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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23. 세계화의 길목에 선 한국미술

이대형


지난 18일 밤 9시40분 황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런던 시장 도착 15분 전.” 전시 준비를 위해 런던에서 건너온 필립스와 패러넬 미디어 그룹 직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공식일정이 늦어져 참여 자체가 불투명했던 런던 시장이 밤 10시 제일은행 제일지점에서 열린 코리안 아이 문제너레이션 프리뷰 현장을 방문했다. 덥수룩한 머리에 유머러스한 말투가 인상적인 마흔네 살 젊은 정치가의 등장에 런던 쪽 직원들이 잔뜩 고무되었다.
‘평양 가는 택시는 어디서 타나’ 등 예측 불허의 황당한 농담을 던지는 이 괴짜가 2009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보리스 존슨이다. 말투와는 다르게 존슨 시장은 진지하게 작품들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전시를 둘러본 런던 시장이 감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이렇게까지 다양하고 훌륭한지 미처 몰랐다.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코리안 아이 프로젝트는 올림픽의 도시 서울과 런던의 문화교류에 있어 더없이 훌륭한 프로젝트다. 사치갤러리에서 다음달에 있을 문제너레이션 전시가 기대된다.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계속될 코리안 아이의 향후 전시에 대한 지원과 후원을 위해 노력하겠다.”
20일 오후 1시 베이징에서 건너온 컬렉터와 미국계 옥션 관계자를 그는 잇따라 만났다. 미처 가방에 다 들어가지 못해서였는지 한국 작가의 도록을 한 무더기 무겁게 들고 있는 런던시장 일행은 연방 “굉장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중국 미술과 한국 미술이 무엇이 다른가요”라고 그는 물었다. “한국은 개별 작가의 개성이 강하다. 이렇게 경쟁력 있는 작품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부끄럽다.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데 이제 좀 더 자주 와야 할 것 같다.”
같은 날 저녁 문제너레이션 도록을 받아본 중국계 화랑 한아트 갤러리의 존슨 창 대표가 다음달 런던에서 열리는 코리안 아이 한국미술 특별세미나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중국 현대미술과 관련해 다양한 집필과 장샤오강, 쩡 판즈 등 스타급 작가들을 대거 발굴했던 존슨 창 대표가 한국 현대미술 세미나에 참여의사를 밝힌 것이다.
지난주에 끝난 홍콩 아트페어를 참관한 베이징의 미술 관계자는 홍콩아트페어에서 가장 두드러진 발견은 한국 현대미술의 약진이었다고 말한다. 경제가 위축되고 미술시장이 위축될수록 새로운 대안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세계 각국의 미술 관계자들은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 현대미술이 그 주인공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SC제일은행 서울 충무로지점에서 23일까지 열리고 있는 코리안 아이 문제너레이션 프리뷰 현장을 방문한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오른쪽 첫번째)이 로드먼 필립스 드 퓨리 회장(가운데)과 함께 작가 김인배의 ‘샤모랄타 샤모라타’를 감상하고 있다.
세 계가 한국미술을 주목하고 있다. 서울,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위상이 올라간 측면도 작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 미술시장, 특히 중국 미술시장의 열기가 버블 논쟁과 더불어 한층 꺾인 부분도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동안 아시아 현대미술, 특히 중국과 일본 현대미술의 틈바구니에서 변두리로 여겨지며 도약을 기다리던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주춤하는 지금이야말로 아시아로 몰렸던 관심을 한국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공격적인 문화 수출에 앞서 시장의 확대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국제적인 공조를 다시 한번 강화해야 한다. 1년3개월을 끌고 온 코리안 아이 문제너레이션 전시가 사치갤러리에서 열리게 된다는 소식이 싱가포르와 아부다비에 전해지면서 그 전시를 유치하겠다는 요청이 있었다. 연쇄적인 반응이다. 작품성은 우수하지만 상업적인 경쟁력 측면에서 국제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모습이다.
이 제 한 작가의 국적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다. 그 작가의 배후에 어떤 자본과 어떤 세력이 뒷받침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좀 더 다국적인 후원세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계가 노력해야 한다. 세계적인 작가들을 두루 보유한 페이스갤러리가 전속계약한 작가 이우환의 경우 프랑스·일본·한국의 다국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작품성 하나만 가지고 페이스갤러리가 전속계약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성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지지를 얻어냈고 그 세월 동안 세계 각국에 팬클럽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백 남준, 이우환, 서도호 등 세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시스템으로 배출한 스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990년 이후 매년 미술시장 규모가 급속하게 성장했지만 아직도 한국 미술시장의 수출입 비율은 수입 80%, 수출 20%에 그친다.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미국의 프린스턴대학과 컬럼비아대학에서 우수 사례로 인용되고 있지만 아직 스타 미디어 작가가 배출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기술적인 우수함과 완성도, 작품성이 아무리 좋아도 국제적인 공조에 바탕을 둔 마케팅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술시장에서 한국이 설 자리가 흔들릴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에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자체적인 마케팅과 한국 작가들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지원은 인색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좌초 위기에 몰렸던 코리안 아이 문제너레이션의 후원을 자처한 스탠다드차타드 금융그룹의 결정과 대조적으로 해외 유명 작가의 이름값이 없으면 후원이 좀 어렵다는 관례를 고집하는 국내 기업의 소극적인 판단에 엄청난 외화가 낭비되고 있다. 뉴욕 모마에서 중국, 인도, 중동의 작가들에 관심을 가지고 컬렉션을 시작한 지 수년이 흐른 이제야 뒤늦게 컬렉션 결정을 내리는 소극적인 한국 미술관 컬렉션 문화 역시 반성해야 한다. 외국에서 먼저 유행한 후에야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다는 이야기는 스스로 어떤 취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10년 전 라틴아메리카 미술 전도에 앞장섰던 필립스 드 퓨리 런던의 로드만 회장은 당시만 해도 “촌스러운 라틴아메리카 현대미술이 뭐가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홍보하고 지지한 결과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에 대한 뉴욕과 세계 시장의 평가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보기 위해 늦은 시간 전시장을 찾아준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의 관심만큼 한국의 기업과 정부 그리고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아직 탯줄을 끊기에는 한국 현대미술의 힘이 충분치 않다. 그들의 관심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확보했을 때 세계 미술지도에 한국의 자리가 선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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