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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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서울에 볼거리가 많아서인지 올해 들어 외국인 친구들이 자주 서울을 찾고 있다. 지난주 이탈리아에서 귀한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인사동 전통 주점에서 저녁으로 한국식 피자(해물전)에 막걸리까지는 좋았는데 서울 어디를 구경시켜 주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남산이 좋을까, 동대문이 좋을까. “아 맞다. 지금 몇시지? 이런, 30분밖에 안 남았네.” 오후 7시 서둘러 청계천으로 향했다. 시간을 다투어 달려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기다란 청계천에서 그 목표물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청계천 광교 하류 북측 옹벽 위로 그 날도 어김없이 일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아래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한 무리의 관광객들 뒤로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꽃 무리가 우리를 황급히 달려오게 한 것이다. 미구엘 슈발리에의 설치 작품 ‘프랙탈 플라워’다. 지난해 하이 서울 패스티벌 겨울축제와 함께 개막되어 1년간 오후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하루에 세 번씩 운영되는 인터렉티브 작품이다. 이 작품 하나를 보러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수많은 작은 면들이 모여 만들어 낸 가상의 꽃 ‘프랙탈 플라워’는 청계천을 무대로 사람들에게 활짝 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관객들의 움직임에 따라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도 한다.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빛과 이국적인 식물성이 절묘하게 조화된 슈발리에의 대표작이다. 지난 2006년 서울 평창동 모화랑에서 슈발리에를 본 이후 그의 작품을 이곳 청계천에서 다시 보게 된 셈이다.
이 작은 영상 설치 작품을 본 한 일본인 관광객은 “움직이는 디지털 화원이 도심 한 복판 청계천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다고 자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이 일본인 관광객에게는 이 작은 예술품 때문에 청계천이 전혀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기억된 것 같았다. 이처럼 예술은 무미건조한 구조물 안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창의적인 제스처에 다름 아니다.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말이다. 청계천 같은 물길은 수없이 많지만 오늘날 서울의 청계천처럼 자연과 도시, 사람과 예술, 전통과 디지털이 가깝게 어우러진 공간은 흔치 않다. 그 특별함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다름아닌 작은 예술품이다. 청계천이 멀리서 바쁘게 와볼 만한 자랑스러운 볼거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관리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향후 보다 발전된 프로그램을 위한 담론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아직까지 세계적인 관광지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들은 루브르박물관은 몰라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는 안다. 그리고 이 걸작을 보기 위해 루브르박물관을 찾는다. 그러기 위해서 파리를 방문해야 하고 또 프랑스행 비행기표를 사야 한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모나리자’를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기 때문에 루브르의 가치는 계속 상승하고 또 그런 박물관을 보유한 파리를 보고 사람들은 ‘예술의 도시’라고 칭송한다.
결국 성공 포인트는 작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국가를 홍보해서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추상적인 마케팅보다는 특성화된 도시의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도시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 볼거리가 실제 광관객을 맞이했을 때 얼마만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콘텐츠를 생산하는 아티스트들을 스타로 키워내야 한다는 점이다. ‘모나리자’에 특별한 이야기를 부여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미술사, 소설, 만화, 엽서, 영화, 심지어 교과서에서까지 다뤄진다. 여기서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나라 이름은 주연도 조연도 아닌 배경으로 다뤄진다. 이런 이유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해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전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경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로의 관광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상당한 경제적인 가치로 환원되어 왔다.
쉬운 일 같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벽돌로 만리장성을 쌓는 식의 하드웨어 껍질에 집착하거나 일회성 행사에 불과한 축제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특수 계층 이외에는 도시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 소프트웨어가 빈약한 하드웨어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인적·제도적 시스템에서 비롯되고 있고 일회성 낭비 행사는 단기적인 결과를 중시하는 짧은 비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오류다.
앞서 언급한 슈발리에는 청계천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누빌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아티스트다. 그를 보면서 예술과 문화의 힘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한국도 스스로 스타 아티스트를 키워낼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독창적인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 서울,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 한단계 올라설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예술을 대변하는 국공립 미술관이 껍질만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국내 정치 논리가 아닌 국제 정치 논리를 반영해 전문가를 최전방에 내세우고 그들을 후원해야 한다. 미술관은 창의적인 담론과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문화의 실리콘밸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경제와 과학은 첨단 구조로 가고 있는데 예술이 아직도 오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뒤떨어진 내부구조 때문이다. 창의적인 생각과 전략이 실행에 옮겨지는 속도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와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전문 행정 인력이 절실하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문화 인프라는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제 누가 어떤 콘텐츠로 그 빈 공간을 채워넣어야 하는가의 선택의 문제만이 남았다. 전문성이 결핍된 대형 업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모와 시행은 값싼 재료와 해외 컨셉트의 모방만을 반복하는 따라하기 행사에 불과하다.
디자인 서울을 표방하는 서울의 문화 정책의 향방이 궁금하다. 21세기 문화정책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어디에, 누구를 위하여 쓸 것인가의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드웨어가 먼저냐, 소프트웨어가 먼저냐의 해묵은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정상권에 있다. 정책과 제도는 올바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잘 만날 수 있게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하이 서울 패스티벌 이후 홀로 남겨진 슈발리에의 청계천의 꽃이 좋은 예다. 사람들은 서울이 아닌 그 꽃을 보러 올 것이다.
/milklee@gamil.com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http://www.fnnews.com/view?ra=Sent1301m_View&corp=fnnews&arcid=090212155509&cDateYear=2009&cDateMonth=02&cDateDay=12
▲ 서울이란 도시의 빛과 디지털 아트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상의 꽃 ‘프랙탈 플라워’,퍼블릭 아트의 대표작품으로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꾸준히 반복되는 등 시민과 호흡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 파리 샹젤리제 건물에 설치된 뉴미디어 아트. 특수 감지 센서를 통해 거리의 시민들 반응에 따라 수목이 자라나고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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