉터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작품이 너무나 많거나, 집에 두기가 두려울 만한 가치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컬렉터들의 니즈를 반영한 수장고다. 그래서 CFASS의 비즈니스 현황을 살펴보면 미술시장의 판도를 알 수 있을 정도다. 24년 전 런던에 처음 생긴 이래 수장고의 기준이된 CFASS는 온도, 습도 컨트롤과 방화는 기본이고 365일 24시간 철통 같은 보안으로 귀중한 작품을 보관하는 미술품의 안전은행 역할을 해왔다. 런던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전 유럽 고객들의 목소리에 경청할 수 있었던 CFASS가 미국에 이어 아시아에 수장고를 만들 계획을 지난 5월 발표했다. 900억원이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근처에 만들 계획이다. 2010년 1월 완공된다.
크리스티의 이번 발표는 두 가지 변화된 미술시장 상황을 예고한 다. 첫째는 프라이빗 세일즈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특히 경제 불황에 따른 위축된 소비심리를 두려워한 컬렉터들은 옥션에 출품하기보다는 프라이빗 세일즈를 선호하게 된다. 투명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 옥션 거래를 꺼려하기 때문에 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시켜주는 프라이빗 세일즈 시장이 주목받게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수장고는 매우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중개자는 위작이 아닌 진품임을 확인시켜주고,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의 신분노출 위험을 보호할 수 있다.
둘째는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요성이다. CFASS가 아시아 지역에 진출한다는 소식은 아시아 지역 컬렉터와 작가, 작품의 중요성이 전체 미술시장에서 갖는 비중이 얼마만큼 상승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 홍콩, 한국, 인도, 일본, 동남아시아 등 3∼4년 동안 급성장 한 아시아 미술시장의 잠재력은 이미 유럽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실제 얼마 전 있었던 홍콩 경매와 아트페어는 “불황이 이제 끝났나?”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런던과 뉴욕 시장이 아직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이다. 아직까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수요가 부족한 아시아의 지역적 특성도 이 지역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쉽게 말해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컬렉터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동시에 기존 컬렉터들의 취향이 점차 국제적이고 현대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미술시장이 앞으로 2배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심리다.
아 시아에 대한 관심,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젤 아트페어에서 유독 에니시 카푸어 등 인도 작가와 일본 작가들이 자주 거명되었고, 런던의 필립스 드 퓨리와 사치 갤러리는 문제너레이션 전시를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을 새로운 대안으로 조명하며 전시를 9월 초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고, 로스앤젤레스의 LACMA 역시 ‘당신의 밝은 미래: 한국현대미술전’을 통해 최정화, 전준호, 서도호 등 12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은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도 한창이다. 특히 이탈리아 일간 경제신문 ‘일 술레 24시(Il Sole 24 Ore)’에서 한국 현대미술에 주목해야 한다며 조만간 특집기사를 내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 한국, 특히 인도의 투기자본이 미술시장을 한 때 흔들어 놓았지만 아시아 미술시장의 잠재력은 런던과 뉴욕의 메이저 자본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제2회를 맞이한 홍콩 아트 페어 2009는 2008년 첫해의 성공에 대한 부담과 어려워진 미술경기에도 불구하고 1회 때보다 더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였다. 중국 스타일의 그림이나 장식적인 그림을 대신해 거대한 조각작품과 멀티 미디어 작품이 행사장을 채웠고 결과는 호평을 이끌어 냈다. 2009년도 페어에 참여한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와 런던의 화이트 큐브 화랑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홍콩 시장, 아시아 시장의 자신감이 이제는 상당 수준 올라왔다.
따 라서 세계미술시장 속 아시아 미술, 또 그 속의 한국미술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자신의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의 규모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필립스 드 퓨리처럼 상업적인 기관에서 한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그 콘텐츠를 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이 클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흔히 작가들이 혼동하는 것이 있다. 가장 흔한 실수가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글로벌 전략을 세운다는 목표를 세우고 ‘작품 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국제적인 코드에 맞춰서 제작해 나갈까’의 고민에서 시작된 실수다. 콘텐츠는 절대적으로 로컬리즘에, 개인주의적 경험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다. 글로벌리즘은 콘텐츠가 아닌 그 콘텐츠를 가공 유통시키기 위한 작품 외적인 마케팅 전략과 연관된 단어이어야만 한다. 독일, 런던, 뉴욕에서 봤던 외형적인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 매년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품으로 미디어를 도배한다. 불쾌함을 넘어 불길한 데자뷰다. 그렇게 대표선수로 나간 수많은 작가들 중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작가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뿌리 없이 환영만을 쫓아가면 지나온 길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문화사대주의의 강박증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낼 때다. 그것이 진정 글로벌 리더가 되는 길이다. 세상의 눈은 우리를 바라보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데, 거기에 대고 아직도 신데렐라, 백설공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 이제 아시아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원본 : http://www.fnnews.com/view?ra=Sent1301m_View&corp=fnnews&arcid=090702163347&cDateYear=2009&cDateMonth=07&cDateDay=02
▲ 인도 작가 애니쉬 카푸어가 수은방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거대한 설치조각품. 카푸어는 뉴욕 MoMA와 테이트 모던 런던, 베니스 비엔날레 등을 통해 가장 국제적으로 성공한 아시아 미술작가다.
▲ 전준호 작가의 하이퍼 리얼리즘 시리즈 중 백원자리 북한 화폐 속 김일성 생가로 걸어들어가는 남자 등 불가능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런던 사치갤러리 문 제너레이션 전시와 LA LACMA 전시에 동시에 참여한 전준호 작가는 올 11월에는 일본화랑 스카이 더 베스하우스의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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