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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④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대형


경제가 어려운데 소비라도 줄여야지, 하지만 턱없는 소리다. 잠을 깨기 위해(커피 한 잔 3500원), 세상 돌아가는 소리를 듣기 위해(신문 1부 700원),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우유 1500원) 우리는 대가를 지불한다. 할리우드 영화보다 김홍도와 신윤복이 나온다는 영화가 좋고, 초코우유보다 ‘진짜’ 초코가 들어간 우유를 선택한다. 현대인은 이처럼 소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소비를 통해 나를 발견한다.
현대인이 선택하는 건 상품이 아닌 이미지다. 현대인은 이미지에 열광한 나머지 이미지를 따라하고 이미지를 먹고 이미지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운다. 누가 이미지를 지배하는가를 놓고 벌이는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미지를 통해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그렇다면 이미지란 무엇이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1917년 미술계에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다다이스트 작가 마르셸 뒤샹(1887∼1968)이 소변기에 ‘R Mutt’라고 사인한 뒤 그 소변기를 그랜드 샌트럴 팰리스에서 있었던 독립예술가협회전에 ‘샘’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하면서 벌어진 스캔들이다. 불경스럽고 비도덕적이고 표절이고 어떤 미적 대상도 될 수 없는, 현대미술에 대한 모욕이라는 이유로 출품되자마자 작가의 사전 동의 없이 작품은 사라졌다. 그러나 1964년에 다시 만들어진 복제본을 보고 그 누구도 “불경하다” “비도덕적이다” “표절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뒤샹이 직접 소변기를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걸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지저분한 소변기에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을 부여해 전혀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심어주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똑같은 이미지인데 사람들은 이제 그 앞에서 기념촬영하기 바쁘고, 콧대 높았던 미술관들은 전시를 하고 싶어 안달이다.
이미지는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태도다. 그리고 이미지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비자의 취향은 나날이 변한다. 싼 것을 찾다가도 기능과 디자인을 보고 또 친환경 제품인지를 따진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에너지 효율이 어떤지까지 살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는가에 소비자들은 동전을 던진다. 이렇듯 소비는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특별한 행위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음악을 듣고, 무엇을 하며 여가를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소비대중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소비자의 특권이다. 이런 특권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점심을 사 먹는 일차원적인 소비를 넘어 특정 생각을 지지하고 특정 문화를 후원하는 소비에 이르러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무엇을 소비할까 고민하는 동물이 되었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쇼핑을 즐기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2008년 피트니 비엔날레와 인천 여성비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1987)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풍자한다. 흑백 사진의 오른손이 마치 신분증이라도 제시하듯 ‘I shop therefore I am’이라는 하얀색 글씨가 쓰여진 붉은색 사각형 명찰을 들고 ‘저는 쇼핑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데요’라고 소개하는 것 같다. 쇼핑을 최고의 가치로 치켜세우고 쇼핑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는 당대 여성을 비꼬는 동시에, 무엇을 소비하는가를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해 버리는 소비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역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 소비와 해석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해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 이미지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신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 방법이야 말로 앞서 이야기한 이미지를 지배하는 해법은 아닐까.
이미지와 텍스트의 조합을 통해 왕성하게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내는 작가 바바라 크루거라면 그런 한계를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작품을 좀 더 살펴보자. 누가 봐도 한눈에 미국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1991년 작품 ‘무제’ 위에 ‘누가 선택할 권리를 가졌나’ ‘누가 법 위에 군림하나’ ‘누가 치료받는가’ ‘누가 보호받는가’ ‘누가 말하는가’ ‘누가 침묵하는가’ ‘누가 경례를 오래하는가’ ‘누가 기도를 크게 하는가’ ‘누가 먼저 죽는가’ ‘누가 마지막에 웃는가’라는 질문이 적혀 있다. 1989년 작품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는 여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고 있는 여성의 신체의 자유와 낙태의 자유를 둘러싼 여성과 남성, 여성과 권력 사이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관객을 직접 응시하고 있는 도전적인 여성의 두 눈이 여자의 몸과 여자의 인생 그리고 여자의 미래가 누구의 선택에 의해서 주어져야 하는지 묻는다.
이렇듯 바바라 크루거는 이미지를 소비하며 동시에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예술가다. 모든 예술가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기존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건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시점을 제시해 주는 이미지가 진정한 의미의 새 이미지다. 그리고 이 새 이미지야말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힘을 갖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바라 크루거에 열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가의 이미지를 차용해 기업의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예를 살펴보자. 2003년 이후 뒷걸음치고 있는 GAP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젊은 층을 흡수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술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피트니 비엔날레의 공식후원사를 자처하며 척 클로스, 제프 쿤스, 마릴린 민터, 키키 스미스, 카이 구어창, 바바라 크루거 등을 포함한 역대 비엔날레 작가 13인에게 한정판 GAP T-Shirts 제작을 의뢰했다. 한정판 전략에다 피트니 미술관, 시카고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등 미술관을 활용한 판매 전략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과연 GAP이 이들 13인의 예술가들의 아우라를 등에 업고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데 성공했을까. 여러분이 그것을 보는 동안 새로운 시점과 생각이 떠올랐다면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실패한 것이다. 뒤샹의 1917년 소변기가 쓰레기가 아닌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논란을 생각해보자. 가치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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