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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27] 아트 어드바이저: 컬렉터를 위해 일하는 미술 - 시장 전문가

이주헌


‘높은 감식안’에 분석력·담력까지
거래성사 땐 작품값 10% 커미션
‘큰손’ 고객 많으면 입김도 그만큼
뉴욕서 주로 활약…한 축으로 자리
미술시장이 다변화하고 있다.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펀드를 구성해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 매집하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작가의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또 미술시장이 낯설거나 좀더 체계적인 컬렉션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트 어드바이저(혹은 아트 컨설턴트) 같은 전문적인 조력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우리에게는 생소한 아트 어드바이저. 하지만 근래 미국에서는 아트 어드바이저가 미술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전문가 집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성격이 유럽보다는 미국 쪽에 가까운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아트 어드바이저가 시장의 중요한 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아트 어드바이저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일반인들이 법정에 서게 되면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해지듯 미술시장에 진입한 일반인들도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아트 어드바이저는 이런 컬렉터들을 위해 일하는 시장 전문가다. 단순히 미술사나 미술 동향에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뉴욕 소더비 아트 인스티튜트의 학장 스티븐 브레조(Steven Brezzo)는, 진정한 아트 어드바이저는 감식안으로서의 역량뿐 아니라, “실내장식가의 눈썰미, 회계사의 분석력, 장군의 병참학적 기술, 기업가의 담력, 장로교 목사의 외교적 수완”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트 어드바이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은 최근 세계 미술시장의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새로운 고객의 진입이 늘어나는 한편, 투자시장으로서 미술시장이 한층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변방이었던 중국과 인도의 작가들이 갑자기 인기몰이를 하는 데서 보듯 갖가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블루칩’ 작가를 향한 경쟁도 심해져 일반 컬렉터로서는 갈수록 전문가의 조력이 아쉬운 형편이다.
또 전세계의 특급 호텔 200여곳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아트 어드바이저 조앤 워런 그래디(Joan Warren-Grady)의 사례에서 보듯 호텔이나 백화점, 기업 등이 비즈니스상의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형 구매를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아트 어드바이저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있다. 워런 그래디는 지난해 개장한 두바이의 7성급 호텔 아틀란티스의 미술품 장식을 담당했다.

기존의 시장은 미술가가 작품을 창작하면 갤러리가 고객에게 이를 파는 단순한 구조였다. 이차 시장인 경매시장을 빼면, 일차 시장을 홀로 지배한 갤러리의 역할과 영향력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술가와 갤러리 사이에 아트 매니저가 끼고 갤러리와 고객 사이에는 아트 어드바이저가 끼는 구도가 되었다. 아트 매니저는 미술가의 이익을 대변해 갤러리와 협상하고 아트 어드바이저는 컬렉터의 이익을 대변해 갤러리와 협상한다. 그만큼 시장의 구조가 복잡해졌다.
뉴욕 미술시장의 경우 현재 메이저 갤러리들의 매출 가운데 10~30%가 아트 어드바이저가 중개한 것으로 추정되며, 활발히 활동하는 아트 어드바이저의 수는 4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아트 어드바이저들은 일반적으로 컬렉터로부터 커미션을 받는다. 작품이 거래된 뒤 작품가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작품을 구입하는 컬렉터의 경우 투자 예산의 규모에 맞춰 연봉 형태로 커미션을 주기도 한다.
큰손 컬렉터들을 다수 고객으로 두고 있는 아트 어드바이저는 자연히 갤러리들에 대해 입김이 세기 마련이다. 수요가 몰리는 작품을 누구보다 빨리 선점하고 또 구입 가격에서도 호의적인 조건을 요구한다. 이런 까닭에 갤러리에 따라서는 아트 어드바이저의 중개를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루기가 까다로운데다 이윤이 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면하자니 매출 손실이 아쉽다. 미국과 달리 유럽의 미술시장에서는 아트 어드바이저의 활약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데, 이는 그만큼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시장 분위기가 갤러리들의 입지를 튼튼히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미술품 거래라는 게 단순히 시장논리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미술의 창달을 지원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때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이런 구실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갤러리들이 있다. 그런 곳은 그만큼 사회적 존경을 받고 영향력도 강하기 마련인데, 유럽의 갤러리들 가운데는 이런 전통을 유지하는 곳이 적지 않다. 오로지 고객의 이익을 위해 고용된 시장 전문가인 아트 어드바이저는 이런 수준의 존경을 얻기가 쉽지 않다.
아트 어드바이저는 그런 점에서 태생적으로 갤러리보다 더 ‘시장 친화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때로는 이익에만 지나치게 몰입한다는 지탄을 받기도 한다. 2002년에 있었던 ‘반 다이크 가품(假品) 소송’은 그 극단적인 사례의 하나다.
텍사스의 백만장자 리처드 드레이크는 자신의 아트 어드바이저를 통해 17세기 대가 반다이크의 <제임스 스튜어트의 초상>을 150만 파운드(약 30억원)에 구입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작품이 반다이크의 진품으로 공인된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의 제자가 모사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에 드레이크는 작품을 판 영국의 애그뉴 갤러리를 상대로 법원에 대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애그뉴 갤러리가 그 작품이 반 다이크의 진품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다른 전문가들의 견해를 첨부 자료로 알린데다 드레이크에게 보내는 서면에도 이런 진위 논란이 있음을 고지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드레이크의 아트 어드바이저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숨김으로써 그가 오인하도록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거래 성사에 대한 아트 어드바이저의 지나친 욕심이 큰 사고를 친 것이다.
아트 어드바이저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아트 어드바이저들이 단기적 이익에 집착한 나머지 현시점의 인기작가와 작품에만 집중하고, 그 결과 고객의 컬렉션을 매우 지루한 것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미술시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당대의 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품을 사들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큰 실수는 없지만 큰 가치를 부여할 필요도 없는 컬렉션이라는 얘기다.

물론 아트 어드바이저들 가운데는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있다. 앨런 슈워츠먼(Allan Schwartzman), 시아 웨스트레이치(Thea Westreich) 같은 아트 어드바이저들은 국제 미술계와 미술시장으로부터 그 안목과 열정이 높이 평가받는 이들이다. 웨스트레이치의 경우 최근의 미술품값 폭락이 있기 훨씬 전부터 시장의 거품을 경고하고 헤지펀드와의 거래가 지닌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아트 어드바이저는 대체로 갤러리나 미술관, 경매회사 출신들이 많다. 그러나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이 아니어서 수준과 역량의 편차가 심하다. 최근 뉴욕의 소더비 아트 인스티튜트가 아트 어드바이징 프로그램이 포함된 대학원 과정의 아트 비즈니스 코스를 개설한 것은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다소나마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 뉴욕 아모리 쇼 전경. 아트 페어는 아트 어드바이저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무대다. 아모리쇼 제공
» 제임스 스튜어트를 그린 반다이크의 진품. 1630년대, 유화, 216x128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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