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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27. 현대미술 작가로 성공하려면

이대형


“전시를 해도 신문기사 한 줄 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작품을 잘 아는 주변사람 이외의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고요. 그러니 초대전시를 해주는 화랑을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죠. 수백만원을 들여 도록도 만들고 초청장도 보내는데 왜 사람들이 몰라 줄까요?” 사립미술관 협회에서 기획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있었던 특별 강연 중 작가 A가 스스로를 ‘아마추어’ 작가라고 소개하며 물었다.
왜 똑같이 열심히 작업하는데 누구는 주목받고 누구는 그러지 못할까. 실제로 작품성이 떨어져서(?), 혹은 너무 상업적이어서(?). 그렇지 않다. 작품성이 떨어진다거나 너무 상업적이어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이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가 있다. 그 변수는 작품 외적인 환경을 말한다. 세상에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의 숫자는 많다. 그러나 공간과 기회는 한정적이다. 필자는 ‘아마추어’ 작가 A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싶다.
현대미술은 퍼즐과 같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 쉽게 싫증나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만들어 버리면 게임 자체를 포기하기 쉽다. 좀 쉽게 만들어 놓으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보급형이 되지만 이런 보급형을 가지고서는 마니아층을 공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만들어 버리면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보급 자체가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너무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수준 높은 퍼즐을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려워서 보급하기 힘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퍼즐을 만들 것을 조언한다. 복잡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더욱 좋다. 여기서 명심할 부분은 난해한 퍼즐의 출발점이 작품 내적인 구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물리적인 구조가 아니라 의미의 구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 그럼 이 퍼즐을 즐길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모을 수 있을까.
해답은 의외로 작품 밖에 있다. 개별 작품이 아닌 작품이 놓이는 전시, 전시장, 전시 시기 등 작품의 외적인 환경 말이다. 이 외적 환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리고 이 어려운 퍼즐에 접근하는 통로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는 미디어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통로, 큐레이터가 작품을 이해하고 그 작품을 선택하기까지의 통로, 관객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통로, 컬렉터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통로 등 다양한 형식의 예상 통로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여 기 빵 하나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 빵을 12시간 안에 팔아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당신은 조악하게 생긴 빵을 들고 고민한다. ‘이걸 어디다 팔아야 하지? 아 생각났다. ○○여고 앞이 좋겠다.’ 학생들 하교 시간에 맞춰서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크라운 베이커리, 파리 바게트, 던킨 도너츠 등 거대한 제과점이 이미 학교 앞을 점령하고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 좀 어수룩해 보이는 여고생을 잘 설득해 기어이 빵을 팔았다. 성공적인 하루였다. 그런데 내일 또 다시 빵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에 쥐가 난다. 당신은 직접 만든 빵이 주변 다른 경쟁 업체와 비교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대형 업체들이 다양한 맛의 여러 빵을 바탕으로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어 쉽지 않은 경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 당신의 빵을 사먹은 순진한 여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의 빵이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여고생들은 직접 먹어보지 않는 이상 그 맛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아무도 먹어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 포장을 바꿔볼까? 빵과 함께 팔 수 있는 사이드 메뉴는 무엇이 있을까? 빵 이름은 뭐라고 해야 사람들이 기억해줄까?
다시 미술로 돌아와 보자. 빵을 팔거나 미술을 팔거나 이 서로 다른 상품의 판매에 적용되는 전략은 상당부분 비슷한 면이 많다. 먼저 타깃이 되는 시장을 파악해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판매할 것인지 분석한다. 여기서 판매라는 말은 빵 하나, 그림 한 점 등 물리적인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지의 소비를 의미한다. 그림 한 점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미디어, 관객, 컬렉터 등 다양한 단계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아마추어리즘’의 껍질을 탈피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시급한 일은 작가 스스로 정의 내리고 있는 ‘현대미술’ 혹은 ‘아름다움’이란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굳어버린 딱딱한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즉 새로운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여기 사진 두 장이 있다. 하나는 천사를 표현한 조각 작품으로 보이고 다른 하나는 속옷 패션쇼에 천사의 날개를 달고 나온 모델을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는 천사, 다른 하나는 천사가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만약 이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의 날개 단 모습을 조각기법으로 다시 재현하고, 조각 작품의 의상과 날개를 실제 공간에서 재현해 사진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그럼 상황은 역전된다. 우리가 천사라고 부른 진짜 이유는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오래된 선입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현실 속에 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천사는 표현하는 매체에 따라, 상황 문맥에 따라 가짜가 되기도 하고 진짜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스스로 ‘아마추어리즘’의 굴레에 갇혔다고 상담하는 작가 A는 우선 스스로 자신이 줄 그은 동그라미 밖으로 나오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변화와 소통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룰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구조적인 눈과 더불어 소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을 때 어렵지만 도전해 볼 만한, 안 해보던 퍼즐게임이 완성된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원본 : http://www.fnnews.com/view?ra=Sent1301m_View&corp=fnnews&arcid=090618162750&cDateYear=2009&cDateMonth=06&cDateDay=18
▲ 천사는 표현하는 매체에 따라, 상황 문맥에 따라 가짜가 되기도 하고 진짜가 되기도 한다.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 패션쇼에서 한 모델이 천사의 날개를 달고 워킹을 하고 있다(사진 왼쪽). 오래된 성 에쉬비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천사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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