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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26. 동남아 현대미술이 뜬다

이대형


“아톰과 드래곤 볼의 기합소리를 따라하고 배트맨과 슈퍼맨에 열광한다. 당신은 지금 애니메이션과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가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반복 재생산되는 현장에 서 있다. 책, 텔레비전, 게임, 블로그를 통해 방콕, 자카르타, 서울, 뉴욕, 베이징의 골목까지 안가는 곳이 없다. 장소만 달랐지 서울과 자카르타를 열광시키는 주인공은 똑같다. 배트맨을 통해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통이 전혀 다른 양상의 비주얼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재미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 강연차 제주도를 찾은 대니얼 코말라 라라사티 옥션 대표의 설명이다. ‘아시아 현대미술을 유럽시장에 수출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한국, 홍콩, 중국, 일본, 영국 런던,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시장을 조사하고 있는 코말라 대표의 눈에 비치는 자신감 속에서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 개별 국가보다는 한 군집 단위로 인식되는 이들 나라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4월 홍콩에서 있었던 소더비 동남아시아 경매에 출품된 작품 138점 가운데 작품 106점이 낙찰됐다. 무려 77%의 낙착률이다. 또한 이전과 다르게 95%에 이르는 작품이 현대미술이었고 나머지가 근대미술품이었다. 자국 근대작가 작품에 대한 판매 비중이 90%에 이르렀던 독특한 시장 구조 속에서 현대미술 작가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것은 점차 국제화되고 있는 취향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53만달러에 낙찰되었던 료난 마스리아디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 인도 미술의 성장과 더불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보다 저렴한 가격의 동남아시아 미술에 대한 수요 역시 늘었다. 중국 작가 쩡판즈의 작품이 크리스티에서 100억원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잠시,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 속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고지를 찾지 못한 중국 현대미술의 거품이 드디어 터졌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지만 이 기회에 새로운 대안을 준비하려는 세계 미술계의 움직임이 한창이다.
“중국 현대미술은 그 동안 우산 역할을 잘 해왔다. 거대한 우산으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순기능이 크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를 따르기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몸집이 너무 작다. 각오와 행동은 달라야 한다.” 코말라 대표의 이야기를 토대로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네시아 미술시장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도시에 미술시장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자 인도네시아 미술시장의 붐은 갑자기 찾아왔다. 돈좀 있다는 기업인들에게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투자유치 정책으로 상당한 화교 자금이 인도네시아로 유입됐다. 수하르토의 집권 아래 기업인들은 정권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표현한다는 이유로 그림을 사들였다. 그래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포함하지 않은, 토착적인 지방색을 가지고 있는 얌전한 작품들이 주로 거래됐다.
지난 1997년 IMF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근대미술 중심의 지역 미술시장이 붕괴됐다. 경제위기는 정치권력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실제 1998년 5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몰락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됐다.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로 바뀌는 과정에서 새로운 미술 담론의 공간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해 태어난 세매티 아트 하우스가 대표적인 예다. 독일 출신 설치·퍼포먼스 작가 맬라 야르스마가 설립한 이 갤러리는 기존 미술 시장에서 전혀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정치적인 성향의 작가와 작품의 전시를 과감하게 단행했다. 미술시장의 취향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다. 드디어 미술의 수출이 이루어졌다. 관광객을 위한 장식적인 미술과의 결별이 이루어지고, 기념품 가게에서 나온 이미지들은 도시 벽면에 낙서로 표현되고, 유인물처럼 복사되어 나뉘어지고, 결국 미술 대학생들의 캔버스에서 다시 태어났다.
주로 1970년 이후에 태어난 뉴에이지 그룹의 작가들은 전통적인 기법에도 능숙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중문화를 해석하는 기술적인 능력도 탁월하다. 그래서 최근 이들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을 살펴보면 이질성보다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통한 동질성이 더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똑같은 소재라도 새로운 해석과 생소한 색깔이 입혀지니 “재미있다”라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서로 다른 문화권이란 물리적인 거리감을 지우고 있는 주인공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그것을 타고 넘어온 대중문화 속 아이콘이다. 소통으로 거리감이 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동일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차이를 드러낸다. 그 차이로 인해 아시아 현대미술이 풍성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니얼 코말라 대표가 싱가포르에서 제주도 그리고 다시 서울을 방문하는 바쁜 일정을 잡은 것은 한국 현대미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무엇이 한국 현대미술의 경쟁력인가?”라고. 그러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현대미술은 다양하다. 작가의 작품이 개념에 머물러 있지 않고 테크놀로지와 기술적인 숙련도를 통해 완성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이 소화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 시장의 다양한 취향과 눈높이가 결국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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