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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⑫ 멸종 동물 ‘부활’시키는 디지털아트 프로젝트

이대형


미래의 인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미 인간은 자연의 가혹함에 면역력을 상실했고 당장 공장을 중단하거나 냉·난방을 억제할 수 없을 만큼 허약해져 있다. 당장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갈 순 없다는 얘기다. 이는 달에 우주 마을을 세워 거주하는 것 보다 더 힘들고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이제부터라도 현재의 기술과 의지에 적합한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그동안 어떤 잘못된 행보를 걸어 온 것일까.

인류의 역사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변화시켜 온 정복과 파괴의 역사와도 같다. 안락한 생활을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시작된 산업혁명은 자연의 파괴를 정당화하였고, 그 결과 수많은 동·식물들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기술은 진보하고 자원은 고갈되고 있지만 인류의 소비가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양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10년 전에 보았던 동물을 이젠 동물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은 굳이 역사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경기도 화성의 작은 산골 마을 야산 중턱까지 올라가면 계곡이 하나 있다. 그 계곡 바위 아래 가재가 살았다. 산속에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을까 하고 믿기 어렵겠지만, 그 만큼 자연이 온전히 잘 보전되어 있었다. 한참 유행했던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의 주인공들이 다 거기에 있었다. 토끼도 제법 보였다. 그런 산 위로 지금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경제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초목과 생명체들이 위협받고 있는 현장을 한심하게 지켜보는 마을 어르신 한 분이 말했다. “이제 이 마을도 죽었어.” “마을이 개발되면 좋은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더니, 어르신이 혀를 차며 답했다. “산이 없어지면 새소리도, 매미소리도 없어지는 게야. 그건 개발이 아닌 학살이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가 탄소 규제안을 채택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녹색경제를 떠들고 있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신문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녹색 경제, 환경정책이 작은 산 하나를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토지보상비를 조금이나마 줄인다는 계산이 아니고서야 충분히 산을 피해갈 수 있는 동선인데도 말이다. 큰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성 앞에 환경을 희생시키는 근시안적 개발 현장이 대한민국 환경정책의 현주소다.

▲ 인터랙티브 디지털 호랑이. 미디어 아티스트 정영훈의 디지털 동물원의 모태가 된 디지털 호랑이 그룹이다. 정영훈은 세계 처음으로 디지털 동물원을 만들어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교감방식을 창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 100여종의 생명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풍요로움이 배출한 탄소가 지구의 온도를 높이며 환경을 바꿔놓고 있다. 여기에 몸에 좋다는 이유로, 비싼 명품으로 팔린다는 이유로 수많은 동물들이 포획·가공되고 있다. 동물들이 산이나 정글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생명체를 지켜나갈 방법은 없을까, 아니 적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예술적으로 탄생한 호랑이와 관객과의 새로운 소통을 연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영훈 작가를 만났다. 그의 꿈은 호랑이를 시작으로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을 가상의 공간 속으로 불러들여 세계 최초로 디지털 동물원을 만드는 것이다. 온갖 인터랙티브 실험을 반복하며 호랑이와 관객의 소통 시나리오를 구상하기에 여념이 없는 정영훈 작가에게 디지털 동물원의 가능성과 목표에 대해 물었다. “제가 만들고자 하는 디지털 동물원은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거나 동물을 재현·복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적 메시지를 통해 동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겁니다. 대상의 모방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아닌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교감 방식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진화는 상호작용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이 도시에서 진화하듯이 더불어 사는 동물도 바뀐 환경 속에서 멸종이 아닌 진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동물원에 갇혀 힘없이 죽은 고기만 먹고 살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맹수를 보고 어떤 교감이 이루어질까요. 저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소통을 자연 속의 법칙과 더불어 대부분의 인간이 살아가는 도시환경 속에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디지털 동물원은 관객과 철창에 갇힌 동물로 나뉘는 이분법 구조가 아닌 관객과 동물이 상호 소통하는 경험을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화산섬과 바다 그리고 거기서 서식하는 식물과 동물들을 도시 안으로 끌어 들이면 이전에는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소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소통에서 나옵니다. 이들 동·식물들이 학습의 대상이 아닌 감정을 가지고 반응하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사람들 한테 알려주고 싶습니다.”

꽃과 나비를 사랑하고, 사라져가는 동물과 동물원에 갇혀 생기를 잃어버린 동물의 왜곡된 이미지를 한탄스럽게 바라보았던 작가의 수년간의 고민과 열정이 디지털 동물원에 대한 확고한 의지로 표현된 것이다.

▲ 지난 2004년 대만 타이베이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디지털 꽃을 보고 관객들이 신기해 하고 있다. 만지면 나비로 변해 날아가고 다시 시간이 지나면 나비들이 날아와 꽃으로 변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생명체가 살고 있어서다. 산속에 숨어 사는 작은 가재 한 마리를 소중히 지켜내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을 아낄 줄 알아야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먼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적과 친구의 구별은 명확하다. 좋은 감정의 소통을 경험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에서 시작한다. 정영훈의 디지털 동물원은 바로 이 소통의 구조를 이해하고 거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동물원이 이 세상에 하나가 아닌 보다 많이 생길 수 있어 보다 많은 사람이 다른 종과의 소통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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