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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16. 환경미술? 판다에게 물어봐!

이대형


판다 1600마리가 프랑스 파리에 모였다. 어마어마한 숫자에 놀라지 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판다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니 그 숫자에 실망해야 한다.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진 이 판다 군상은 훼손되어가는 자연 서식지와 불법으로 포획되어 멸종위기에 놓인 판다의 응급상황을 보여주는 설치 작품이다. 여기 한가지 더 있다. 바로 산림, 나무 숲의 위기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잘라낸 나무들이 사실상 멸종위기에 놓인 제한적인 숫자의 판다처럼 응급상황이다. 상징적이지만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메시지에 무릎을 쳤다.
그럼 무얼 어떻게 해야 위기에 처한 판다도 구하고 종이를 만드는 나무들도 보호할 수 있는 걸까.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WWF)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정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① 환경 운동에 기부하고 ② 단일 동·식물을 보호하는 메시지를 선물하고 ③ 온라인에 목소리를 남기고 ④ 녹색 라이프 스타일을 도입하고 ⑤ 무료로 배포되는 뉴스에 귀 기울이고 ⑥ 환경을 위한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고 ⑦ 휴대폰을 통해 정보를 전파하고 ⑧ 지구를 환경의 위기로부터 구하는 각종 게임에 접속하고…. 종이로 만든 판다 1600마리에서 시작된 각성이 실제 삶의 방식 속에서 어떤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되어야만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는 메시지의 전달과 실천 그리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각성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그 변화된 의식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변화된 행동으로 유도할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1600마리의 판다 설치 작품은 매우 성공적인 환경미술 작품의 예다.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종종 미술이 활용된다. 미술이라는 시각예술 자체가 언어와 국경을 초월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환경미술제와 같은 대규모 전시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을 소재로, 혹은 자연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중심으로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또 다른 형태의 어려운 미술관 전시로 비춰지거나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한 채 일회성 행사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경미술제가 본연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민 없이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방법론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달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차별화된 환경미술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06년 영국 런던 첼시 미술&디자인 대학교 옆에 헨리 무어 재단의 지원으로 그레이엄 허드슨이라는 작가가 쓰레기 더미로 만든 집을 짓고 실제 6개월가량 살았다. 버려진 창문틀, 카펫, 부서진 가구 등으로 만든 집을 중심으로 의자와 테이블, 어린이 놀이터까지 만들어 일반인들에게도 자신의 작품과 쓰레기 더미에서의 삶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또 다시 새로운 공해를 만들어내지 말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되는 6개월간의 퍼포먼스였다. 다분히 소비자본주의와 ‘일단 버리고 보자’가 만연한 사회풍토를 공격하는 비판적인 성격의 전시였다.
판다 1600마리와 허드슨의 쓰레기 더미 설치작품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환경 문제를 자연이 아닌, 우리 인간들의 주요 서식지이자 자연환경 파괴의 주범인 도시 환경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명쾌한 상징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보다 많은 사람의 참여와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사람들의 동선이 많은 공간을 활용하였다. 인터넷과 블로그를 활용해 전시 메시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전파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전시의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성공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회성 환경미술제의 지속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네바다 미술관에 새로 생긴 ‘미술과 환경 센터(The Center for Art+Environment)’가 좋은 예다. 미술관의 컬렉션 중 환경미술 관련 우수 작품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여 연중 언제든지 관객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주로 환경의식을 각성시킬 만한 예술 사진 700여점으로 구성된 컬렉션은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파괴하는 문명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 국제 콘퍼런스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환경미술 콘퍼런스에 미술작가들과 큐레이터만 참여해서는 안 된다. 도시환경 설계사, 건축가, 디자이너, 기업인 등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영역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의견을 나누고 이것을 각자의 분야에 응용·도입하는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역 주민들만을 위한 지역축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환경미술제의 목적은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방식에 좀 더 환경친화적인 요소가 가미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결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명상 수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환경미술이 풍경화나 풍경사진전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전·사후 전략이 본 전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 판다 1600마리 설치작품은 다양한 행동강령을 지시하고 있다. 심지어 환경 파괴의 문제와 주범을 악당으로 설정해 놓고 그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게임까지 온라인 상에서 공급하며 환경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허드슨의 쓰레기 더미는 지루한 설치 과정을 블록를 통해 유포해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환경미술제에 개막일과 폐막일은 없다. 그만큼 환경미술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21세기 환경친화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누가 먼저 선도하는가에 국가 경쟁력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불필요한 반복과 또다른 쓰레기를 양산하는 환경미술제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환경의식을 각성시킬 수 있는 본연의 자세로 환경미술제가 자리잡아야 한다.

▲ 지난 2008년 10월 파리 에펠탑 앞에 설치된 ‘종이 판다 1600마리’.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진 이 판다 군상은 훼손되어가는 자연 서식지와 불법으로 포획되어 멸종위기에 놓인 판다의 응급상황을 보여주는 환경설치 작품이다.
▲ 영국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디자인 건물 옆에 쓰레기를 수집해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작가 그레이엄 허드슨의 설치 작품. 작가는 이 집에서 6개월 동안 기거하며 현대물질 소비 사회를 고발하고 환경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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