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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대운하에 빠지다?

정준모

박물관, 대운하에 빠지다?
글/ 정준모(문화행정,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박물관이 행정기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인수위원회가 출범해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을 것 이라는 희망이 넘쳐나고 있다. 물론 현 노대통령은 지난 5년 전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모르지만 철학과 양심을 전제로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강하게 표출하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태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없지만 꼭 한 가지 “문화재청 산하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이관한다.”는 인수위 안에 대해서만은 그의 거부권 행사의지가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 문화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사실 이번 정부 조직개편안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 5년을 함축적,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안이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또 그러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선출된 권력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가 민주국가에서는 남다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편안에 포함된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재청 산하기관화’는 새로운 정부의 문화정책의 향방을 가늠 하게 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차대한 정책이 어떤 연유로 어떻게 이런 안이 나왔는지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정부의 일개 행정기관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법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과 미래의 역사를 짓고 다듬어 나가는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적 체모와 위신을 세우는 상징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정부조직의 슬림화라는 전제아래서 나온 것이겠지만 어느 곳에서는 대운하 건설을 위한 문화재 발굴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설(說)도 들려온다. 하지만 일국의 문화적 체모가 달린 일을 단순히 ‘대운하 건설’과 연관 지어 말하는 사람들은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기 위한 세력을 규합하기위한 수단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에게 박물관이라는 곳은 언제나 정체되고 보수적인 집단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박물관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문화란 민초들의 삶과 철학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문화적 총체이자 집합체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경박하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고 또 이어가는 기관의 속성상 학술적인 연구와 논리적 전개 그리고 미래지향적 가치를 전제로 연구하고 이를 근거로 민족문화의 오늘과 내일을 지어내야 하는 것이다.
문화와 문화재
진중한 자세와 심도 있는 연구결과는 국립박물관의 존립근거이다. 즉 박물관은 단순하게 문화재를 다루는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유산과 함께 오늘과 미래의 문화를 다루는 동시에 한국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이루어 나가는 기관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유네스코 산하 ICOM의 원칙을 예로 들지 않아도 너무도 당연한 일에 속한다. 그런데 박물관을 단순하게 행정기관으로 보아 문화재청에 편입시킨다는 것은 박물관의 원칙을 무시한 처사이자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정한 원칙을 저버린다는 의미에서 UN 가입 국가이자 현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국제규약을 어기는 일이다. 하긴 참여정부에서도 국립미술관을 행정기관으로 보아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하더니 정부가 바뀌자마자 여기에 한 술 더 떠 박물관을 문화재를 다루는 일개 행정기관으로 치부한대서야 이치에 닿는 일인가 말이다.
게다가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의 후신으로 조선황실 재산을 관리하고 황족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물론 여기에 일부 문교부가 가졌던 문화재 보존기능을 흡수해서 문화부의 외국에서 다시 청으로 승격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서울인근의 궁과 능을 관리하고 있는 것도 이왕직의 임무를 그대로 승계한 탓이다. 이런 기관이 슬그머니 대한민국의 문화적 혼과 자산의 보고인 국립중앙박물관을 접수한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과장하면 집안 대대로 써오던 제기를 원수 집 제사에 쓰라고 빌려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 할 것인가.
문화재청의 행정중심의 인력구조로는 전문성이 부족하여 한국의 문화와 문화유산을 유용하게 연구하고 조사할 수 없는 체제와 인적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문화재청의 주요업무는 단지 예산을 분배해주는 기관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그들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충하기 위해 문화재위원과 문화재전문위원을 두고 있으며 산하에 각종 연구소와 학교를 두고 있다.
이는 행정전문직중심의 문화재청이 문화와 문화재를 다루는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들은 이런 외부위원과 부설연구기관을 두지 않으면 업무를 수행 할 수 없는 기관임을 그대로 증명하는 일다. 사실 문화재 위원과 전문위원 제도는 외국 어느 곳에도 없는 제도이다. 여기에 문화재청이 중앙박물관을 접수하게 되면 그 산하 박물관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해 설립된 대학 박물관, 미술관과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중앙박물관이 문화재청의 산하기관이 되어야 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국악원, 국립극장, 국립민속박물관과 여타의 관련법인인 한국 문화재 보호재단과 유사한 기능의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등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한국학 중앙연구원도 문화재청 산하로 가야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분명하게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과 미래의 문화를 이끌어 가는 기관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조정한다면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곰곰 생각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간 문화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실국 이기주의로 문화전문기관을 체계적으로 일원화하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국어원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은 문화정책국이 관장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극장, 국립국악원은 예술국이 관장해 오면서 비롯된 일이다.
사실 문화부가 이번 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이렇듯 잘못된 구조 속에서 문화 보존과 활용을 편의적으로 운용해온 탓이 더 크다. 특히 박물관과 미술박물관을 분리해서 관장했다는 것은 문화 생산과 문화 재창조 기능을 간과한 것이자 행정 편의적으로 다루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그간의 문화행정이 박물관의 생산기능보다는 보존기능에 더 중점을 두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와 문화재라는 것이 매장문화재만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문화재의 발굴과 보존 그리고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모셔두는’ 보존보다는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활용이 더욱 중요 할 뿐만 아니라 소위 보존은 물론 문화콘텐츠의 간단없는 생산과 보급 그리고 세계화라는 큰 물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도 박물관의 문화생산 또는 재 창조 기능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의 일부분인 문화재를 다루는 기관이 상위개념인 문화를 다루는 기관을 먹는 되서야(?) 될 말인가.
미래냐 과거냐?

박물관이나 미술박물관의 약칭인 미술관은 문화의 보고이자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창조적 기관이자 한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체이다. 또 문화국가로서 국민 자존심의 원천이다. 그리고 문화적 콘텐츠이자 이야기 공장으로 굴뚝 없는 관광산업의 근간이기도하다.
이외에도 많은 다양한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장소이자 기관이다. 사실 선진국들이 국제화를 외치면서도 미술관 박물관 건립에 열정을 쏟는 것은 박물관 미술관이 갖는 대내외적인 의미에 근거한 것이다. 또 이렇기 때문에 1945년 광복 후 변변한 집 한채 장만하지 못한 중앙박물관을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짓는 호기를 부릴 때 국민들이 순순히 동의한 것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구한다는 이명박 정부가 상징적이자 그들의 문화적 지향점을 보여줄 첫 번째 작품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전혀 반대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인수위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측이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전문가 역할을 자처한 때문으로 보인다.
문화 선진국이라는 영국이나 미국은 서로 다른 문화기구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문화재 원형보존을 책임진 기관이 박물관을 거느린 나라는 없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보존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보존하고 이를 활용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후자의 생산성을 중시한 때문일 것이다. 만약 발굴하고 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관리만 할 목적이라면 문화재청의 박물관 흡수를 통한 일원화는 옳다.
하지만 이는 몰락한 양반집에서 족보만 껴안고 좋았던 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 할 것인가. 미래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과거에 매달려 그곳에 안주할 것인가. 단지 일개 문화기관의 소속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제가 바로 박물관과 미술박물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글을 정리하며
말이 나온 김에 문화재청의 존립근거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고 큰 정부건 작은 정부 건 간에 매장문화재 발굴을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의 청으로 존재하는 것은 옥상옥의 형태이다. 사실 대부분의 국가가 문화부 또는 문화청아래 국 단위 기구로 존재한다. 이는 큰 틀에서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문화유산을 다루기 때문이며 효율성을 담보해 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행정인력중심의 문화재 청은 문화부 산하로 편입되어 하나의 국으로 존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할 것이다. 즉 문화부내에 ‘문화유산국’을 두어 현재의 문화재 발굴과 보존을 전담케 하고 일부 문화재 관련 업무는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일 것이다. 문화재청의 비대화는 참여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주창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과도 배치되는 일로 ‘좌회전 깜박이 켜고 우회전한’ 정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및 문화 재생산을 전담하는 가칭 ‘문화창의국’을 두어 박물관 미술관 정책과 유형문화재 뿐 만 아니라 지금까지 문화재청의 업무에서 뒷전을 밀려있던 무형문화재까지 총괄하는 원스톱 시스템이 더욱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렇게 한다면 발굴과 보존 그리고 조사와 연구 그리고 이를 활용한 문화적 재창조가 물 흐르듯 하나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부의 인력을 행정전문 인력과 문화전문 인력의 구성비를 조정하여 그간 문화재청의 행정전문 인력의 자문역에 불과했던 문화재위원이나 문화재 전문위원 등의 역할을 수행할 문화 또는 문화재전문가들을 채용해서 그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직접 문화재 원형보존에 진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한반도 대운하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체모와 역사 그리고 근대기 이후 미술관 박물관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지며 근대적 성과를 담보해내는 기관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조직을 슬림화하는데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를 측근에서 보좌해온 몇몇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그 정부조직개편안의 방향이 옳다면 타협하지 말고 추진해야 할 것이며 조금 빗나갔다면 지체 없이 수정하는 것도 새로운 권력이 보여야 할 미덕이다. 누군가가 몽니와 고집으로 자신이 정한 원칙을 고수하면서 그것의 수정은 곧 굴복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민심을 돌아서게 한 것처럼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하지 않을 까. 또 크고 중차대한 정책을 시행하려는 중요한 시기에 이를 빌미로 순리와 원칙을 거스르면서 문화재를 볼모로 조직을 확대하려는 세력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새 정부의 할 일이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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