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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상상21] 디지털 건축

진중권


[진중권의 상상21] 디지털 건축
현실과 물질성 뛰어넘은 건축 '형태는 상상에서 나온다'


디지털 시대에 건축은 어떻게 변할까? 사실 물질성 없는 디지털과 물질성이 강한 건축은 서로 상반되는 경향이 있다. 철학자 헤겔이 건축을 예술의 위계에서 맨 아래에 배치한 것도 그 때문이다. 건축은 육중한 물질성 때문에 정신성을 표현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디지털의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다. 실제로 디지털은 건축의 무게조차 가볍게 만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마도 건축사무실에서 제도용구가 사라져 가는 것. CAD로 그린 건물의 3D 가상은 펜과 종이의 물질성을 증발시켜 버린다.
펜과 먹 없이 입력된 건축의 형태는 사이버 공간 안에서 ‘정보’라는 비물질로 존재하다가, 필요할 경우에는 물질의 옷을 입는다. 가령 프린터로 2D의 도면을 인쇄할 수도 있고, CNC 밀링이나 래피드 프로토타입으로 3D 모형을 출력할 수도 있다.
형(形)의 제작은 크게 관념적 구상(conception)과 물질적 실현(realization)의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구상의 단계에서 디지털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컴퓨터는 손으로 하기 어려운 작업도 해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컴퓨터의 검색능력을 활용해, 이제까지 인간의 머리로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형태를 찾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퍼 아키텍처가 아닌 한 건축은 결국 물질로 실현되어야 한다. 건축에서 디지털의 도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물질적 실현 단계에서도 디지털은 건축을 탈(脫)물질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은 건물에 정신과 생명을 부여하여 그것을 일종의 가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건축과 디지털의 만남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가 이른바 ‘인텔리전스 빌딩’이다. 여기서 건축은 물질성을 넘어 정신성을 갖게 된다. 정신(AI)을 갖춘 건축은 알아서 자신을 관리하기도 하고,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미디어, 혹은 인간과 상호 작용하는 인터페이스가 되기도 한다.
컴퓨터를 매개로 건축이 로봇공학과 결합할 수도 있다. 가령 수십 년 전 미국의 컴퓨터학자 니클라스 네그로폰테는 가변적인 로봇 건축을 구상한 바 있다. 그가 MIT에 결성한 ‘아키텍처 머신 그룹’은 애완용 생쥐의 동선(動線)을 분석해 로봇팔로 우리의 블록을 다르게 배치해주는 컴퓨터 조절 환경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미래에는 거주자들의 행동과 습성을 분석해 가장 편리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로봇 건축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건축은 두뇌(AI)만이 아니라 사지까지 갖춘 인공생명이 된다. 미래의 인간은 더 이상 건물 '안에’ 거주하는 게 아니라, 건물과 ‘더불어’ 공생(synbios)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은 건축을 미디어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이미 도심에서 건물의 벽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한 것을 본다. 그 위에서는 끊임없이 뉴스와 광고 영상이 흘러간다. 디지털로 대형출력이 가능해지면서 심지어 건축 공사장을 가리는 방진막 역시 거대한 캔버스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건축의 미디어화는 현실과 사이버공간의 차이를 지워버린다. 가령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한 네덜란드의 건축가 벤 반 베르켈. 그가 지은 트리에날레의 네덜란드관(1996)은 디지털 건축의 대표적 예다. 이 건물의 전략은 디지털 가상을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사진을 보라. 일단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복도의 구조가 이미 초현실적이다. 그 벽면에 사이버공간의 느낌을 주는 영상을 투사하면, 현실의 공간은 물질성을 잃고 갑자기 디지털 가상으로 화하고, 그 덕분에 방문객들은 실은 현실의 구조물 속을 거닐면서 마치 사이버공간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서 현실과 가상은 하나로 뒤섞인다. 그로써 건축적 공간은 근대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중세 성당의 내부는 현세의 공간(space)이자 동시에 신을 만나는 장소(place)이자, 세속(reality)과 초월(virtuality)이 하나로 결합한 하이브리드 공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은 신이 없는 시대의 신학이다.
한국의 건축가 문훈 역시 현실과 가상을 넘나든다. 그의 작업은 성(性)스럽다. 그는 건축으로 성적 환타지를 표현한다. 건물을 여자로 간주하는 이 ‘엉덩이 건축가’(asschitect)는 그녀의 몸에 미니스커트를 두르고 망사 스타킹을 신긴다. 마광수 교수가 소설로 하는 그 일을, 그는 건축이라는 육중한 매체로 하는 셈이다.
헤겔의 장르 위계에서 건축은 밑바닥에, 문학은 꼭대기에 놓인다. 건축은 물질성의 극이요, 문학은 정신성의 극이다. 문훈이 건축으로 페티시즘을 연출할 때, 그의 건물은 문학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그는 건축의 전후에 종종 드로잉을 배치하여 건물로 하여금 제 ‘이야기’를 말하게 한다.
그가 경기도 양평에 지은 별장은 사면에 빨간 스커트를 두르고 있다. 바람이 불면 그녀는 야하게도 스커트 속을 슬쩍 내비친다. 거기에 사는 이의 말에 따르면, “소프트한 벽체의 펄럭임은 집이 살아있음을 환기”시켜 준단다. 벽체가 펄럭일 때, 그것은 물질성 없는 가상의 벽면에 가까워진다.
이제 건물은 땅에서 이륙하여 바다를 건너간다. 어디로 가는 걸까? ‘세컨 라이프’의 가상세계로 날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린든 달러로 그곳에 대지를 구입한 작가는 그곳에서 저 건물을 다시 분양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의 건축은 이렇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반 베르켈이 가상세계를 현실공간에 연출한다면, 문훈은 현실의 건물을 가상세계에 등록시킨다. 다음 단계는 뭘까? 아마도 건축이 완전히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가는 버리는 것일 게다. 실제로 마르코스 노박과 같은 건축가는 오로지 사이버 공간에서만 작업을 한다. 이제 건축은 현실에서 철수한다.
사이버 건축은 중력과 같은 물리법칙의 속박에서 풀려난다. 경제적 고려와 실용적 기능의 압박에서도 자유롭다. 그곳에서 건축은 순수한 환상의 표현이 된다.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고? 사이버 건축은 이 모더니즘의 강령을 이렇게 수정한다. “형태는 상상에서 나온다.”

- 진중권(문화평론가ㆍ중앙대 겸임교수)
- 한국일보, 10.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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