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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하는 한국 미술시장

정준모


- 글 정준모 (미술행정,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근대적인 의미의 한국미술시장의 역사는 그리 깊지 않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미 광통교를 중심으로 서화시장이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그림의 재료는 물론 그림을 사고팔았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민족의 그림에 대한 소양과 관심의 역사가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미술시장이 융성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요즈음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의 이유를 찾아볼 수 가 있다. 즉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은 또 다시 본격적인 문예 부흥기를 맞게 된다. 이때부터 겸재와 단원을 중심으로 화단은 새로운 화풍을 진작 하고 작품세계도 다양해지는 한편 성숙된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양반 사대부들의 전유물이던 미술품이 일반 중산층에게까지 그 애호층의 폭을 넓히면서 비롯되었다. 당시 이러한 문화적 소비가 가능하고 급증했던 것은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경제력이 증가하면서 급격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이는 도시의 중인들과 상인계급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는 요즘 미술시장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이 급증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즉 미술시장의 활황은 상위 중산층의 증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중산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정한 중산층이라 함은 경제적인 안정과 함께 문화적 소비가 균형을 이룰 때 이루어진다. 그럼으로 중산층이라 함은 문화적 소비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중산층들은 몇 년 전부터 뮤지컬을 중심으로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고 이들 공연장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게다가 이들 중산층의 대부분이 70년대 경제성장의 과일을 먹고 자랐고 학력도 거개가 대졸이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인가’를 고민하는 세대들이다. 즉 ‘진정으로 잘 살아보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들 계층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문화적 소비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경제발전의 원리이자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이다. 여기에 문화예술품 중 유일하게 환금성이 있으며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미술품은 이런 이유로 유사 이래 지금까지 개인이나 교회, 장원등지에서 소장해 왔으며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영정조 시대에도 여전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기도 했다. 좋은 그림을 구하면 가까운 벗들을 불러 모아 감상회를 열고 서로가 감상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곤 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많이 수장한 사람은 식견과 학식과 교양과 경제력을 겸비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 있는 계층이라면 미술품 소장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이렇게 전통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미술시장은 일제의 강점기에는 우리의 민족적 문화유산인 각종 서화와 골동품들을 일본인들이 거두어 가는 가교노릇을 했을 뿐이다, 물론 이를 안타까이 여겨 거의 모든 재산을 털어 오늘의 간송미술관을 일구어낸 간송 전영필 같은 뜻있는 이들이 있어 귀하디귀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한국 전쟁기와 그 전후의 미술시장은 한반도를 찾은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그림을 사가는 곳 정도로 활용되었다. 이 당시 한국의 푸근한 정서를 담백한 필치로 그려낸 박수근의 작품이 인기였고 이후 우리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외국으로 팔려간 그의 그림들을 되 사와야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피폐해진 한국에서 화랑은 사치품 중 하나였다. 그래서 화랑다운 화랑이 없었던 시절이다. 이때 반도호텔 한 모퉁이 19.8㎡(6 평반)를 무상으로 임대받아 한국에 주재했던 외국인들의 부인들로 구성된 서울 아트 소사이어티(Seoul Art Society)가 상설 화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반도화랑으로 근대적인 화랑의 시작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미술시장의 중심으로서의 화랑은 1970년 반도화랑에서 경험을 닦은 박명자가 현대화랑을 인사동에 열면서 상업화랑 시대를 열면서 부터이다. 여기에 곧 한용구가 가세함으로써 본격적인 화랑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해 12월 김문호가 명동화랑을 그리고 다음해에 권상릉이 조선화랑을 열면서 본격적인 화랑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이 시기 극소수 애호가들이 관심을 가졌던 작가들은 일제 강점기 오봉빈이 경영했던 화랑 ‘조선미술관’이 개최한 ‘8대가’, ‘10대가’들의 수묵 채색화가 여전히 인기였다. 여기에 월전이나 운보, 현초 등이 가세하고 풍곡이 한자리를 차지 한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몇 년 뒤 장리석, 최영림, 박항섭, 홍종명 등 소위 구상전 작가들의 작품이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수묵채색화에서 유화로 애장층의 소장선호도가 옮겨간 것은 한옥에서 아파트와 슬라브 양옥으로 주거형태가 바뀌면서 비롯된 일이다.
이렇게 본격적인 미술시장의 역사를 연 화랑은 미술시장의 부침에 따라 그 숫자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의 화랑들은 진정으로 미술인들의 동반자로서 그리고 문화산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어려운 미술시장을 지켜왔다. 요즘의 이윤만 추구하는 화랑과는 질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이런 전통을 고수해오는 화랑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은 대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아무튼 미술품은 중산층이 증가하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층이 늘면 늘수록 당연하게 미술품 소장충이 늘어나게 되어있는 것이 이치이자 전통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후 궁핍한 시절을 극복해 낸 우리에게 미술품은 소장하고 싶은 동시에 한편으로는 여전히 사치품이자 투기꾼들의 한탕주의의 도구로 여기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서 미술시장으로 관심이 이끌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한국의 미술시장은 1993년을 전후로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이 당시 많은 작가들이 소위 ‘인기작가’의 반열이 들었고 작품가도 최고에 달한 시기이다. 요즘의 미술시장이 활황이라고 하지만 몇몇 작가의 작품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어서 외견상 활황처럼 보이고 또 시장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면서 호황처럼 느껴지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은 1990년대 초 한국미술시장의 여세와 다양한 층위의 작가들이 미술시장에서 ‘먹히던’ 것에 비교하면 현금의 미술시장은 소리만 클 뿐 작가들이나 화상들에게 실익은 그리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근간에 중산층의 증가가 뚜렷해지고 유동자금이 증가하면서 미술시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를 계기로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 보다도 커진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미술품에 투자해서 ‘재미를 보았다.’는 소식들이 인구에 회자되면서 소위 미술품 거래를 통해 ‘로또에 당첨되고 싶은’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이는 다시 미술시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표1] 미술시장의 변화 (2000-2007년 상반기) -첨부파일 참조
[표2] 2007년 경매결과 -첨부파일 참조
미술시장의 가격구조는 매우 복잡 미묘해서 일반적인 공산품의 가격과는 다른 결정 구조를 가진다. 미술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호이다. 즉 소장하고자 하는 사람의 취미와 일치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싸고 투자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싫으면 오래 소장하기 힘들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품의 경우도 자신이 좋다고 생각되면 소장을 하게 되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이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대의 문화와 정치, 사회를 담는 인문학적인 산물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경제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특성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이 세상사 이치이지만 미술에서 좋은 작품이란 콩 심은데 팥이 나는 독특한 가격결정구조를 지닌다. 이는 미술이 미술품으로 존재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이다. 따라서 미술시장에 입문하려는 초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일반 적인 상품과는 다른 가격결정구조를 가지는 미술품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첩경이다. 또 일반적으로 미술품은 기호를 바탕으로 소장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거래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인기작가의 중요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자신과 기호가 다르다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미술품이다. 여기에 초보자들이 유의해야 할 것은 미술시장의 신화를 믿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미술품이 콩 심은 데 팥이 나는 구조라 하지만 이런 신화는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술품을 소장하거나 투자하기 전에 알아 둘 것은 미술품이라 할지라도 다양한 종류와 장르가 있다는 것이다. 즉 미술품 이라고 다 미술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는 목적과 용처에 따라 그림의 종류와 유형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대개 일차적으로 다수의 대중들이 선호하는 미술품이 결코 좋은 작품은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건 많은 사람들의 일반 적인 기호에 봉사하는 그림들은 존재했다.
대개는 정물이나 인물화, 풍경화가 그것이다. 익숙한 사물이나 자연을 주제로 하고 있어서 부담 없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집안을 장식하는 정서적 충족을 주는 작품이다. 미국의 국민소득이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서 수출되는 삼각지풍의 미술품 최대 수입국이다. 이런 그림은 투자가치도 소장 가치도 없는 그저 즐기기 위한 그림인 동시에 빈 벽면이 주는 공허감을 메워주는 기능성 그림이다. 물론 이런 류의 그림보다 한 단계 높은 작품성이 높고 밀도가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이들 중 일부 작가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조금 고급스러운 맛은 있을지 모르지만 대등소이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경우 작품을 수장하면서 작가들의 수상경력이나 작품 활동 경력 또는 출신학교나 현재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교수여부 등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일부 작가들의 전시경력 중 경우에 따라 부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별 영향력 없는 그렇고 그런 공모전의 수상, 심사 등의 경력인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 현직 교수들의 경우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요즘은 기피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누구나 강조하는 것처럼 저평가 우량작가와 작품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저평가 우량작가의 경우 일부 젊은 작가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중진, 중견작가 중에서도 미술사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재평가될 작가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모든 그림이, 미술품이 항상 오르는 것은 아니다. 마치 미술품을 구입하고 소장하면 큰돈이 될 것처럼 현혹시키는 일부 화상들의 광고나 주장은 믿을 만 한 것이 결코 못된다. 주식시장이 상승국면이라고 해서 모든 주식이 전부 오르는 것이 아니어서 상승장세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처럼 미술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입 소문에 의존하지 말고 건실한 미술품 애널리스트나 화상들과 수시로 상담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만의 안목과 결단에 의해 투자든 투기든 시작해 볼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열심히 미술공부를 하면서 작품을 수집했다면 이즈음에서 자신의 소장품을 분석하고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향후 컬렉션의 성격을 어떻게 가져 갈 것인가. 어디에 주력을 할 것인가. 나의 소장품 목록 중에 있는 작품 중 불필요하거나 전체적인 작품의 성격과 이질적인 것은 없는 지 살펴보고 새롭게 포트폴리오를 구성 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상담을 하고 자문을 받을 사람을 잘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술을 전공했다고 또는 화랑을 오래 경영했다고 해서, 화가이기 때문에 미술시장에 대해서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미술시장의 속성 상 호흡이 있으며 이런 호흡을 수년간 지켜보고 함께한 경험과 시장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추는 동시에 미술사의 흐름에 정통한 전문가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미술시장의 활황과 함께 미술시장의 근본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문가연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 데 이런 인사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즉 그림을 고를 때 귀로 듣고 사지 말고 눈으로 보고 사라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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