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뜨거운 미술시장, 속을 들여다보니…

정준모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 curatorjj@naver.com

요즘 미술시장은 매우 혼란스럽다. 관행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작품을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할 정도로 작품을 소장하려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좋은 작품을 소장하려면 ‘작품 살 때 쩨쩨하게 굴지마라’ ‘보는 즉시 결정하라’ ‘되도록 현찰 일시불로 결제하라’는 권고안(?)이 나올 정도다. 오랫동안 작품을 소장해온 수장가들의 경우는 더욱 당혹스럽다. 예전 같으면 작품을 사라고 매달리던 화상(畵商)들이 되레 작품을 내놓으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궈놓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에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걸 막아 지금 인사동 화랑가는 개점 휴업 상태다. 수장가는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작품을 거둬들이고, 막 미술품 수집에 발 들여놓은 컬렉터는 조금이라도 더 오르기 전에 좋은 작품을 잡으려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이 호황이면 매물을 거둬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호황 속 불황인 셈.
간혹 나온 작품은 비슷한 작품의 경매 낙찰가를 기준으로 가격이 정해진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경매가란 경쟁을 통해 결정된 가격으로, 정상적인 가격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소규모 화상들은 대부분 미술품에 대한 이해와 인식도가 낮아 작품가의 근거로 경매 낙찰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폭발하기 시작한 미술시장의 열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올해 처음 열린 경매에서 고미술품과 근현대 미술품을 모두 합쳐 K옥션이 103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했고, 이틀 뒤 서울옥션이 123억8360만원이라는 경매사상 1일 최고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지난해 1년간 낙찰총액이 K옥션은 270억원, 서울옥션은 293억원으로 총 563억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첫 경매 낙찰 총액이 지난해 총액의 40%에 이르렀다는 것은 향후 미술시장의 규모 확대 여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폭발하는 미술시장
총 낙찰액도 중요하지만 경매시장의 속성상 낙찰률은 더욱 중요하다. 최근 소더비, 크리스티의 낙찰률이 85%에 육박하고 있는 데 비하면 70%대의 낙찰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우리 미술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지금의 성장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올해 경매시장에 유입될 자금이 약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첫 번째 경매결과를 분석해보면 한국 미술시장 3대 ‘블루칩’ 작가의 낙찰가 경신이 눈에 띈다. 박수근의 경우 K옥션에서 ‘시장의 사람들’(24.9×62.4cm)이 25억원을 기록하더니 서울옥션에서 ‘농악’(54×31.5cm)이 20억원에 낙찰되면서 지난해 말 K옥션에서 세운 ‘노상’(1962년작, 13×30cm)의 기록(10억4000만원)을 석 달 만에 경신했다.
이중섭의 경우도 그간의 부진을 딛고 ‘통영앞바다’(39.6×27.3cm)가 9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이중섭이 남긴 작품은 그간의 도록 등을 근거로 종합해보면 엽서화, 은지화를 모두 포함해도 350여 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대다수가 이미 미술시장에 다시 내놓지 않을 주요 컬렉터나 컬렉션에 소장돼 있어 거래될 물량이 거의 없다는 게 이중섭이 박수근에 비해 가격 면에서 부진한 이유였다. 만일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노을 앞에 울부짖는 소’(32.3×49.5cm)가 미술시장에 나온다면 그 가격이 박수근의 작품에 버금갈 것이 분명하다.
김환기의 기복 없는 약진도 두드러진다. 김환기의 경우 그동안 백자나 산월 같은 구상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중심으로 가격이 형성돼 왔으나 통칭 점화라 불리는 ‘15-×Ⅱ 72 #305’(126.5×176.5cm)가 10억1000만원을 기록하면서 어떤 유형의 작품도 최소한의 가격은 유지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특히 그의 점화는 거의 같은 크기의 작품이 2005년 11월 경매에서 6억9000만원에 낙찰된 것을 감안하면 1년 사이에 45% 이상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날 미술시장은 일부 전문적인 컬렉터들이 주도해왔다. 이들은 조용하게, 그러나 ‘깊은 강물’처럼 미술시장을 움직여왔다. 이들은 좋은 작품을 발굴해서 소장한다는 투자자이기보다는 수장가, 컬렉터 노릇에 중점을 두었다. 정말 ‘그림 모으는 것을 도(道)처럼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요즘 미술시장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 미술시장이 컬렉터보다는 투자자들로 가득 차면서 물이 흐려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들은 진짜 ‘시장’이 돼버린 미술시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관망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수장한 작품들은 최근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들과는 그 질과 양의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그런 자부심으로 오늘의 미술시장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드 수장가들이 주도하던 미술시장에 30~40대 전문직 종사자들이 뛰어들면서 시장 규모가 놀랄 만큼 성장하고 있다.

미술시장, 누가 주도하나
이들을 대신해 최근 미술시장을 달구고 있는 사람들은 30~40대 젊은 층이다. 주로 금융이나 IT업계,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난해부터 미술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미술시장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넥타이 부대’도 뛰어들었다. 한발 늦게 들어온 이들은 미술시장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지금까지 관망세를 유지해온 세력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미술시장을 지켜본 뒤 자본시장에서 몸에 밴 동물적 감각으로 미술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미술품을 구입한다. 특히 신장세를 거듭한 작가의 작품은 가격에 상관없이 잡아놓고 보는 행태를 드러낸다. 지금 구입해놓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가격이 더 올라서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더러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령 요즘 경매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과 이름이 같고 출신 대학도 같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작품마저 고가에 팔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처럼 경매 데이터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고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약진을 거듭하면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가가 급등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김동유의 유화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추정가의 25배가 넘는 3억2300만원, 최소영의 ‘광안교’는 추정가의 7배에 달하는 1억9500만원에 낙찰되고, 배준성 권기수 이정욱 도성욱 박성민 박민준 최우람 안성하 등이 해외경매를 통해 성가를 높이면서 이들의 작품가가 지난해에 비해 3~5배 상승하는 이변이 빚어졌다. 이들의 작품가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통용되는 블루칩 작품들에 비하면 저가라는 점에서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에 ‘올인’
이들 투자자형 컬렉터는 미술시장의 흐름을 나름대로 치밀하게 분석했지만 미술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공부하지 않은 단점을 지녔다. 그래서 자신의 기호나 취미와는 상관없이 오직 미술시장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작품을 수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예술성과 희소성, 기호에 따라 작품가가 결정되는 미술시장의 특성을 무시하고 증권 등 금융시장에서 몸에 익힌 기법을 동원해서 작품을 수집한다. 따라서 미술시장의 확대에는 기여하지만 시장에 순기능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미술시장은 증권 등 금융시장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우선 정보가 제한적이다. 경매시장은 현재 미술시장을 끌어가는 견인차 노릇을 하지만 미술시장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경매시장의 데이터를 맹신한 나머지 경매 결과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한다. 미술시장의 데이터는 증권가의 데이터와는 양과 질에서 차이가 난다. 정보가 매우 적은데다 부정확한 것도 많다. 미술이라는 예술 장르의 속성상 계량화할 수 없는 특징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미술시장의 폐쇄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미술시장에 들어온 ‘부장님’들은 단순하게 계량화, 수치화된 기록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부 미술시장이 왜곡되거나 특정작가의 작품가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이상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경매 결과라는 데이터는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또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태도가 미술시장에서는 통한다는 사실을 모르다보니 유명 작가에게 올인하는 현상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일부의 행태가 미술시장의 흐름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미술시장은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증권시장과는 전혀 다른 구조와 시스템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전자는 주관적이고 후자는 객관적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를 간과한 채 미술시장에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미술시장에선 작품을 사는 시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는 시점이다. 미술품은 특성상 시장에서의 유통이 자유롭지 못하다. 미술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작품의 매매 차익보다도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또 신흥 투자자들은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안목이 부족한 탓에 유명작가의 작품이나 사실적이고 구상적인 작품에 집중하는 현상을 보인다.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보다는 눈에 익은 작품에 몰입한다. 마치 네덜란드 르네상스기에 새로이 등장한 상업자본가들이 미술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탓에 화려하고 장식적인 정물화나 사실적인 풍속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최근 미술시장의 특징은 이른바 블루칩 작가와 몇몇 신예작가의 그림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25억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

수장자로 진화하는 투자자
미술시장이 활황을 이루는 배경에 대해 일각에선 부동산 경기의 침체, 주식시장의 정점(頂點)에 대한 우려 등으로 투자처를 잃은 유동자금이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동자금의 영향으로 미술품이 투자 대상이 됐고, 여기에 투기 바람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2009년까지 30조원에 달하는 신도시 토지보상금이 풀리는 등 갈 곳을 잃은 과잉 유동자금이 최소 2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자금은 해외 부동산, 펀드 등 수익 전망이 밝아 보이는 투자처로 몰릴 것이다. 그런데 이 유동자금의 극히 일부라도 미술시장에 유입된다면 시장 규모가 연간 3000억원을 넘지 않는 미술시장엔 ‘폭발’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미술시장 활황은 이런 이유보다는 우리 경제 규모가 성장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그에 걸맞게 미술시장이 재평가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국의 증권시장이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 아래 해외자본이 유입되면서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얼어붙은 투자심리와 부동산시장에 대한 전례 없는 규제로 재원이 갈 곳을 찾다보니 성장한 중산층의 문화의식과 예술품 소장이라는 매력이 한데 모아져 미술품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린 것이다.
5월9일부터 13일까지 열린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도 일부 화랑들의 인기작가 작품은 이미 개막 전에 ‘솔드아웃’ 됐다는 소식이고, 이러저러한 작품을 구해달라는 주문이 쇄도한다는 소식이다. 또한 몇 년 전만 해도 참여를 꺼리던 해외 화랑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뜨거워진 미술시장의 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무적인 것은 미술시장 역시 ‘시장의 원리’에 의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시장이 과열되면서 흔히 ‘묻지마’ 식 투기 행태가 판을 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미술동네를 웬만큼 지켜본 컬렉터의 경우 작품이 나와도 이제는 스스로 판단해서 그 작가의 ‘가장 좋은 작품’ 또는 ‘가장 좋은 시기의 작품’이 아니면 컬렉션 리스트에 넣지 않는다. 이렇게 미술시장의 특수한 환경과 조건 아래서는 처음엔 투자자(investor)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장가(collector)로 진화한다. 컬렉터가 작품을 장기간 수장하면서 감상하는 장기적 투자를 생각한다면 투자자는 차익이 나면 바로 현금화하는 것이 특징.
이런 상황에서 미술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작품을 내놓기에는 가격이 더 오를 것 같고 사기에는 값이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중정(動中靜)’의 시기는 조금 더 길게 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최근 미술품 수장에 뛰어든 컬렉터든 투자자든 미술의 흐름과 현대미술의 동향보다는 시장의 추이에 따라 작품을 수장하기 때문이다. 미술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10년 이상 소장할 것이 아니면 10초도 갖고 있지 말라’는 조언은 미술시장을 그대로 투영하는 금언이다. 그런데 미술품과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싸우면서 건설하듯’, 기본기를 갖추지 않은 화상들과 미술품 투자자들이 미술시장에 유입되면서 일부 특정 작가의 작품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미술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이런저런 루머가 떠돌기도 한다. 미술품의 특성상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작품가를 정하는 룰도 명확하지 않고 또 그 등락폭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전세력이 가격을 조절한다’ ‘특정 화랑과 작가들을 중심으로 가격을 올리기 위해 시장에서 조작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특정작가의 작품가가 급등하면서 나도는 소문이다.

떠도는 이야기들
예를 들면 서울옥션의 주주인 가나아트의 전속작가 고영훈, 사석원이나 K옥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현대화랑의 천경자, 고 임직순 화백, 그리고 정상화 같은 경우를 두고 이런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원리나 시장의 큰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루머에 불과하다.
이런 미술시장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화랑들이 경매회사에 직접 투자하거나 자본참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메이저 화랑들이 경매회사에 참여함으로써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화랑이 경매사 경영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경매사의 지분을 포기 또는 공개하고, 회사를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미술시장의 속성상 인사동을 중심으로 한 군소 화랑과 거간들을 중심으로 아직도 과거의 관행에 따라 미술품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작품가의 유일한 근거는 경매 낙찰가다. 이들은 과거 그림을 사고 팔 때의 관행인, 그림이 가로냐 세로냐, 또는 김창렬의 경우 물방울이 많으냐 적으냐, 박수근의 경우 화면에 사람이 몇 명이냐, 나목(裸木)이 있느냐 없느냐, 이우환의 경우 빈 공간이 많으냐 그렇지 않으냐, 이대원의 경우 나무에 열매가 달려 있는지 아닌지 등 작품과는 거리가 먼 전근대적인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림값의 진실
그리고 일부 ‘거간’들은 인기 있는 작가와 작품의 품귀를 거론하면서 담합해 작품가를 올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요즘은 경매시장의 예정가보다 인사동 중간상이 제시하는 가격이 높은 경우도 있다.
또 하나 기억해둘 것은 비중 있는 작가의 작품이 시세보다 싸다면 일단은 의심하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대개 태작(?作·보잘것없는 작품)이거나 위작(僞作)일 가능성이 높다. 언제나 최소한의 제값을 지급하는 것이 안전하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싸게 사려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매겨질까. 20세기 최고의 화상인 레오 카스텔리는 “시장가격이 있지만 그 가격은 평가할 수 없는 것에 근거를 둔 가격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페이스 화랑(Pace Gallery)의 아놀드 글림처는 “미술품은 수요에 따라 자신의 가격 수준을 정한다”고 했다. 이론적으로 작품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를 살펴보면 자산(wealth), 기대수익(expected return), 위험부담(risk), 유동성(liquidity), 기호(taste) 등이 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일반적으로 미술품의 값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는 미술품의 절대가치, 구입자의 기호도, 미술품과 사회적 역학관계, 보존상태, 크기, 제작연대, 재료, 방법, 지위 등과 기타 요인이다. 여기서 미술품의 절대가치란 그 예술적 수준을 말하는 것으로 미술사적 위상 등 학술적 평가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구매자의 기호에 관한 문제는 결국 그림값, 즉 미술품의 거래가 이뤄지는 현상에서 요구되는 필연적인 절대선택의 요건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예술적 가치가 높더라도 구입자의 취향이나 구매 목적에 어긋나면 거래는 성립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 예술적 가치가 아무리 비속하다 해도 구매자의 기호에 부합하면 그림값은 가치와 상관없이 상승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이런 복잡한 요소보다 단순하게 작가의 가치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를 선호한다. 즉 주요 미술관의 개인전 또는 기획전 참여도, 주요 미술전문지 리뷰 게재 빈도 및 주요 미술관의 작품 소장 여부, 주요 비엔날레 등 국제전 참가 빈도, 유력 화랑과의 관계 등이 주 요소를 이룬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한 점, 또는 한 작가의 그림값이 결정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한정적 측면을 전제로 한다. 그림값은 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시대마다, 작품마다 유동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국 미술품 가격은 사는 사람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때까지 내는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렇게 결정된 미술품 가격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대개의 경우 미술시장은 가격 등락이 매우 느린 속성이 있다. 하지만 가격이 상승할 때는 느리지만 내릴 때는 매우 빠르다. 그리고 현금화가 쉽지 않다.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작품이라 해도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원리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원하는 그림의 가격이 오르겠지만 미술품에는 이런 원칙이 잘 통하지 않는다. 다중이 좋아하는 그림의 경우 대중성은 있을지언정 작품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대중성 있는 작품은 대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인기가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이동하기 쉽다. 유명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도 시류(時流)에 따라 달라진다.
미술품의 가격은 대개 작가의 성장과 함께한다. 인상파 화가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 것은 자비로 마련한 ‘무명 작가전’에서다. 당시 무명이던 그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 자신들의 작품을 놓고 내리쳐질 경매장의 망치소리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들은 너무나 선구적인 자세로 당대의 미감(美感)을 저버린 채 자신의 작업에 몰두했다. 그 결과 인고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의 미래를 예상하면서 후원했던 화상과 그 친구들이 그 과실을 먹었다.
그러나 세상이 안정되고 경제가 큰 기복을 보이지 않는 한 미술품의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부를 이루면 인간은 부유함보다는 우아함과 교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가의 경제 규모나 잠재적 능력에 비해 미술품 가격이 저평가돼 있는 탓에 외환위기와 같은 걸림돌이 다시 돌출하지 않는 한 완급은 있을지언정 경제 규모에 걸맞은 지점까지는 상승세를 지속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활황, 그 이후를 위해
미술시장의 규모 확대에 미술품 경매제도가 큰 몫을 했다는 평가에는 경매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공감한다. 8년 전 본격적으로 출범한 경매는 미술품 가격의 투명성과 시장원리에 입각한 가격 산정 제도를 정착시키며 ‘사는 사람이 가격을 정하는’, 다시 말해 공급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가격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그리고 ‘예술성’이라는, 일반 애호가에게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가격 결정 요소를 지극히 계량적 단위인 ‘화폐화’함으로써 미술시장의 안개를 걷어들였다.

주목받는 신진작가 배준성의 ‘The costume fo ainter-ingres 20030509’
그러나 이런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경매회사들은 미술동네는 물론 사회 일반으로부터도 질타를 받아야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메이저급 화랑이 경매회사를 설립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1차시장인 화랑과 수장가 간의 거래, 그리고 2차시장인 수장가와 수장가 간의 거래를 독점함으로써 미술시장의 구조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술시장에서 1차시장의 기능은 작가의 발굴과 지원, 그리고 전시를 통한 작품의 판매다. 그리고 경매시장, 즉 2차시장은 수장가들이 작품을 재판매하려 할 때 다시금 수장가들과 투명하게 연결해주는 고리와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미술시장의 주축을 이루는 거대 화랑 두 곳이 경매사 대주주로 참여하면서 미술시장의 운용시스템을 독점, 1차시장을 책임지는 화랑의 원래 목적과 활동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화랑가의 이러한 지적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과연 그간 화랑들이 작가의 양성과 지원이라는 기능을 제대로 해왔느냐는 점에서다. 화랑가가 반발하는 배경에는 그간 화랑들이 1차, 2차시장을 독점했고, 특히 블루칩이라고 불리는 작고(作故) 작가들의 2차시장 중계에 더 집중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었는데 경매로 2차시장을 잃게 됐다는 사실도 자리를 차지한다.
최근의 미술시장 활황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화랑들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우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본금을 확대, 규모를 키워 작가의 발굴과 지원, 선진적 마케팅 기법과 작가관리 기법을 도입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화랑은 고객이 작품을 구매할 때 최소한 작품의 정보(description)를 포함한 보증서, 작품의 소장 및 이력(provenance)과 함께 작품 관련 문헌정보(literature and references)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우리 화랑들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이런 정보의 일부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이런 공적인 서류를 요구하는 것도 현명한 컬렉터로 거듭나는 방편이 될 것이다.
올 한 해 한국 화랑들의 ‘묻지마’ 중국 진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 미술의 수입만 부추겼을 뿐 한국 작가의 수출에는 크게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 화랑들이 미술시장의 활황에 따른 과실을 재투자하지 않고 중국 진출 자금이나 부동산 투자 자금으로 활용한다면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를 그냥 흘려보낸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사정이 좋을 때일수록 미술시장의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

속속 등장하는 미술품 펀드
지난해 처음으로 등장한 ‘서울명품아트사모 1호 펀드’는 총 75억원으로 출발했다. 작품 선정은 표화랑, 펀드운용은 서울자산운용이 맡은 이 펀드의 만기는 3년6개월, 목표수익률은 연간 10%+α였다. 두 번째 아트펀드가 올 1월16일 출범한 ‘골든브릿지 스타아트사모펀드’다. 대구의 갤러리신라, 부산의 조현, 그리고 서울의 박여숙화랑, 박영덕화랑, 인사갤러리 등 5개 화랑이 2억원씩 투자하고 3개 은행이 30억원씩 투자해 1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었다. 운용은 골든브릿지 자산운용, 미술품 선정은 한국미술투자㈜가 한다. 이 펀드 역시 만기는 3년6개월이며 목표수익률은 연 17.36%로 6개월마다 결산해 이익을 배분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미술품 펀드의 경우 자산운용의 거의 모두가 미술품 선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작품 선정사가 곧 운용사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펀드의 목적인 가입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함에도 이해당사자인 화랑들이 실질적인 자산운용을 맡기 때문이다. 화랑의 이익과 펀드의 이익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경우 다중의 펀드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좇을 확률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아트펀드들이 편입될 작가군(群)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펀드는 운용 만기가 돌아올 경우 편입된 작품을 모두 내다 팔아야 한다. 펀드 운용기간이 보통 2~3년이라고 보면 그후엔 펀드에 편입된 작품들이 매물로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2~3년 뒤 단기 매물로 나와야 할 작품을 일반 애호가들이 소장했을 경우 신규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그간 소장하고 감상한 보람뿐이다.
따라서 아트펀드는 기득권과 연고로부터 자유롭게 투자 대상 작가를 발굴하고 선정할 수 있는 운용자와 운용조건을 갖춰야 한다. 최근 미술시장의 활황을 타고 계(契) 형태의 투자모집이 성행 중인데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