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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⑧왜상-해골? 그거 우리끼리만 알자고

이주헌

첨부파일 : 122751540636_20081125.JPG


선원근법으로 왜곡…보안필름처럼 딴 사람은 모르게
특정 지점·거울반사 때 제대로 드러나…정치·주술 활용

» <대사들>의 왜상 해골

노트북이나 휴대폰의 액정화면에 씌워 정면에서 봤을 때만 화면이 보이는 보안 필름이 요즘 인기다. 이 필름을 씌우면 옆에 있는 사람은 화면을 볼 수 없다. 시야각이 벌어지면 화면이 그냥 까맣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자신은 보고 싶지만 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게 있는 법이다. 이런 의도를 반영해 그려진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왜상(歪像, anamorphosis)이다.
왜상은 말 그대로 왜곡된 그림이다. 왜상으로 그려진 이미지는 볼 수는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다. 보안 필름으로 가린 것처럼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보기는 힘든 그림인 것이다.
홀바인의 <대사들>이라는 그림은 왜상을 이용해 그린 대표적인 명화다. 그림을 보며 왜상에 대해 이해해 보자.
두 남자가 관객을 마주보며 서 있다. 왼쪽에 있는 남자가 영국 주재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1503?~55)이고,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그의 친구인 라보르의 주교 조르주 드 셀브(1508?~41)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두 사람의 나이가 각각 29살, 25살 무렵이었으니 둘 다 이른 나이에 대단한 출세를 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골동품 선반이 있고 거기에는 과학과 지식, 예술을 상징하는 도구들이 놓여 있다. 그들이 얼마나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지를 보여주는 상징물들이다. 일례로 천구의와 해시계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관련이 있어 당시의 새로운 지식에 이들이 진취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가는 두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이들이 얼마나 능력이 있고 훌륭한 존재인지 구석구석 세심히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에게 부와 영광에 매몰되지 않고 인생의 유한함을 기억하며 겸손히 신의 뜻을 따라 살 것을 권면했다. 그 신앙과 죽음의 요소가 그림 맨 왼쪽 상단의 예수 십자고상(커튼 바깥에 살짝 삐져 보인다)과 그림 중앙 하단의 해골이다.



해골이라? 해골이 어디 있는가? 빗각으로 길게 누운 것처럼 보이는 하단의 괴물체가 해골이다. 바로 왜상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일반적인 시점에서 보면 이 이미지는 전혀 해골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화가가 설정해 놓은 특정한 시점에서 보면 금세 해골로 변해 버린다. 그 특정한 시점은 화면이 거의 안 보일 만큼 그림 오른쪽 가장자리로 가 해골을 내려다보는 지점이다. 이 시점을 빼고는 어디서도 제대로 된 해골의 이미지를 볼 수 없다. 이렇게 특정한 지점에서만 보이고 그 지점이 화면을 기준으로 항상 사각(斜角)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런 왜상을 ‘사각왜상’(oblique anamorphosis)이라고 부른다.

» 루스 <생 사뱅 프로젝트> 1966, 벽화

재미있는 것은 해골이 제 모습으로 보이는 그 지점에서 나머지 사물이 다 일그러진 형태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교훈적인 비유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세상이 올바른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죽음과 신앙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과 신앙이 제대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일그러짐이 또렷이 보인다.
사각왜상과 더불어 중요한 왜상의 하나가 ‘반사왜상’(catoptric anamorphosis)이다. 반사왜상은 거울의 반사를 통해 보면 형태가 제대로 보이는 왜상을 말한다. 17세기 말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찰스 2세>를 보자. 제목이 일러주듯 영국 왕 찰스 2세를 그린 그림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주기 전에는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아볼 수 없다. 사람 같기는 한데 심하게 일그러져 뭐 이런 그림이 다 있나 싶다. 하지만 원기둥꼴의 거울을 가져다가 그림 아래쪽에 세워 놓으면 그 거울에 밑의 그림이 비쳐 제대로 된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다. 여기 인쇄된 왜상의 정상 상태를 임시변통으로나마 보려면 쿠킹포일 바를 가져다가 십자가가 있는 구를 살짝 가리는 위치에 세워 보자. 물론 둥글게 감긴 포일 면은 구김이 없이 반들반들해야 한다. 포일 면이 거울과 같지 않아 아주 또렷하지는 않겠지만(더구나 그림의 사이즈와 바의 사이즈를 정확히 맞춘 것이 아니어서 재현된 반사상의 정확성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도 비교적 온전한 사람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왜상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선원근법상의 수학적 체계에 기초해 있다. 선원근법을 발견한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왜상, 특히 사각왜상이 그려지기 시작한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반사왜상은 왜상경이 처음 만들어진 중국에서 이 거울이 이탈리아로 수입된 1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반 사왜상도 원근법에 기초한 수학적 방식으로 계산해 그릴 수 있지만, 매우 복잡하다. 그보다는 투명한 혹은 반투명한 용지에 그림을 그려 투명한 유리 기둥에 붙인 뒤 유리 기둥 안에 불을 켜는 방식이 즐겨 사용됐다. 그렇게 하면 빛이 바깥으로 퍼지면서 바닥에 이미지가 비치게 되는데, 그 왜상을 따라 바닥에 그림을 그린 뒤 유리 기둥이 있던 자리에 왜상경을 놓으면 거기에 바닥의 그림이 비쳐 애초의 정상적인 이미지가 되살아난다.
사 각왜상이든 반사왜상이든 유럽인들 사이에서 이처럼 왜상이 즐겨 그려져 온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아는 사람들끼리만 폐쇄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찰스 2세의 아버지 찰스 1세의 초상도 왜상으로 빈번히 제작됐는데, 이는 청교도혁명으로 처형된 그를 왕당파 사람들이 몰래 추모하려고 남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그렸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목적 외에 에로티시즘이나 밀교 집단의 주술적인 목적을 위해 왜상이 제작되기도 했다.

» 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18·19세기 들어 왜상은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용 그림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현대에는 조형기법의 측면에서 그 다양한 시각적 잠재력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건축적, 공간적 구조를 활용해 현장성과 대중성이 강한 벽화작업이나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프랑스 출신의 조르주 루스가 그 대표적인 미술가다.
루스는 주로 버려지거나 황폐해진 창고, 공장, 학교, 병원 따위의 실내외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물을 설치한 뒤 이를 사진으로 찍는다. <생 사뱅>을 보면, 오래된 수도원 식당의 한쪽 구석을 푸른 사각형의 그림으로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을 의심한다. 공간은 분명 삼차원 공간인데, 거기에 그려진 이미지는 평면에서 보는 사각형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 앞에 커다란 유리벽을 설치한 다음 거기에 푸른 사각형들을 그려 넣고 찍은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 수도원 실내 벽과 천장, 바닥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렇다면 면들이 이곳저곳 꺾였을 텐데 어떻게 저리 반듯한 사각형들로 보이는 걸까? 물론 저 이미지들은 실제 사각형이 아니며, 그려진 곳에 따라 매우 복잡하게 일그러진 도형들이다. 정해진 자리 딱 한 곳에서만 이미지들이 사각형으로 보이고 그 지점을 벗어나면 형태가 해체되어 버리는 그림인 것이다. 사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찍혔다. 사각왜상의 일종인 이 작품을 보며 우리는 이상과 현실의 오랜 긴장과 갈등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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