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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14] 빅토리안 페인팅: 화사하고 달콤하고 매끈한 그대여!

이주헌


영국 빅토리아여왕시대 양산
미술사적으로는 이류로 찍혀
현대에 들어 ‘대중성’ 재평가
서양미술사 개론서들을 읽다 보면 서술의 대부분이 새로운 양식이나 사조를 이끈 유파와 작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문화예술 분야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이끄는 이들이 갖는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만 조명이 집중될 때 묵묵히 기존의 전통을 잇거나 당대 대중의 미감이나 취향을 중시한 이들은 실제 가치보다 지나치게 평가절하되기 쉽다.
근대 미술사에서 이런 외면을 받은 대표적인 미술이 영국 빅토리아조(1837~1901)의 회화다. 흔히 ‘빅토리안 페인팅’이라고 하는 이 영국 회화는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 시기에 제작된 그림들로, 갈래나 스타일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 생산되었음에도 미술사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아니, 거의 무시되었다. 대중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돼 ‘센티멘털’한 성격이 짙은데다 양식적으로도 절충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이류 미술’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회화가 얼마나 큰 ‘미술사의 저주’를 받았는지는, 대표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로런스 앨마 태디마(1839~1912)의 작품 값 변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살아생전 1만 파운드가 나가던 그의 작품이 그의 사후 20년 뒤 20파운드로 떨어졌다. 가치가 500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미술사가 갈수록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는 사후 사반세기도 못 되어 무명작가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를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그래도 살아 있을 때 가장 인기 있는 화가이자 가장 작품 값이 비싼 화가였고, 예술 발전에 끼친 공로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명성의 ‘급전직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은 수작의 경우 100만파운드(20억원) 이상의 가격에 거래된다. 이는 그의 명성이 다시 회복되었음을 의미하는데, 그 같은 변화를 통해 빅토리안 페인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빅토리안 페인팅은 현대에 들어 재발견된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앨마 태디마의 작품 <견해차>를 봄으로써 빅토리안 페인팅의 매력과 이 미술이 그동안 겪을 수밖에 없었던 ‘수난’의 이유를 살펴보자.

그림은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단한 신화 이야기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은 아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로마 시대의 이름 모를 선남선녀다. 그들은 지금 수반(水盤) 곁에 서 있다. 여인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남자는 그런 그녀를 답답하다는 듯,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지금 두 남녀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제목이 시사하듯 두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황상 그것은 분명 사랑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굳이 고대 로마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남녀 사이의 갈등을 아련하고 낭만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며 갖게 되는 첫인상은 매우 달콤하다는 것이다. 비록 주인공 남녀가 나름의 갈등 구조 속에 있는 게 분명해 보이나, 그것조차 사랑과 추억의 달콤함과 관련된 그런 것이다. 화사한 햇빛, 아름다운 풍경,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황 …. 우리도 현실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들일랑 다 잊고 저 청춘남녀처럼 환상적인 이국땅에서 달콤하고 낭만적인 일상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센티멘털리즘과 화려하고 매끄러운 표현은 당대의 대중들에게 크게 격찬을 받은 요소였지만, 바로 그게 미술전문가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였다. 사실 빅토리안 페인팅만큼 화려하고, 감각적이고, 눈물이 많고, 로맨틱하고, ‘야한’ 그림도 드물다. 어쩌면 서양미술사상 가장 대중성이 강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에서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된 데는,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 동안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근대적이며 부유한 나라였다는 사실이 영향을 끼쳤다. 자수성가한 많은 중산층이 자신들의 기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대중적인 입맛과 취향이 화가들의 붓놀림에 거대한 중력으로 작용했다. 대중의 부와 낙관주의, 자기 확신 같은 것이 서양미술사상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창작의 동기로 기능했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측면에서 보면 프랑스도 영국 못잖은 주도국이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여러 차례 혁명을 겪는 동안 영국에서는 한 번도 혁명다운 혁명이 없었다. 이런 정치적·사회적 차이는 문화의 전개에서도 유사한 차이로 이어지는데, 이를테면 프랑스의 미술사조가 신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인상파-후기인상파로 이어지며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부정하는 혁명의 형식이었다면, 영국은 앞의 것과 뒤의 것, 옛것과 오늘의 것, 엘리트의 것과 대중의 것이 서로 섞이고 타협하는 절충의 형식이었다.
대륙의 ‘각진’ 사조들이 영국으로 흘러들어와도 이는 금세 무뎌져 앨마 태디마의 그림에서 보듯 한 그림 안에서 신기할 정도로 절충적으로 섞이고 거기에 대중의 취향까지 잘 버무려져 들어가곤 했다. 이는 실로 빅토리안 페인팅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개성이었으나, 문제는 이런 절충주의가 모더니스트들의 견지에서 볼 때는 일종의 타락이요 저급함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빅토리안 페인팅의 명성이 많이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이 회화의 절충주의와 감상주의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다만 지나친 순수주의의 경직성을 보인 모더니즘과 달리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절충주의를 선호하고, 대중문화가 산업화되는 오늘 대중의 감성과 감수성을 다른 무엇보다 중시하는 현상이 그래도 빅토리안 페인팅에 우호적인 환경이 되어주고 있다.
빅토리안 페인팅의 장르는 초상과 풍경, 풍속, 동화, 스포츠와 레저, 사교계, 역사, 신화, 누드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동화 그림(fairy painting)은 다른 미술에서는 흔하지 않은 이 미술의 인기 장르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인들이 동화 주제의 그림을 좋아했다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 현대인들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영화든 그림이든 이미지를 통해 환상과 꿈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강한 현실도피의 충동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화 주제 그림은 당연히 문학을 바탕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스펜서의 <요정 여왕> 등이 인기 있는 주제였다. 리처드 도일의 <풀잎 아래-어느 가을 저녁의 꿈>은 동화 그림이 지닌 환상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숲을 그린 그림 같지만, 아랫부분 풀잎들을 잘 보면 작은 요정들이 무리지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들은 미술이 저런 요정들의 숲과 같은 아름답고 꿈결 같은 안식처가 되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 로제티, <피아메타의 환상>, 1878, 유화, 개인 소장. 일찍 죽은 보카치오의 연인을 사과 꽃을 배경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왼쪽) 앨마 태디마, <견해차>, 1896, 유화, 개인 소장(오른쪽)
» 도일, <풀잎 아래-어느 가을 저녁의 꿈>, 1878, 수채화, 대영박물관.
http://www.hani.co.kr/arti/SERIES/201/3313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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