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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30] 기인 화가

이주헌


우울과 광기, 분열의 신음소리 보이는가
창조성과 영감 이면의 죽음같은 고통
“예술가들에게서 이들을 떼어낸다면…”
님프들과 목신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내려온다. 화면 오른쪽으로는 시원한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청춘의 열정을 품어줄 대자연의 너른 품이다. 19세기 영국화가 리처드 대드의 <이 노란 백사장으로 오라>는 왜 젊은이들이 여름 바다를 좋아하는지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꿈결 같은 그림을 보노라면 화가가 매우 순수하고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가는 평생 아름다운 꿈을 꾸며 가족과 오순도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이다. 이 님프 주제의 그림이 하나의 환상인 것처럼 말이다.
화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다. 그런데 그 살인 동기가 더 기가 막히다. 아버지가 악마로 보여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뿐 아니라 사람 하나를 더 죽이려 했는데, 어쨌든 이 모든 게 보이지 않는 힘이 시킨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후 그는 정신병원에 갇혀 죽을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족과 의사들의 도움으로 그림만큼은 계속 그릴 수 있었는데, <이 노란 백사장으로 오라>는 정신분열증이 시작된 지 4년쯤 지났을 때 그려진 그림이다.
대드의 사례가 시사하듯 예술가들 가운데는 유독 기인이 많다. 정신병 환자가 많고 자살한 사람이 많다. 이로 인해 예술가는 일탈자 혹은 사회적 낙오자의 전형으로 여겨지곤 한다. 자신의 귀를 잘랐던 반 고흐나 자신의 눈을 찌른 최북 같은 이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예술가의 괴팍성은 오랜 옛날부터 목격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창조적 영감은 ‘신성한 광기’와 같은 정신적 변환 상태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뮤즈의 광기를 맛보지 못하고 시의 문에 이른 사람, 오로지 테크닉만으로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결코 완벽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예술가를 기인으로 보는 관념이 오래되었다고는 해도, 과거에는 예술을 기술이나 치장 정도로 여겨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이해가 뿌리내리지 않았다. 그만큼 예술가의 투쟁이 자율적 주체의 숭고하고 존엄한 투쟁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그런 연유로 기인 예술가가 집단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기인 예술가에 대한 기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근세 이후, 곧 ‘천재’와 ‘예술의 자율성’을 발견한 르네상스 이후부터다.
예술사회학자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16세기 매너리즘 시기에 들어 우리는 “생에 굶주려 있으면서 현실 도피적이며, 역사적으로 구속되어 있으면서 겁 없이 반항적이고, 노출증에 가깝도록 자신을 내세우는 주관주의와 더불어 마지막 비밀은 끝까지 감춰두는 폐쇄성을 지니는 등 내적 분열로 신음하는 예술가의 등장”을 보게 된다. 16세기 화가들의 경우만 해도 파르미자니노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폐인이 되었고, 폰토르모는 대인 기피증으로 고생한 끝에 세상과 담을 쌓아 버렸으며, 타소는 정신병에 걸려 죽었고, 로소는 자살했다. 유명한 엘 그레코는 늘 방 안에 커튼을 치고 어둠에 싸여 살았다. 이 시기 이후 기인, 괴짜, 정신병자로서의 예술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늘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예술가=기인’의 등식이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과연 예술가들은 일반인보다 진짜 기인이 그렇게 많은가 하는 것이다. 천재성과 영감을 중시하는 분야다 보니 혹시 호사가들의 입방아로 실제보다 기인의 비율이 부풀려져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인과 괴짜는 많지 않은가?
이에 대해 답을 주는 연구가 이미 20세기 중반에 행해졌다. 뮌헨 정신의학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아델레 유다 박사가 1927~1943년 5000명 이상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예술가들 가운데 27%가 신경증이나 인격장애 등의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들 중에는 10~12%가 유사한 장애를 보였으니, 두 배가 넘어 근 세 배에 이르는 수치다. 또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20세기의 전문가 1000명의 전기적 기록을 토대로 켄터키대학의 아널드 루드위그 교수가 행한 연구(1992)에서도 예술가 직군의 정신장애 평생유병률이 7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모집단의 평균이 32%에 불과한 것에 비해 이 또한 상당히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루드위그 교수는 1998년 좀더 정밀한 분석을 행했는데, 그 초점은 미술가들 사이에서도 작품 스타일에 따라 정신 질환의 소질이 달라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루드위그는 미술가들의 스타일상의 특질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형식성, 상징성, 감정의 풍부성이 그것이다. 특질마다 그 정도가 약한가, 강한가에 따라 1에서 10까지 점수를 주었는데, 이를테면 표현주의 화가 키르히너와 추상표현주의 화가 더 코닝은 형식성은 낮고 감정의 풍부성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처럼 형식성이 낮고 감정의 풍부성이 높은 미술가들은 정신 질환에 걸릴 확률이 아주 높았다. 반대로 형식성은 높고 감정의 풍부성이 낮은 미술가들은 정신 질환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알코올의존증과 마약 복용, 우울증 등의 문제를 일으킬 소질과 관련해 감정에 충실한 작업(이를테면 표현주의)을 하는 미술가는 72%의 높은 평생유병률을 보였고, 상징성이 높은 작업(팝아트)을 하는 미술가는 52%, 형식성이 두드러진 작업(기하학적 추상)을 하는 미술가는 22%의 평생유병률을 보였다. 이런 연구 조사로부터 우리는 미술가들이 일반인에 비해 매우 높은 정신 질환 유병률을 가지고 있으며, 또 같은 미술가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감정에 충실한 스타일이냐에 따라 기인이 나올 확률이 높아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일반적으로 창의성이 높다는 점에서, 기벽이나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 또한 정상인에 비해 창의성이 높은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 볼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이 정상인보다 창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하버드의대 교수팀이 17명의 조울병 환자와 16명의 순환기분장애 환자, 그리고 병력은 없지만 정신질환자의 친척인 피실험자 1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이들 환자 혹은 환자의 친척이 일반인에 비해 창의력이 뛰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창의력과 정신 장애 사이에는 일종의 교차점이 있어서 정신 질환의 정도가 심해지면 창의력이 다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가벼운 정도의 정신 질환을 지닌 사람이 정상인이나 정신 질환이 심한 사람에 비해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창의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 질환과 창의성에 관한 이런 연구가 나오기 이전에도, 정신적 장애를 겪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장애와 창의력 사이에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뭉크는, 적절한 치료만 잘 받으면 더는 주기적으로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병원 쪽의 말에 아래와 같이 답하기도 했다.
“(정신적 고통은) 나와 내 예술의 한 부분이다. 나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떼어낸다면 내 예술이 파괴될 것이다.” <끝>
이주헌 미술평론가
원본 : http://www.hani.co.kr/arti/SERIES/201/354387.html
1.대드, 〈이 노란 백사장으로 오라〉
2.뭉크, 〈사춘기〉, 1895, 유화, 150x110cm, 오슬로 국립미술관. 뭉크는 스스로를 요람에서부터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안료는 불안과 공포였다.
3.엘 그레코, 〈톨레도 풍경〉, 1595~1600년경, 유화, 121.3x108.6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길고 비틀린 형태의 사람을 주로 그렸던 엘 그레코. 이 풍경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구름의 기운이 내면의 갈등을 생생히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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