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
초자연적 메신저…여러 종교에 존재
3세기중반 유물엔 날개 없이 묘사돼
성탄절이 다가온다. 성경에는 천사가 양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이때의 천사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떠올릴까? 대부분 커다란 날개 한 쌍이 달린 잘생긴 미남 미녀로 떠올리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성경은 천사가 그렇게 생겼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없다. 그렇다면 그 천사상은 어디서 유래된 것인가?
흔히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라고 하지만, 기독교 미술만 놓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기독교 미술은 그리스와 이집트의 종교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철저한 혼혈아다.
예를 들어보자. 성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자상은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앙과 관련이 있다. 5세기, 성모 숭배를 배격하는 네스토리우스 파가 등장하자 교회는 이를 이단으로 배척하면서 성모 공경의 관습을 더욱 진작시키기 위해 미술을 동원했다. 이때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성모의 위상을 강조한 이미지, 곧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이 활발히 보급됐는데, 그 창작 모티프는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 여신과 호루스 모자상으로부터 왔다.
당시 지중해 일대에는 이시스 여신이 아들 호루스를 무릎에 앉힌 이미지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이 인기 있는 이교의 이미지를 채택함으로써 교회는 이에 친숙한 신도들이 자연스럽게 성모에 대한 친밀감과 공경의 염을 갖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도 그 기원은 다른 종교에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긴 머리에 수염이 난 예수의 초상은 엄밀히 말해 제우스의 얼굴로부터 온 것이다. 제우스의 얼굴이 왜 예수의 얼굴이 되었을까? 이는 제우스의 외모가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신의 이미지로 오랫동안 뿌리 내려왔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예수를 그보다 못하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겐나디오스는 그리스도를 제우스처럼 그리려다 손이 오그라든 화가를 치유해 주면서 “짧고 곱슬곱슬한 머리의 예수 상이 진짜”라고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시절 이 짧은 고수머리의 예수 상과 제우스 스타일, 그리고 위엄 있는 노인 상의 세 가지 경합 상 가운데 끝내 예수의 이미지로 살아남은 것은 제우스 스타일이다. 이 이미지는 너무도 강렬해 이와 달리 표현한 예수는 예수 같지가 않을 정도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천사에게 눈길을 돌려 보자. 한 쌍의 날개를 지닌 천사 이미지는 그리스의 날개 달린 신격들, 그러니까 에오스나 에로스, 타나토스, 니케 등으로부터 왔다. 이 가운데 니케의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가 기독교 미술가들이 천사를 형상화하는 데 핵심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실 천사는 기독교뿐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영어 에인절(Angel)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안겔로스(Angelos)가 ‘사자, 전달자(Messenger)’의 뜻을 지니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천지의 운행을 관장하거나 인간과 나라를 수호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기독교의 천사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워낙 인간과 흡사해 얼른 봐서는 사람과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이런 특징으로부터 이들이 날개가 달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날개가 달려 있다면 어찌 이들을 즉각적으로 구별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까. 3세기 중반 프리실라의 카타콤에 그려진 천사 상을 보면 날개가 없다. 성경상의 설명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그림뿐 아니라 이 무렵의 석관이나 성유물함에 묘사된 천사들은 모두 날개를 지니고 있지 않다.
물론 성경에 날개 달린 천사상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경은 스랍(세라핌) 천사를 날개가 달린 존재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생경한 것은 이들에게 날개가 세 쌍이나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성경 이사야서(6장 2절)에 보면,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나머지 둘로는 날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스랍은 천사 품계 상 최고위급 천사다. 5세기에 위(僞)디오니시우스에 의해 제시된 기독교 천사의 위계를 보면 모두 9품의 천사가 있는데, 3품씩 무리지어 상·중·하급으로 나뉜다. 신의 보좌 곁을 지키는 스랍 천사와 달리 인간 세상을 오르내리며 우리와 교류하는 천사는 하급 천사들이다. 성경에 이름까지 나와 그 개별성이 또렷이 인식되는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 같은 대천사도 일반 천사보다는 높지만 역시 하급의 지위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날개 달린 천사의 이미지는 4세기 말께 제작된 것이다. 이후 간혹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사는 항상 한 쌍의 날개를 지닌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리스 신격의 영향 외에도, 천사가 신령한 영체이자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점에서 날개 이상으로 이 존재의 위상을 적절히 표현할 다른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니케나 에로스 역시 제우스, 아폴론 같은 높은 신과 낮은 인간 사이에서 두 존재에게는 없는 날개의 이미지로 적절히 자신들의 중간자적 위치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천사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이미지 전략’이었던 셈이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부그로의 <천사들의 노래>에서 우리는 이 신비로운 천사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그림은 아기 예수를 재우려다가 자신마저 잠들어버린 성모를 주제로 하고 있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곳에 다 계실 수 없어 어머니를 창조했다”는 서양 속담도 있지만, ‘어머니’로서의 동병상련이랄까, 신은 육아에 시달리는 성모를 돕고자 음악천사들을 내려 보냈다. 그러나 천사의 연주에 보채던 아기뿐 아니라 성모마저 잠들어 버렸다. 성모의 지친 표정이 안타까운 천사들은 두 사람이 잠들었는데도, 그치지 않고 계속 음악을 연주한다. 아름답고 선량한 천사들을 통해 신과 어머니의 사랑을 끝없는 론도로 확인하게 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천사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지만, 천사는 원래 무성(無性)의 존재다. 다만 화가들의 필요에 의해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그려져 왔다. 부그로의 그림에서처럼 음악천사는 대부분 여성으로 그려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독교의 천사 가운데는 아기 천도 존재한다는 것인데, 성경에 전혀 언급이 없는 이 존재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거치면서 대중적으로 매우 인기 있는 천사로 등극했다. 그 이미지의 원천은 에로스다. 성탄절이 되면 더욱 그렇지만, 아기 천사 없는 천사의 세계는 이제 상상하기 쉽지 않다.
서양회화사상 가장 인기 있는 아기 천사를 꼽으라면, 라파엘로의 <시스틴의 마돈나>에 그려진 두 명의 아기 천사일 것이다. 호기심이 많아 할 일을 까먹고 다른 데 열중하는 아이들 특유의 표정이 잘 살아 있다. 그만큼 그림에 인간적인 풍미를 불어넣는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 부그로 <천사들의 노래> 1881, 유화, 213.4x152.4cm, 포리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 미술관
» 천사 이미지의 유래가 된 승리의 여신 니케(<사모트라케의 승리의 날개>). 기원전 2세기, 대리석, 루브르 박물관
» 라파엘로 <시스틴 마돈나>의 왼쪽 아기 천사 부분, 1513년경, 나무에 유채, 드레스덴 회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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