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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박물관 100년 사람들] 6.국립민속박물관 설립 주도 장주근 前경기대교수

편집부


“생생한 전시 위해 마네킹 첫 사용”
1966년 경복궁 수정전에서 한국민속관 개관 준비에 여념이 없던 장주근 전 경기대 교수(84·당시 41세)는 몇 달 전부터 고민에 빠졌다. 제주도의 전통 일옷인 갈옷도, 일상에서 쓰였던 디딜방아도 그것만으로 전시를 해놓고 보니 생동감이 없었다. 스웨덴 북구박물관(세계 최초의 민속박물관)의 팸플릿을 들추다가 마네킹이 떠올랐다. 당시 박물관 유물은 진열장 안에 기품 있게 전시하는 것으로 인식됐지만 장 전 교수는 ‘품위 손상’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서울 신세계백화점 쇼윈도에 전시하는 마네킹을 가져왔으나 장 전 교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팔다리가 너무 긴 서구형 마네킹이었던 것이다. 기술자와 함께 며칠간 팔다리와 키를 줄이고 얼굴도 둥그스름하게 바꾼 새 마네킹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전시장 안의 안방 부인, 사랑방 선비, 베 짜는 부인, 디딜방아 찧는 부인, 대패랭이를 쓰고 갈옷 입은 제주도 농부, 해녀가 태어났다. 한국 박물관에 마네킹이 처음 등장했다.
장 전 교수는 오늘의 국립민속박물관을 탄생시킨 산파다.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확대 개관(1979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개칭)하기 전까지 초기 민속박물관인 한국민속관 개관(1966년) 준비와 운영을 책임진 사실상 민속박물관의 초대 관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관장 직제가 없어 그는 상근문화재전문위원으로 남았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이 그를 만났다.
천=인류학을 지향한 국립민족박물관이 1946년 개관했지만 1950년 고고미술 중심의 국립박물관에 흡수됐습니다. 이후 16년간 한국에 민속박물관이 없었죠.
장=민속관이 탄생한 것은 관광객 덕분이에요. 일본인 관광객들이 1960년대 갑자기 한국으로 몰려들었어요. 1962년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가 설립됐고 일본인 관광객이 안내원의 깃발을 따라 매일 궁궐을 드나들었죠. 당시 이런 광경은 이채로웠지만 충격을 안겼습니다. 우리의 전통 민속을 보여줄 박물관이 없었으니…. 이전까지 굿판에 어정거리던 민속학자였던 내가 급히 호출돼 개관 준비에 나섰습니다.
현재 민속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농기구들은 이때 보존된 것이다. 장 전 관장은 골동품상이 모인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서울 궁궐 어디에서도 농기구를 구할 수 없어 애를 먹었다.
장=개관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농기구가 없었어요. 걱정하고 있는데 충남 서산 출신의 경비원이 고향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서산 일대를 뒤져 쟁기 가래 도리깨 디딜방아 기름틀(기름을 짜는 틀) 무자위(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농기구) 등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 필요한 모든 농기구를 200∼1만5000원에 샀습니다. 그때 구하지 못했으면 지금 관람객도 50년 전 농기구를 보기 어렵겠죠.
천=민속박물관에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이 빠질 수 없습니다. 경남 하동군 쌍계사 장승은 지금도 민속박물관의 ‘얼굴’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장=박물관이 가장 보존하기 어려웠던 유물이 장승입니다. 쌍계사 장승도 새 장승을 만드는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박물관에 올 수 있었어요. 마을 장승은 더 어려웠습니다. 모든 마을이 장승만은 줄 수 없다고 거절했죠. 결국 극단의 방법을 택했습니다. ‘서리’였어요. 도시 사람들에게 장승을 보여주려는 열정의 발로로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경기도의 한 마을에 숨어 밤까지 기다린 뒤 몰래 장승을 뽑아왔습니다. 박물관에 전시한 뒤에도 한동안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다행히 그 무렵 그 마을의 이웃 마을 인근에 주둔한 미군이 장승을 뽑아간 사건이 일어나 마을 사람들은 미군 짓이라 생각했죠.
장 전 교수는 1960년대 한국 첫 전국 민속종합조사를 기획했다. 그렇게 해서 평생 모은 서울 경기 전남 동해안 제주도의 세시풍속, 농경, 무속 장면이 담긴 필름과 슬라이드 4500여 장을 1995년과 2003년 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는 2007년 민속박물관에 한국의 첫 민속아카이브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 윤완준 기자
>국립민속박물관의 산파 역할을 한 장주근 전 경기대 교수. 한국민속관 개관(1966년)에 주요 역할을 한 그는 “민속박물관은 살아 있는 전통 생활 문화의 맥을 이어 만인이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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