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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상상22] 사진과 그림의 경계

진중권


[진중권의 상상] <22>사진과 그림의 경계
회화에 가까워지는 사진 디지털시대의 취향을 증언하다
대중의 능동적 이미지 조작 욕구 읽어내
‘상호작용’ 기능까지 도입 생성이미지 새 장

이 글 쓰느라 잡지를 한 권 훔쳐야 했다. 우연히 공항버스를 타고 가던 중 좌석 앞에 꽂혀있는 잡지를 들척이다가 기사 하나에 시선이 꽂혔다. 네 곳에서 열리는 네 개의 전시회에 관한 기사였는데,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열리는 전시회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낸 잡지 에디터의 감각이 돋보인다.
네 작가의 작품에는 공통성이 있다. 먼저 네덜란드의 사진작가 턴 혹(60)의 작품. 트렌치코트를 입은 신사는 작가 자신이라고 한다. 물론 중절모를 쓴 르네 마그리트의 신사를 패러디한 것일 게다. 턴 혹은 실버프린트로 뽑은 사진 위에 드로잉을 하거나 유화물감으로 채색을 가한다. 이로써 사진과 회화가 하나가 된다.
두번째는 배준성의 작품. 그는 미술사의 거장들의 고전회화를 광학장치와 결합시킨다. 가령 원화 속의 인물과 같은 포즈를 취한 누드모델의 사진 위에 투명한 비닐 필름을 올려놓고, 거기에 옷을 그려 넣은 후 관객들로 하여금 들춰보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그는 평면에 입체감을 주는 렌티큘러 렌즈를 이용한 작품을 내놓고 있다.
세번째는 김용호의 작품. 그의 사진은 초점을 흐려놓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카메라가 흔들린 듯이 흐릿하게 찍힌 피렌체의 풍경은 기계로 찍은 사진이면서도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린 회화에 가까워진다. 사진을 회화로 바꾸어 놓으려 했던 19세기 픽토리얼리즘이 다시 부활한 듯한 느낌이다.
마지막은 홍성도의 작품. 그는 시간차를 두고 동일한 곳에서 찍은 사진 두 장을 겹쳐놓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단다. 하지만 사진으로 찍은 그 이미지들은 심하게 포커스 아웃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그 결과 구체적 대상을 찍은 사진이 마치 추상회화와 같은 효과를 내게 된다. 여기서도 사진은 회화에 가까워진다.
이제 각각 다른 곳에서 열린 이 네 개의 전시회가 왜 하나로 묶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 다른 작업을 하는 네 명의 작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사진과 회화의 장르적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어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언젠가 이곳에서 이미지의 역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영상은 인간이 직접 손으로 그린 원작 이미지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카메라로 찍은 사진, 즉 복제 이미지가 영상문화를 대표하게 된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복제이미지는 서서히 디지털 생성이미지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생성이미지 속에서 원작이미지와 복제이미지는 하나가 된다. 가령 영화의 CG를 생각해 보라. <주라기 공원>의 공룡들, <트랜스포머>의 변신로봇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들. 이것들은 인간이 그린 그림인데도,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인 양 사진과 같은 생생함을 갖고 눈앞에 다가온다. 여기서 그림과 사진은 하나가 된다.
이렇게 디지털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어가고 있다. 21세기의 대중은 TV, 영화, 게임, 광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디지털 생성이미지를 본다. 주도적 이미지가 원작회화에서 복제사진으로 바뀌었을 때, 앤디 워홀은 원작회화로 복제사진을 흉내 냄으로써 앞으로 달라질 대중의 이미지 취향을 예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주도적 이미지가 복제에서 생성으로 바뀌면서, 대중의 이미지 취향이 다시 한번 바뀌지 않을까? 여기서 앞서 얘기한 네 명의 작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한 마디로 그들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 달라진 대중의 이미지 취향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스캐닝한 사진 위에 페인트복스로 그림을 그리고, 포토샵으로 ‘뽀사시’ 효과를 주어 사진에 인상주의 효과를 주고, 여러 이미지를 하나로 합성해 초현실주의 효과를 내는 것은 이미 디지털 대중의 일상이다. 이미지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는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디지털 대중은 이미지를 능동적으로 조작하고 싶어 한다.
복제 취향이 예술에서 워홀의 팝아트를 낳았다면, 생성의 취향은 예술에서 또 다른 예술 취향을 낳고 있다. 대중은 더 이상 사진과 회화 사이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디지털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은 모든 것을 0과 1로 환원시킴으로써 아날로그 매체들의 질적 차이를 지우는 경향이 있다.
사진의 등장은 예술의 면모를 크게 변화시켰다. 드가는 카메라 앵글의 시점을 취했고, 뒤샹은 회화에 연속사진의 이미지를 도입했다. 사진의 모사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자 화가들은 대거 추상으로 방향을 돌렸고, 워홀은 아예 회화로 사진을 베끼려 했다. 그렇다면 디지털의 등장도 그에 못지않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게다.
이는 작가들에게 중요한 과제를 제기한다. 즉 ‘전통적인 매체 속에 어떻게 변화하는 시대성을 담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배준성의 작업은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의 작품은 디지털 기술의 도전에 회화가 어떻게 응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그림을 덮은 투명 필름을 들추어 그 밑에 깔린 누드 사진을 볼 수 있다. 작품의 치마를 들치는 이 장난을 통해 그 동안 회화에 없었던 인터랙티비티 기능이 작품에 도입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렌티큘러 시리즈 역시 정지화(停止畵)라는 전통회화의 특성을 정면으로 거역한다.
또 그의 작품에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세 개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먼저 그 안에는 다비드, 앵그르, 베르메르 같은 거장들의 원작 이미지가 있다. 거기에 복제이미지, 즉 그림 속 인물과 똑같은 포즈로 찍은 누드사진이 겹쳐진다. 이로써 사진과 회화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이미지가 탄생하고, 이것이 그의 작업을 생성이미지의 창세기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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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로 이미지 변조… 디지털 이미징 선구자
19세기 픽토리얼리즘 사진

사진과 회화의 결합은 이미 오래 전에 있었던 현상이다. 사진이 아직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사진사들은 사진으로 회화를 흉내 내는 것으로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려 했다. 사진으로 회화를 하려고 했던 19세기의 경향을 흔히 '픽토리얼리즘'이라 부른다.
픽토리얼리즘 계열의 사진들은 언뜻 보면 손으로 그린 그림처럼 보인다. 노출을 약간 길게 하면, 파도의 윤곽이 흐릿해져 마치 핀젤로 그린 듯한 회화적 효과를 내게 된다. 특수한 기법으로 인화를 하여 매끈한 사진 표면에서 캔버스의 거친 질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픽토리얼리즘의 대표작이 바로 스웨덴 작가 레일란더의 <인생의 두 갈래 길>(1857). 연극이나 영화의 감독이 배우들을 무대 위에 배치해 놓고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신고전주의적 미장센(장면)은 실은 각각 따로 촬영한 32장의 필름에서 이미지를 오려서 연출한 것이다.
이런 것을 흔히 '컴비네이션 페인팅'(combination painting)이라 부른다. 포토샵과 같은 소프트웨어 덕분에 오늘날엔 예술의 문외한들도 간편하게 이미지를 합성해낸다. 하지만 레일란더가 32장의 네거티브 필름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조합하여 저 사진을 인화해내는 데에는 약 6주가 걸렸다고 한다.
픽토리얼리즘은 한 마디로 회화 앞에서 사진이 느꼈던 열등의식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이 자의식에 도달하는 것은 20세기의 일. 이제 사진은 회화가 되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한다. 아무런 가공이나 조작도 가하지 않은 사진, 이른바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straight photography)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어설프게 회화를 베꼈다 하여 픽토리얼리즘은 그 동안 폄하되어 왔다. 하지만 디지털과 더불어 상황이 달라졌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그것을 재평가할 이유가 생겼다. 이미지의 가공, 변조, 합성. 오늘날 우리가 디지털로 하는 그 일을, 일찍이 픽토리얼리스트들은 아날로그로 해냈다. 그들이야말로 디지털 이미징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 진중권(문화평론가ㆍ중앙대 겸임교수)
- 한국일보 1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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