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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18. 상어에 물린 현대미술

이대형


예술과 자본이 팔씨름을 시작했다. 예술은 자본처럼 빠르게 소비사회의 구성원들 속으로 유통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자본은 예술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구성원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우겼다. 한참이 지났다. 그리고 그 둘은 깨달았다. 그동안 경쟁하며 힘겨루기했던 팔씨름이 사실은 대결이 아닌 공조였다는 것을 말이다. 예술과 자본의 만남이 미디어를 통해 가속화되었고 갤러리와 미술관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1992년으로 기억된다. 예술과 자본의 노골적인 만남에 포르말린 속의 죽은 상어가 예술로 부활했다. 4.6m의 피부가 벗겨진 죽은 상어가 다시 한번 현대 미술계에 ‘이것도 미술인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지극히 난해한 제목의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사치 갤러리를 통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4.6m가 넘는 거대한 상어에 무게만 2t이 넘는 이 작품은 표본실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개구리의 거대한 해양 버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미디어가 왜 이런 작품에 열광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브랜드의 힘 때문이다. 광고계의 거물이자 현대미술의 중요한 컬렉터 중 한 사람인 찰스 사치의 선택과 후원이 만들어낸 브랜드의 힘이 비판적인 시각을 압도해 버린 예다. 현대미술이 자본주의와 속도를 같이하며 유통을 통해 이미지와 가치의 재생산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찰스 사치다. 1991년 사치는 데미안 허스트에게 5만파운드(약 1억원)를 주고 상어 작품을 제작해줄 것을 의뢰했다. 당시 ‘The SUN’지는 ‘감자칩도 빠진 생선에 5만파운드라니’라는 제목으로 황당하게 비싼 가격을 조롱했다.
그로부터 14년 뒤 2005년 1억원짜리 작품이 120억원이 되어 시장에 나왔다. 무려 120배의 가격 상승이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이 흘러 피부마저 부패한 상어를 무려 120억원에 팔겠다고 나선 이가 바로 래리 가고시안이기 때문이다. 당시 단일 작품에 120억원이라는 가격은 생존 작가 중 최고 수준이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루시앙 프로이드 등의 작품보다 높은 가격이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사치 갤러리에 전시되고 래리 가고시안이 딜러로 나선 이상 판매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어’에 두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세계적인 컬렉터 스티브 코언이었다. 세계적인 작가에,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두 화랑 주인, 여기에 런던을 대표하는 미술관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컬렉터까지 브랜드가 총집합했다. 언론은 상어를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며 열광했고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되었던 가격은 물론이고, ‘이것도 미술인가’에 대한 의구심까지도 머쓱하게 만들었다. 상어의 유명세가 날로 높아지고 있었지만 정작 문제는 날로 위태로워져가는 상어의 피부건강 상태였다.
포르말린 탱크 안에 담긴 상어를 들여다 보자. 작품의 제목처럼 ‘죽음의 물리적인 불가능성’을 전달하기에는 수조안의 상어는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모습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의도대로라면 전시장 중앙에서 관객을 향해 위협적으로 돌진하는 생생한 상어여야만 마땅한데 껍질이 벗겨지고 피부는 주름지고 색깔은 탁해지고 힘있게 보여야 할 상어지느러미는 너덜너덜해졌다. 작가의 의도를 더 이상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물리적인 상황 속에서 이 실험적인 작품의 소장가치는 정말 있는 것일까.
작품은 결국 스티브 코언에게 120억원에 팔렸다. 한 시간에 9만달러를 벌어 들인다고 하니 코언은 작품을 사는데 5일 동안 일한 수입을 투자한 셈이다. 거대한 자본과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관심 아래 놓여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쉽게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게 된다. 시간 앞에 썩어가는 상어는 결코 ‘죽음의 물리적인 불가능성’이라는 허스트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작품으로서의 진정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니멀리즘 작가 댄 플래빈의 작품처럼 형광등이 나가면 새로 갈아 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데미안 허스트가 처음 제작했을 당시처럼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시 허스트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호주에 상어를 잡아달라는 광고를 냈다. 상어를 잡는데 800만원, 크기에 따라 최고 1200만원, 그리고 런던으로 얼음포장 운송 비용으로 4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광고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지금은 작품 속 상어를 대체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시간적 비용과 확률적 불확실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더 귀찮은 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작업을 계속해서 되풀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 자체가 ‘죽음의 물리적인 불가능성’이 아닌 ‘생명의 물리적인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스트의 상어는 지금 이 시간에도 부패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과 미디어를 통해 영생의 힘을 얻은 듯 보인다. 그리고 예술이란 이름 아래 기존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공격하고 전복시킨다. 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리적인 상어인가, 아니면 작가의 제작 의도인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규정을 거부하는 불확실성에 120억원이라는 자본과 미술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브랜드가 총출동하여 분명한 사실 하나를 남겼다. ‘이거 확실히 볼 만한 작품인가’라는 궁금증 말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이 작품은 데미안 허스트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으며 지난 2004∼2005년 진행된 판매과정은 각종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숱한 화제를 낳았다.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조각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위에서 작가 데미안 허스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 댄 플래빈의 작품 'Dan Flavin goes Allmoge'. 지난 1996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형광등을 어떻게 유지 보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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