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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⑧ 벤처 화랑 ‘예술가의 꿈’

이대형


최악의 시나리오는 언제쯤 끝날까. 지난해 말 리빙톤 암스 갤러리가 문을 닫았고 블루칩 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스튜디오 팀을 대폭 축소했다. 그리고 소더비는 두 달 만에 690억원을 손해봤다. 막연하게 불안감을 주었던 소문이 모두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2005년 마이애미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데뷔했던 갤러리 엠마뉴엘 페로틴 마이애미 역시 지난 3일 문을 닫았다.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 일본의 다카시 무라카미, 이란의 파하드 모시리 등 세계 정상급 작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번 결정은 충격적이었다. 이로써 화려한 전시공간과 사치스러운 오픈 파티, 그리고 스타급 인사들을 움직이는 카리스마를 더 이상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을 열광케 했던 ‘프랜치 토네이도’가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다.
엠마뉴엘 페로틴만 바라보고 있던 소속 작가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프랜치 토네이도가 정말 사라진 걸까. 두 달 전 ‘더 아트 뉴스페이퍼’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프랑스와 미국 마이애미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엠마뉴엘 페로틴이 ‘예술가의 꿈’이라는 새로운 벤처 사업을 벌인다는 소식이었다. 내용인즉 작품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거대한 작품을 지원할 수 있는 채널이 생겨 작가가 보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보다 거대한 규모로 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화랑과 잘만 연계한다면 보다 좋은 작품이 전시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으로 보였다. 페로틴 대표가 거대한 화랑 하나를 줄이면서 시작한 일이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술가의 꿈’은 말 그대로 작가들이 꿈꾸는 생각을 구현해주는 프로젝트이면서 동시에 외부 자본을 끌어오기 위한 회사다. 컬렉터들이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활동을 지원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 지원에 가깝다. 제프 쿤스 작품 제작을 지원해 주었다가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제프리 다이치 갤러리의 지원 덕분에 오늘날 제프 쿤스가 있는 것이다. ‘예술가의 꿈’은 보다 적극적으로 한 작가를 만들어 간다는 측면에서 단순히 완성된 작품을 구매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효과를 발휘한다. 팔기 위해 지금 당장의 시장의 취향을 반영하지 않고 작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렇다면 작품 제작비를 지원해 주는 투자자들에게는 어떤 수익이 돌아가게 되는 걸까. 페로틴 ‘예술가의 꿈’ 대표는 투자가들이나 딜러가 매우 놀랄만한 수익을 가져갈 확률은 높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준비했다”고 덧붙인다. 그 내용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먼저 ‘예술가의 꿈’이란 회사의 지원금을 받아 제작된 모든 작품은 갤러리 엠마뉴엘 페로틴을 통해서만 거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작가와 갤러리가 수익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구조에 투자가가 개입하는 삼분법 구조를 취한다. 작가의 지분은 그대로 보호하고 갤러리의 지분 중 일부가 투자가의 몫이 된다. 수익 배분 비율은 작품이 완성된 시점에서 팔려나가는 시점까지의 시간에 정비례해 투자가의 몫이 높아진다. 이 조항 하나 때문에 ‘예술가의 꿈’ 프로젝트는 여타 다른 지원프로그램과는 차별된다. 예를 들어 작품이 3개월 이내에 팔리면 수익률은 10%이고 18개월이면 27.5%, 60개월 뒤에 팔리면 수익률 역시 37.5%까지 올라간다. 이 점이 페로틴 대표가 자랑하는 위험요소를 줄이는 전략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좀 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일에 투자한 투자가들에게 보다 큰 수익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든 구조다.
페로틴의 ‘예술가의 꿈’은 지극히 상업적인 프로젝트다. ‘돈을 쓰지 않고서는 미술시장에서 돈을 벌 수 없다’라는 대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돈 낸 만큼 가져가고 기다려준 만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계약 조건에 추가한 것은 여러모로 탁월한 발상이다. 작가는 좀 더 앞을 내다보고 작업할 여유가 생기고 투자가는 지금 당장 팔릴 만한 작품보다는 적어도 60개월 이후에 팔리는 작품에 응원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고 갤러리 입장에서는 3개월과 60개월 사이에 40%에서 12.5%까지 수익률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단기간 내에 작품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될 것이 뻔하다. 지난 2007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있었던 피오트르 우크란스키의 ‘플로어 댄스(Floor Dance)’ 같은 거대 프로젝트가 ‘예술가의 꿈’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페로틴 대표는 이미 200만유로를 모았다고 한다. 자본 투자에 의해 무지막지한 프로젝트성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나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를 더 이상 부러워 하지 않을 날이 멀지 않았다. 기발한 상상력과 지치지 않는 열정만 가지고 있다면 ‘예술가의 꿈’은 이루어진다.
▲ 테이트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의 바닥을 수놓았던 피오트르 우크란스키의 설치 작품으로, 작가는 이를 통해 빛과 소리가 어우러진 공간을 연출한다.
그 렇다고 ‘예술가의 꿈’을 그대로 따라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새로운 시장 여건 속에서 좀 더 참신한 비즈니스 플랜과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 보다 노골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봤다. “누가 작품을 소유하는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실제로 만든 사람은” 아니면 “제작비를 부분 혹은 전부를 지원해준 사람은” “보다 구체적으로 전시가 끝났다는 전제 하에 작품을 판매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얼마동안 판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
‘예술가의 꿈’이 단기간에 200만유로를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소유권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지원도 좋다지만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적은데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페로틴 대표가 준비한 것은 무엇을 돌려줄까였지, 어떻게 벌어들일지가 아니었다. 아직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친 불안감이 실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대책 없는 비관론 만은 피해야 한다. 작가, 큐레이터, 화랑 모두에 넘어야 할 위기가 첩첩산중으로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대안을 찾고 보다 창의적인 솔루션을 만들어 내야 한다. 21세기는 변화의 시대다. 무엇을 선택하는가 못지 않게 얼마나 좋은 타이밍에 결정을 내리는가의 속도가 중요한 시대다. 하드웨어의 사이즈에 집착하지 않고 소프트웨어의 유연함을 활용해야 한다. 공간은 많고 기회도 많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언제,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다. 작가, 화랑, 큐레이터, 컬렉터 모두의 몫이다.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콘텐츠 생산자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다. 콘텐츠에 투자하라. 작품이 아닌 작가에 투자하란 이야기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milklee@gamil.com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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