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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⑦ 당신의 본능을 믿으라

이대형

2009년 기축년의 미술시장은 어떻게 전개될까. 지난해는 세계 금융위기의 한파로 인해 미술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연일 경매 신기록 행진을 계속하던 소더비 옥션 하우스가 구조조정을 선언하며 감봉은 물론 감원을 진행하고 있다. 예산도 전년 대비 90억원 정도 줄어들 전망이다. 소더비의 경쟁사인 크리스티 역시 정리해고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미술계가 긴장하고 있다. 추위는 한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이듯이 이 모든 게 미술의 본질을 모른 채 투기에 열을 올린 탓이다.
사실 지난해는 1984년과 1990년대 초에 불었던 미술시장의 호황을 연상케 했다. 실례로 매이 모제 인덱스(Mei Moses Index·2007)에 따르면 미술품에 투자했을 경우 수익률이 무려 20%를 넘어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5%의 수익률을 기록한 S&P500과 비교한다면 상당한 수익률이다.
이런 현상을 본 사람들은 미술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로 보고 이렇게 물었다. '미술품에 투자해도 괜찮은가요?' 영국의 필립스 드 퓨리&컴퍼니의 시몽 드 퓨리 회장은 대답했다. '어떤 미술시장도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상승도 있고 정체도 있고 심지어 하락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로 미술시장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술시장을 바라봐야 성공합니다.'
지난해 5월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이기도 한 러시아의 갑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루시앙 프로이트의 '누드화'(420억원·크리스티)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1100억원·소더비)를 구매하며 부를 과시했다. 저택, 크루즈, 잠수함, 헬기, 자동차에 이어 로만이 선택한 것은 무지무지하게 비싼 그림이었다. 현대미술이 천문학적인 경제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라워했다.
6월에 열린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현장도 예년과 다름없는 호황을 보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이전에는 컬렉터의 30%가 미국인이었던데 비해 올해는 10%만 미국 출신이라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달러가 유로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진 점도 있지만, 러시아와 인도 등에서 온 신흥 부호들의 출현이 컸다. 아트 캐피털 그룹의 이안 팩 대표에 따르면 미술품을 사기위해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전년 대비 30% 증가하였다고 한다. 구입한 작품 자체를 담보로 설정해두는 이들 신흥 컬렉터들은 불안정한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 속에서 새로운 투자의 대안으로 미술을 택한 것이다.
전세계적인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10월의 미술시장은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소식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데미안 허스트는 1300억원을 벌어들였다. 낙찰받은 작품의 3분의 1이 러시아 컬렉터들의 손에 안겼다. 소더비 러시아의 디렉터 미하일 카맨스키는 러시아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러시아의 갑부들이 처음에는 비싼 자동차나 화려한 저택으로 부를 과시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들의 과시욕이 미술품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미술품 수집은 이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작품의 30 %가 특정 국가의 컬렉터에게 낙찰받았다는 점이 함정이었다. 이게 위험의 전조였다.
이로부터 한 달이 지난 11월, 미술 시장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달이었다. 그리고 재앙의 진원지는 놀랍게도 미술시장의 중심부인 뉴욕이었다. 전시를 통해 한 점도 팔지 못하는 갤러리가 속출하고 있어 몇몇 전문가들은 2009년 봄을 넘어서면서 문을 닫는 화랑이 상당수 나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월가와 부동산 재벌들이 경쟁적으로 사들이며 키워왔던 뉴욕 미술시장의 활기가 냉기로 바뀐 지 오래다. 얼마 전 끝난 뉴욕 ACAF(Asian Contemporary Art Fair)의 관객은 전년도의 1만9000명에서 1만2000명으로까지 줄어들었고 판매 현황은 더욱 고통스러운 수치였는지 밝히기를 꺼리는 화랑이 많았다.
뉴욕 소더비와 크리스티 역시 추정가를 밑도는 선에서 거래됐다. 아트 시카고, 아모리 쇼 등의 메이저 아트페어에 참여를 보류하겠다는 화랑, 2009년도 전시 상당수를 취소하겠다는 화랑, 올해 봄까지 한 점도 팔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하겠다는 화랑 등 상황이 심각하다. 버블이 터진 것이다.
1989년 역시 버블이 터진 해였다. 1987년 10월 19일 주식시장의 붕괴가 있은 지 18개월 만의 일이었다. 1993년까지 4년 동안 미술품의 가격은 평균적으로 56%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2009년에 전개될 상황과 1989년의 상황은 많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중심이 다변화 되었고 시장의 유통 구조 또한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치를 만드는 시스템 역시 보다 세련되게 변했다. 따라서 2009년 한 해는 시장에 헤게모니를 빼앗긴 미술이 다시 한번 미술 본연의 목적과 모습을 되찾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룻밤 사이에 스타로 올라선 영 아티스트의 성공 신화는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들다. 스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만 작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2009년 미술시장에 대해 샌타모니카 미술관의 전시 '익명(Incognito)'에서 작은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전시는 300달러 균일가에 작품을 판매한다. '당신의 본능을 믿어라!(Trust Your Instinct!)'라는 가이드 라인을 따라 관람객은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만을 선택할 수 있다. 작가 이름은 구매가 끝난 다음에야 알 수 있다. 유명 작가와 신진 아마추어 작가의 작품이 뒤섞인 전시 속에서 어떤 사람은 10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 작품을 가져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결국 가치는 감상자의 몫이라는 얘기다. 신문이나 옥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수치와 작가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을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미술이 살아 남는다.
/milklee@gamil.com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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