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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17. 카메라의 눈으로 본 현대미술

이대형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면 당연히 그것을 설명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셔널 지오그래픽’(2005년 8월호)에 실린 미시간 대학교 심리학과 리처드 니스베트 교수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동양인과 서양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다르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볼 때 서양인은 주인공 모나리자에 보다 많은 초점과 시간을 투자하고 배경에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반면, 동양인들은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인물과 배경을 오가며 주인공이 어떤 문맥 속에 놓여 있는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시점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가져온 건지 아니면 문화의 차이가 시점의 차이를 가져온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결과적으로 차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차이?” 현대사회에서 다르다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존중 받아야 되는 특별한 경쟁력이다. 마케팅과 홍보의 키 포인트 역시 이 차이점을 발견하는데서 시작해 그걸 극대화해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귀결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각광받고 대접받는 시대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은 축복이다.
현대미술로 눈을 돌려보자. 8년이 넘게 전시기획을 한 필자이지만 여전히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무엇인가 비꼬고 있는 냉소와 오만함에 지지 않기 위해 눈을 치켜 뜨지만 역시 해석 불가능한 녀석의 기(氣)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작품 자체만을 보지 않고 자꾸 전시장이나 작가의 출생 배경 등 문맥적인 상황을 대입해 실마리를 풀려고 한다. 지금 눈 앞에 놓인 현실과 망막에 비친 이미지와의 상관함수를 풀기 위해서는 익숙한 시점을 버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 새로운 안경을 끼고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 봐야 할지도 모른다.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통해 새롭게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보자. 사진은 미술의 다른 그 어떤 매체와 비교해도 가장 즉각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방법론이다. 중간에 누군가 개입할 여지를 거부하는 빛의 속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장 정직한(?) 매체로 사진을 꼽는다. 눈앞에 날개 달린 천사의 그림과 패션 모델이 있다고 가정하자. 잘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아! 이 천사 참 예쁘게 잘 그려졌네”라고 말할 것이고 사진 속 날개를 달고 서 있는 주인공을 향해서는 “잘 분장했네!”라고 말할 것이 뻔하다. 그만큼 사진 속 이미지는 현실이라는 문맥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해석과 표현의 방법도 제한적이다.
그런데 과연 사진이 그토록 정직한 매체일까. 그리고 사진 속 이미지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일 만큼 당신의 눈은 순진한가. 만약 당신이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현실의 즉각적인 방영이 아니라면 어찌할 것인가.
히 로시 스기모토의 1999년 작품 ‘앙리 8세’의 초상사진은 실제 인물이 아닌 밀랍인형을 찍은 사진이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이 그린 정교한 ‘앙리 8세’의 초상화를 마담 투소가 밀랍으로 재현했고 이를 다시 스기모토가 사진으로 옮겼다. 스기모토는 어떻게 하면 르네상스 시대 홀바인이 사용했을 빛을 재현할까를 고민했고 이렇게 해서 재현된 이미지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현실성을 확보하게 된다. 현실이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이 다시 밀랍인형으로 변했고 마지막으로 스기모토의 사진을 통해 다시 현실 속 인물로 부활한 셈이다. 이는 환영(일루전)과 실제 사이의 벌어지는 대표적인 역전현상의 예다. 죽어 있는 가짜 인물을 담고 있는 실제 현실을 카메라의 눈을 통해 살아 있는 진짜 인물의 모습을 발견하는 환영 말이다.
환 영과 실제의 경계를 오가는 스기모토 사진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술관을 광적으로 구경 다녔던 스기모토는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디오라마 형식으로 전시된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페인팅으로 칠한 뒷 벽면을 배경으로 입체로 재현된 동물들의 모습에서 가짜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쪽 눈을 감고 바라보자 배경이 희미해지며 공간에 깊이가 생겼고,허점 투성이였던 동물들의 모습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쪽 눈을 감고 바라본 세상, 바로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세상이다.
사 건 현장을 찍는 마크 위제의 작품 ‘무관심의 흔적#4’의 시점도 재미 있다. 전형적인 사람의 눈높이에서 벗어나 있다. 차에 치여 죽은 다람쥐의 모습을 도로면 가까이 다람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멀리 보이는 자동차와 주택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고 작품의 제목과는 대조적으로 죽은 다람쥐의 모습이 결코 ‘무관심의 흔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쉽게 지나쳐 버릴 ‘흔적’이 아닌 상징의 주체로 의인화되어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카메라의 촬영 각도와 눈높이의 변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점과 생각의 전환의 예다.
딸 기잼과 땅콩 버터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복원하고 먹다 남은 스파게티 소스와 면발로 카라바지오의 메두사를 부활시키고 면솜으로 하늘의 구름을 연출해 알프레드 듀러의 ‘기도하는 손’을 재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초콜릿으로 ‘최후의 만찬’과 젝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보여주는 브라질 작가 빅 무니즈는 일회성 재료를 가지고 미술사의 대표적인 명작들을 부활시킨 뒤,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가다. 버려진 쓰레기들을 재배열해 하늘 위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으로 찍은 작품 시리즈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그린 작품들을 부활시켰다. 구도 레니의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 카라바지오의 ‘나르시서스’,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잡아 먹는 세턴’ 등의 작품이 쓰레기 더미 위에서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소재로 만들어낸 신화를 재현해내는 작가의 위트가 카메라를 통해 영원히 기록되었다.
카메라의 눈은 더 이상 현실을 기록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익숙하지 않은 시점을 경험하고, 기억의 축적을 한 평면 위에서 보여주고, 실제 현실 이상을 드러내고, 사람의 눈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순간을 견고하게 잡아준다. 새로움을 발견하고픈 욕망, 바로 현대미술을 바라보는데 있어 인간의 두 눈이 외눈박이 카메라의 눈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창조와 혁신은 시점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 파이낸셜 2009.4.3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가 그림을 보고 만든 밀랍인형 ‘교황 존 폴2세’를 다시 사진으로 찍어 현실 속 인물로 부활시켰다. (왼쪽 위) 히로시 스기모토의 1999년 작품 ‘앙리 8세’의 초상사진. 그의 작품은 실제 인물이 아닌 밀랍인형을 찍은 사진이지만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현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왼쪽 아래)일회성 재료로 미술사의 대표적인 명작들을 부활시킨 뒤 사진을 찍고 있는 브라질 작가 빅 무니즈가 구도 레니의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를 재현한 후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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