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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이전과 미술인들의 위상

편집부

- 국립현대미술관 이전과 미술인들의 위상 -
대선정국에 보내는 미술인들의 문화정책 제안
문화예술인 자정NGO 대표 강 행 원
1.들어가는 말
대통령선거는 온 국민이 함께 누려야할 축제로 치러질 수 있는 문화풍토조성이 정치인들의 노력이자 국민적 과제이다. 하지만 현실은 누가 좋은 정책대안을 제시하여 국민들의 관심사를 이끌기보다 이전투구식의 피 튀기는 싸움판이 되어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이 알아차려야 할 것은 국민들의 관심사가 정치인들이 외쳐대는 감언이 아니라 실천 할 수 있는 진정한 양심을 어떻게 드러내 보이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도 서로 물어뜯기만 하는 성숙되지 못한 정치풍토는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므로 참여인구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대선이 불과 40여일 앞으로 다가와 있지만 그 열기가 예전처럼 높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훌륭한 정책을 내어 놓은 것이겠지만 눈에 띄는 변변하게 마음에 드는 정책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거의가 경제정책으로 일관되어 있을 뿐 문화정책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1959년 프랑스 초대 문화부장관의 말을 인용하면 “국가는 예술을 지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참으로 선진문화국 다운 문화부장관의 말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는 문화를 국가통합의 주요한 요소로 삼고 있는 나라이다. 문화의 진정성을 모르는 통치행위와 문화를 사랑하지 않는 국민은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문화는 삶의 양식이며 국민들의 정신이기 때문에 문화가 외세에 잠식되어 자국문화의 정체성을 잃고 남의 문화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어떠한가. 바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직 친일 문제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야비한 의식으로 충만하여 이합집산 하는 이전투구의 양상을 벗어나지 못한 천박한 궁민(窮民)으로 전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동안 쌓아온 우리정부의 저력은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대권 주자들은 문화 마인드에 대한 지식기반이 없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새로운 경제창출만이 전부인양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문화가 따라주지 못한 경제는 성장한다 해도 천박함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함께 갈고 다듬어야 할 문화 마인드의 창달을 도외시 하거나 관심 밖에 있는 주자라면 대권 후보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돈으로 사던 표를 이제는 정책으로 사야 할 수 뿐이 없다. 가족을 포함한 잠정인구 수십만의 미술인들은 대통령후보들이 제시할 문화정책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대선을 통해서 그동안 푸대접을 면치 못한 전국미술인 단체들이 이제 하나가되어 대권 주자들에게 그간에 전무해 왔던 미술정책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비정부기구인 예술NGO는 자정운동을 펴왔던 단체로서 그간의 미술계를 돌아보고 미술문화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의 전체의중의 희망사항을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전국 미술인들만 해당하거나 미술에 관심을 가진 국민들의 여망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자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기도하다. 그것은 오늘 제시되고 있는 몇 가지 안건중의 하나이지만 바로 경기도 과천의 외딴 산속에 들어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이전 문제를 제시하고자 함이다.
2.본론
1)국립현대미술관 이전문제의 당위성
명색이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경복궁에서 개관했다가 1986년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과천으로 옮겨가게 된 것인데 그 때는 군사문화의 철권통치하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당시는 반대하거나 반기를 들 만한 어떤 용기 있는 한 사람의 제안자도 없었으며, 모두가 찬양일변도의 해바라기들만 존재했던 때이니 무엇 하나 변변한 문화가 자리를 잡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건축예산은 썼지만 그것은 결국 국격(國格)을 군화발로 짓밟는 문화였으니 이제라도 다시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세계 어느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이 수도권 도심 밖 외딴 산속에 묻혀있는 곳이 있는가를 생각 해봐야 할 것이다.
정작 산속에 있어야 할 곳은 수도원이나 기도원 같은 곳이면 모르되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어야 할 곳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들과 가장 친화력이 있어야 할 미술관이 도심밖에 벗어나 있다면 아무리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관람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 문제는 미술인들만의 숙원이 아니라 전 국민 전체의 문제이자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야기되는 큰 문제이다. 지금 국토는 일일 생활권으로 변모되어 있는데 지방에서 서울나들이를 하면서 미술관 관람을 계획하고 있다면 당일에 해결하기 어렵다. 이러한 불편부당한 점을 굳이 프랑스의 예가 아니더라도 국가가 반드시 봉사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불편한 예를 들어보면 서울 도심권에서도 아무리 가까운 역세권이라 하더라도 접근하기가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조금멀리 떨어져 있는 도심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2~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승용차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도심의 정체를 포함하면 시간단축은 엄두도 못 낸다. 또한 그 산속의 굽이진 길을 몇 Km를 달려야 하는지 도대체 찾아가는 곳이 미술관이란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을뿐더러 산골짜기에 위치한 주차장 시설마저도 변변치 못하다. 이렇게 불편한 곳을 어느 국민이 미술관을 자연스럽게 찾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설령 빅 미술전을 치르면서도 고작 관객은 도심의 2~30평대의 작은 갤러리에 모여드는 숫자만도 못하다면 그 기능을 알만하지 않는가.
필자역시도 자신의 작품이 전시될 때만 겨우 오픈 식에 참여 할 따름이지 평상시에는 감히 가고자 하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것은 하루 일과를 송두리 채 써야 하기 때문에 국립미술관을 관람하는 대는 특별한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가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데 특별한 계획을 세울 정도라면 일반 국민은 오직하겠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인원동원을 위해 초중고생들의 국립현대미술관 관람 방학숙제를 요청하는 등 갖은 협조와 노력을 다함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은 특별한 사람만 찾아가는 이상한 곳이 되어버린 셈이다.
현재 전국대학 분포에서 미술대학이나 미술학과가 없는 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도 정작 국가가 미술정책을 도외시하는 것은 교육부를 비롯해서 주무부서인 문광부가 하는 전문성이 얼마나 뒤 떨어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역대 국립미술관장이 모두 정부의 뜻에 따라 움직여 왔는데 어느 관장이 이 일을 국민적 관심사로 이끌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 일은 대권을 가진 통치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관장이나 주무장관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참여정부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도심권 이전에 대한 검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이는 공약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미술인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에 불과 하였을 따름이다. 미술은 우리생활 속에서 달리 할 수 없는 유일무일 한 절대가치를 지닌 삶의 문화적 원천이다. 고로 국립현대미술관 이전은 누구의 치세에서도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 공약 사항의 정책 대안의로 요청하는 바이다.
대안으로써의 새로운 위치는 이미 빗나간 보안사 자리보다 전국의 일일생활권에 합당한 서울역이나 용산역이 가까운 역세권 진입이 유리한 곳에 두기를 원한다. 그래서 위치를 용산역이 가까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부근에 세워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군정이 내놓은 비싼 땅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어야 도심권에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진입하기 편리할뿐더러 전 국민이 하루 생활권으로 관람이 용이해 지며, 중앙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이 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야 국격에 대한 위상도 걸맞게 된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서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이며, 민주화의 성숙으로 향상된 국민들의 21세기 문화적 욕구를 짓밟는 또 하나의 문화야만치세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문화정책은 미래에 대한 국가장래의 위상인 동시에 통치자의 자존심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지시가 아니라 봉사를 통해서 제시된 비전으로 세계적인 유명작가들을 배출하게 되면 그들의 기념관 사업만 가지고도 후대가 잘 살아 갈 수 있는 문화선진국으로써의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피카소 같은 유명 미술인이 태어난 나라의 관광수입의 비교는 우리나라 현대 자동차와 같은 큰 공장 5개의 설립효과와 같다는 학술 보고가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미술정책에 중요성을 깨달아 정책에 반영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미술이 대중과 친화력을 가져야 삶의 질도 더불어 향상 되며, 그에 따른 모든 산업디자인도 더불어 발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훌륭한 작가들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같은 동급으로 승격하여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연구기관을 별도 설치할 수 있어야 우리미술, 즉 내 것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 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선임하는데도 책임운영체제가 정부방침이라면 선임하는 방법도 응모제가 아니라 마땅히 문화차지제로 바꿔져야 할 것이다.
정부 주관의 응모는 겉으로는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은 정부와 가장 밀착되어 있는 특정인을 뽑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행정관료들이 전문가 집단에 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후진성의 누습임으로 봉사하는 문화로 바꿔 추인만 하고 그들의 뜻에 따라 집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자취는 미술관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을 추천하여 각 미술단체들에 대한 동수의 대의원제를 통한 선거방법의 자치제를 의미한다.
2). 미술가들의 법적지위에 관한 당위
이점은 전업미술가들에게 해당하는 안건으로써 화가의 직업적 위치가 확보되어야 함에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해왔기 때문에 정작 이들이 재해(삼풍 사건이나 교통사고와 같은)를 당 하였을 때는 화가로써의 대접을 받지 못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아프리카의 후진국이 격고 있는 경우와 비슷하다. 왜냐 하면 우리도 불과 3~4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가난한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의 모든 조건이 경제논리에 맞추어 많이 달라졌음에도 그 문화형태는 과거의 잔재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것은 화가들에 대한 직업적 판단(그림이나 그리며 노는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긍지와 자존심을 가진 창작가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는 비참한 일이다. 불과 1~2년 전에 이 나라 대기업 삼성생명과 민족미술협회 고 구본주 작가 측과의 법정 싸움이 있었다. 그 싸움의 진위는 보험상에서 지급되는 재해 보상비를 창작가에게 적용하는 금액이 일용작급직에 해당하(하루임금 1만7천600원 정도)는 금액을 상정한 관계로 벌어진 송사였다. 작가는 불멸의 문화보가 될 장래의 국가문화유산을 생산하는 창작가인 동시에 작품을 팔아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을 무시한 처사로써. 서류상 증명할 수 있는, 어디에 종사하는 직업만을 인정한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결국 보상문제는 화가가 요구하는 선에서 삼성이 패소한 것이지만 이는 법정싸움에서 법리적으로 진 것이 아니다. 미술품에 대해서는 거대기업 삼성이 그 문화재단인 호암미술관에서 사들이는 값비싼 미술품을 취급한 장본인들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예술품이나 예술가들에 대한 입장을 모르는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의 이윤 추구를 위해 법리를 이용하려다 민족미술인 전체가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점에 대해서 화가는 언제라도 재해를 입었을 때 일용잡급직의 경우를 벗어날 수 없는 법적인 한계가 늘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이점을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 수준의 예우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정책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미술이 대중과 친화력을 갖고 작가들의 위상이 법적 제도적으로 비로소 보장이 되어질 때 문화적으로 그 국가는 후진성의 딱지를 겨우 면하게 되는 것이다.
3.나가는 말
살아서 움직이는 진정한 내 문화유산이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가꾸어야 할 것인가를 돌아보아야 할 중대한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대권 도전자들은 지지자들 프로테지에 현혹하지 말고 미술단체들 포럼에서 논의된 이상의 문화정책들을 검토해 주시기 바라면서, 우리미술인들은 이제는 보혁의 갈등과 이념을 넘어 미술정책을 제대로 입안하여 실천 할 수 있는 지도자에게 표를 몰아주고자 하는 것이다.
2007년 11월 10일(토) 용산역 4층 KTX별실
주제발표자 강행원(문화예술인자정 NGO), 제목 : 국립현대미술관 이전과 미술이들의 위상
김윤환(미술인회의)
이우송(전국미술인 노동조합)
김진두(한국미술협회)
원동석(민족미술협회)
2007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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