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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22. 亞 맹주노리는 홍콩 미술시장

이대형


영화 팬들을 열광케한 영웅본색의 배경 홍콩은 쇼핑과 패션의 도시이자 아직도 많은 사람의 동경의 대상이다. 홍콩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자본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아이러니한 도시다. 경제가 어려워져 미술경기가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홍콩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에서도,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지금 홍콩을 바라보는 눈은 2000년대 초반 베이징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던 모습과 비슷하다. 당시는 불확실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면, 이제는 어둠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듯 보인다. 아시아의 화랑들은 아시아 작가들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한 목적으로, 런던과 뉴욕의 화랑들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잠재력이 새로운 대안이라는 판단으로 홍콩을 기웃거리고 있다. 옥션 판매 규모만으로도 뉴욕과 런던의 뒤를 이어 세계 3위의 거래량을 자랑하는 홍콩이 서울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홍콩 정부가 40만㎡에 이르는 황무지를 미술 문화지구로 개발한다며 지난해 3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홍콩은 명실상부하게 아시아의 문화 맹주가 된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결정되기까지 홍콩은 가속 페달을 밟으며 브레이크 없이 달려 왔다. 지난해 성공적으로 출범한 홍콩아트페어는 단숨에 베이징의 CIGE, 상하이의 SH컨템포러리, 서울의 KIAF의 명성을 위협했고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는 수많은 읽을거리를 생산하며 홍콩을 세계 미술지도 위에 새겨 넣었다. 2003년 이후 5년간 무려 200배 이상 성장한 홍콩 현대미술 시장이 2007년 달성한 매출은 무려 4조9000억원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술과 문화를 막강한 산업 동력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홍콩이다.
홍콩의 문화비즈니스가 이렇게 성공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그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홍콩의 경쟁력을 부각시겼다. 먼저 무관세 정책이 주효했다. 중국 본토가 아직도 미술품에 34%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는 달리 홍콩은 수출입 관세를 없앴다. 베이징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 공간과 물가를 바탕으로 전 세계 화랑들과 작가들의 작품 생산 공장 역할에 적합하게 진화해 왔다면, 홍콩은 이렇게 생산된 작품이 실제로 거래될 수 있는 명품 매장으로 발전해 왔다. 세계적인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그 비싼 임대료와 유지관리비에도 불구하고 홍콩을 아시아의 전초 기지로 선택했고, 한국의 서울옥션과 K옥션, 일본의 신화옥션 역시 홍콩 진출을 서둘렀던 이유도 홍콩이 세금이 없는 무관세 지역이기 때문이다. ‘생산은 베이징에서, 거래는 홍콩에서’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게 되자 사람들은 홍콩으로 몰려들었고,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과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 3개의 극장,1개의 퍼포먼스 홀,4개의 미술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도시로 개발할 홍콩 웨스트 콜론 문화지구. 홍콩 정부는 앞으로 이 문화지구에 3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복합문화도시를 건설,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국제적인 전시 교류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일 계획이다.
두번째는 홍콩이 지닌 국제적이면서도 중립적인 도시로서의 이미지다. 한국과 서울, 중국과 베이징, 일본과 도쿄, 대만과 타이베이 등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각 도시의 아이덴티티는 각 국가의 아이덴티티와 일치한다. 그래서 한국의 서울에서 일어나는 행사는 매우 한국적일 수밖에 없고, 베이징에서 일어나는 행사는 매우 중국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홍콩과 중국의 관계는 다르다. 홍콩은 중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중국과는 다른 아이덴티티를 보여준다. 중국이 적용하고 있는 정책과 홍콩이 추구하고 있는 정책은 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획일적인 정치 공식보다는 국제적으로 허브 역할을 수행하기 편리한 제도와 정책이 우선시 된다. 도시는 국가보다 훨씬 쉽게 국제화될 수 있는 작은 규모다. 국가 앞에서는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기 쉽지만 도시라는 울타리 안에서 중요한 것은 실리다. 홍콩이라는 도시가 존중하는 것은 홍콩이 속한 모체인 중국이 아니라 홍콩으로 건너온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다.
세 번째는 홍콩이 국제적인 도시에 어울리는 인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서울과 도쿄가 아닌 홍콩을 선택했고, 가고시안 갤러리가 사무실을 오픈했고, 밴 브라운 파인 아트 역시 홍콩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홍콩 아트페어의 디렉터(매그너스 램프루)와 조직위 역시 비엔날레, 출판, 옥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인 경험과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그래서 규모가 아닌 엄선된 퀄러티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이러한 결과, 참여 화랑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물론 지난해 홍콩 아트 페어의 경우 리먼브러더스의 후원을 등에 업고 유리하게 출발한 측면도 있지만, 올해는 보다 독립적인 구조를 가지고 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중국이라는 매우 간섭이 많은 국가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관세를 면제받고, 이를 통해 해외 문화, 미술, 산업 관련자들의 진출을 유도해 국제적인 수준의 전시와 이벤트를 이끌어 내고 있는 홍콩은 자기 자신의 색깔을 고집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 시장과 시장이 만날 수 있는 관문 역할에 충실하며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서울은 디자인 올림픽을 개최하고 있고, 인천은 디지털 미디어 축전을, 여수는 엑스포를, 광주는 광주문화중심도시를 기획하고 있다. 예산도 많고 규모도 상당하다. 각각 도시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 기반 문화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도 창출하고 관광산업도 발전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도시로 태어나게 될지는 더 지켜보아야 하겠다. 규모의 논리에 함몰되어 디자인의 디테일을 놓쳤던 제1회 서울 디자인 올림픽, 부동산 개발 방식으로 추진되어 차별화된 콘텐츠가 과연 무엇일지 고민하는 인천, 엑스포의 콘텐츠에 대한 디테일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여수, 광주의 정체성과 국제적인 콘텐츠 사이에서 균형 잡기에 힘쓰고 있는 광주 등 가능성 못지 않게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모든 기획은 내부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외부로 나가야 한다. 콘텐츠에 대한 기획이 있고 나서 그 콘텐츠를 담아 낼 건축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차별화된 전시와 차별화된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그 내부에 보다 다양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참가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구조적인 장치가 마련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전후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인 성과내기 경쟁에 급급한 나머지 문화공간을 만드는 데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다. 부동산 개발하듯 하는 문화공간 확충은 더 이상 안된다. 향후 정치적인 권력과 자본의 권력이 흘러들어가는 곳이 문화권력이라는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화권력을 잘못 사용하면 촌티를 벗기 힘들다.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세계의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결국 행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보다 좋은, 보다 많은 세계적인 인재들이 힘을 합칠 수 있도록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은 쓰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어렵게 책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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