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⑭ '컬렉터님,수장고 있으세요?'

이대형


올해 나이 쉰을 조금 넘어선 이 모씨는 지난 15년간 미술품을 모아온 컬렉터다. 한해 평균 20여점의 회화, 조각, 앤틱 가구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그의 집과 사무실은 작품으로 가득 차 버렸다. 중국과 한국의 전통 목가구에서부터 각종 아트페어에서 구입한 현대작품에 이르기까지 자랑할 만한 컬렉션이다. 그런 그에게 고민 한 가지가 생겼다. 10여년간 창고 안에 보관하고 있는 작품이 습도와 먼지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40대의 젊은 컬렉터 열 사람에게 “작품을 구매할 때 무엇을 가장 고민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들이 우선 순위로 뽑은 내용은 한결같이 작가 이름, 가격, 작품 출처, 작품 상태, 전시 및 이미지 노출 히스토리, 그리고 작품이 실제 걸리게 될 벽 색깔, 사이즈 등이었다. 그런데 작품을 보관하게 될 수장고를 고민하는 컬렉터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만약 작품 교체와 보관을 위해서 작품을 벽에서 떼어내 수장고에 보관해야 한다면 어떨까. 보관과 관리에 대한 대책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닐텐데, 수장고에 대한 관리와 이해는 의외로 컬렉션에 걸맞지 않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현재 미술품에 대한 보험사들의 입장을 살펴봐도 수장고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품을 전시장에서 전시할 경우 관객의 접근과 도난 그리고 화재에 대한 보험, 작품이 이동할 경우 특히 물 건너 국경을 넘어갈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파손, 도난에 대한 보험 등으로 요약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접근이 가져올 수 있는 사고에 대한 보험이 주를 이룬다. 자물쇠에 잠겨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작품의 안전성에 대한 컬렉터의 관심이 부족하니 보험사의 보험정책 역시 이를 반영하는 부실한 보험 약관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릇된 생각이 소중한 미술 소장품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비롯한 컬렉터들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작품의 가치를 끌어올릴까에만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전시와 도록에 대한 예산을 아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품 전시가 끝나고 보관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터무니없는 선택을 한다. 사람 손만 안 타면 된다는 생각에 구석진 공간에 마구 쌓아두기 십상이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장마철 높은 습도는 곰팡이를 슬게 하고 겨울철 높은 온도 차이는 그림 표면에 균열을 가져오기 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만 그 소유주가 그것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장고는 하드웨어적인 시설 못지 않게 소중한 미술품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안전 조항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2004년 영국에서 일어난 런던 모마트 웨어하우스(Momart Warehouse) 화재 사건은 당시 1500억원 상당의 작품을 화재로 앗아갔다. 영국 추상 페이팅으로 유명한 패트릭 헤론의 작품 50여점 이상과 사치 컬렉션 100여점이 불타버린 사고였다. 런던을 기반으로 20여년이 넘도록 수 많은 전시의 작품을 운송·관리·보관하며 신뢰를 쌓아온 모마트 웨어하우스의 명예 실추보다 불타버린 문화재를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던 사고였다. 화재는 시설의 문제보다는 관리 프로그램의 문제에 가깝다는 사실은 1년 전 불타버린 숭례문의 예에서도 확인된다.
뉴욕의 비상업기구 중 하나인 ‘전시연합(The Exhibition Alliance)’에서 현대미술을 보관하는 수장고의 문제점과 개선 사안을 주제로 98개의 미술관련 전시기관을 대상으로 지난 2004년부터 2005년 겨울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기록을 통해 현재 미국 뉴욕의 미술관 혹은 미술작품 수장고의 현황과 개선사항을 살펴볼 수 있었다. ‘현재의 수장고에서 가장 우선 순위를 두고 실천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화재방재 시스템 59%, 온도·습도 조절 장치 68%, 도난 방지 및 보안 88%, 보험가입 84%라는 답변이 나왔다. 반면 ‘새로 수장고를 만든다면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실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화재방재 시스템이 100%, 온도·습도 조절 장치가 96%, 보안이 89%, 보험이 68%로 그 뒤를 이었다. 런던 화재 사건이 설문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2차적인 훼손을 막기 위해 낡은 스프링 쿨러 보다는 물을 쓰지 않는 화재 예방법이 연구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악사(AXA) 아트 보험사의 크리스티안 피셔 대표는 1000여개의 항목에 해당하는 질문을 통해 제대로된 작품 수장고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국제 리스트 진단 플렛폼(Global Risk Assessment Platform)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하드웨어적인 문제점, 보험 그리고 유지 및 관리에 이르는 예술품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한국도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관하는 수장고의 기준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정책적인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지금도 구석진 다락방이나 지하창고에서 먼지와 습기에 우리의 소중한 예술품들이 신음하고 있다.
- 파이낸셜뉴스 2009.3.6 이대형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영구 컬렉션 3500여점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 루체 파운데이션 센터(Luce Foundation Center)의 전경?? 이 수장고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수장고가 아닌 보물창고 같은 수장고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
▲ 컬렉터들은 작품을 구매할 때 작가의 이름이나 가격,작품의 상태 등을 고려하지만 아직은 그 작품을 보관할 수장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500년이 넘은 이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박물관측은 특별히 제작한 컨테이너로 더 이상 작품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