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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25. 아트펀드 이제 시작이다

이대형


미처 경험해보지 않은 장기 호황은 필요 이상의 갤러리, 경매회 사, 아트페어, 아트펀드를 낳았다. 뒤이어 불어 닥친 경제불황과 미술시장 침체 속에서 수많은 미술관련 파생업종이 문을 닫았다. “시장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미술계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미술 본연의 모습을 되찾자!”라는 희망을 담은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지만 희미해지는 메아리처럼 이내 꼬리를 감춘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금융계의 브레인들은 어떻게 하면 미술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바닥시세를 노려 주식을 사들이는 보텀 피셔(bottom fisher·최저점에서 매입하는 사람)의 전략과 자본이 미술시장에 흘러들고 있다는 관측과 경기부양을 위해 긴급 수혈된 자본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경우 희소성을 담보하고 있는 예술작품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6 억6000만달러(약 8000억원 상당)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캐슬스톤 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인 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 야스퍼 존스(1930∼), 척 클로스(1940∼) 등 주로 작고한 작가나 원로급 작가들의 작품을 주요 펀드 대상 작가로 선정하고 있는 캐슬스톤의 판단 기준은 자산의 희소성이다. 불황기가 장기화되고 순차적인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자본 확보가 아닌 현대미술품 확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 불황을 겪고 있는 세계 경제가 올해 마이너스 1.3%의 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시장에 쏟아 부은 7870억달러 등 각국의 경기부양자금과 무관하지 않다.
이 처럼 자본의 양은 인위적으로 늘어날 수 있지만 미술작품, 특히 작고한 작가의 작품은 더 이상 생산될 수 없기에 그 숫자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 이후 또한 미술사의 한 부분을 소유할 수 있다는 지적·감성적 충족감까지 더해져 황금을 사재기 했던 자본이 다시 미술시장으로 유턴하고 있다. 올해 9월 말까지 900만달러어치의 작품을 더 구입할 계획을 밝힌 캐슬스톤은 현재 장 미셸 바스키아, 루초 폰타나, 윌렘 드 쿠닝, 알렉산더 칼더, 리처드 프린스 등의 작품을 구입하며 1600만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6개월간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양대 경매 회사에서 발표한 매출 규모와 작가별 가격 분석은 시기에 따라 적게는 20%, 많게는 50% 하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캐슬스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작품 구매를 계속하고 있다. 이유인 즉 2∼3년 안에 결과보고를 해야 하는 단기 상품의 실패를 거울 삼아 8년이라는 장기 프로그램을 차별화 전략으로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지난 10년 동안 가치가 3배 이상 오른 품목으로 금과 미술작품뿐이라는 통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1 억달러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파인아트펀드 그룹은 지난 2007년까지 연간 평균수익률 23%를 기록한 아트펀드 회사다. 이 회사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30% 상당의 영업손실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작품을 더 사들이고 있다. 경기부양책에 의한 통화 재팽창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일 경우 가지고 있는 작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들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파인아트펀드의 호프만 대표는 스페인 은행이 소장하고 있는 시가 40억원 상당의 피카소 작품과 25억원 상당의 신디 셔먼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펀드 레이징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트펀드는 무엇을 사야 하나. 황금은 누가 뭐래도 황금이다. 순도와 무게만이 중요할 뿐이다. 반면 미술작품은 에디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상품이다. 그럼 어떤 하나가 투자가치가 있는 것일까. 몇 가지 고려 사항을 살펴보면 첫째, 영구히 기억될 미술사적 가치 둘째, 미술관 전시에 어울릴만한 성격 셋째, 개인 컬렉터뿐만 아니라 기업, 미술관 컬렉션의 가능성 넷째, 최소 2개 국가 혹은 2개 이상의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품목이어야 한다. 이 네가지 요소를 조합해 보면 누구누구의 작품이 한시적인 거래가이고 누구의 작품이 계속해서 미술사에 남게 될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기억되고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작품은 시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술 자체의 독창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론은 쉽고 원칙은 정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 역시 상당히 주관적인 면이 강해서 자본을 투입해 실행에 옮기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여기서부터는 누가 수행하는가, 누구의 안목과 전문성으로 운영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지난 5년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아트펀드 중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우선 호황기에 뛰어들어 거품 속에서 거품 낀 약속을 단기간에 했던 것이 가장 큰 실패 요인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문인력의 적절한 배치 및 활용이 효과적이지 못한 점도 컸다. 금융전문인력과 미술전문인력 사이의 원활하지 않은 소통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미술관, 비엔날레 등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작가와 작품보다는 투기성 자본에 의해 부풀려진 작가와 작품에 재차 돈이 몰리는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짧 은 아트펀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역시 새롭게 체질을 개선한 아트펀드를 기대하고 있다. 자본이 독이 될 수도 있으나 잘만 활용하면 한국현대미술 시장이 우량아로 거듭날 수 있는 보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프로그램과 경매의 수치가 아닌 미술사적 가치 그리고 전문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위)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사인'. 판화, 콜라주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라우센버그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의 경계에서 다양한 실험을 한 작가로 꼽힌다.
아래)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황금을 사재기 했던 자본이 다시 미술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디 셔먼(1954~)의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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