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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4)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탄생한 인문학

편집부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삶의 터전인 들판의 한 중앙에서 서로 포옹하고 있는 두 사람은 사람 인(人)자를 형상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인간을 서로를 유익하게 해주는 존재임을, 곧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그래서 인간임을 작가 코멘스키는 보여주고 있다.(얀 아모스 코멘스키의 ‘그림으로 파악하는 세계’, 234쪽, 1658년)
원래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인간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인간에게 가장 재앙이라 일컫는 판도라도 제우스의 선물이라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어쩌면 인간들과 신들은 갈등과 경쟁 관계에 놓여있었다. 인간들은 틈만 나면 신의 세계에 도전했고, 수가 틀리면 다른 이름의 신을 섬기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이는 아폴로 신이 인간에게 한 경고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에서 역설적으로 잘 드러난다. 요즘 말로 하면 “너나 잘 하세요!”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려진 이 말은 그리스 제 7현인 중의 한 사람인 스파르타 출신 킬론이 델피신전에 봉헌한 헌사로, 사원 앞의 주랑에 새겨져 있다(파우사니아스 제10권 24장 1절). 물론 신들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가르치기 위해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수치(aidos)를 보내고, 다음엔 정의(dike)를 파견하고, 이도 저도 안되자 홍수와 지진으로 협박하고, 전쟁으로 위협도 했다. 하지만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 중 인간만한 별종은 없는지라 신들도 끝내는 손을 놓고 말았다. 신들이 떠난 지상은 온통 서로 치고받고, 맞고 때리고, 붙고 떨어지는 인간들의 싸움질로 가득찬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그런데 이런 아수라장의 한 복판에서 ‘이러면 안된다’ ‘인간답게 사는 법(humaniter vivere)’을 찾아야 한다는 반성(reflexio)이 인간 스스로에게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잉태된 반성이 제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등장한 때는 기원전 62년, 장소는 로마의 한 법정이었다.
법정을 연 사건의 발단은 기원전 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는 대중영합주의로 세력을 얻은 폼페이우스 일파가 로마의 부랑민과 폭력배를 청산한다는 핑계로 외국인 추방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던 시기다. 이 운동으로 제정된 ‘파피우스’ 법에 따라 아르키아스(기원전 119~44년)라는 그리스계 안티오키아 출신의 시인이 추방될 처지에 놓였고, 키케로가 나서서 그를 구해준다. 이 재판은 굳이 키케로가 나설 필요도 없는 평이한 사건이었다. 신출내기 변호사라도 이길 수 있는 그런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콘술까지 지낸 키케로까지 나선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여기서부터는 키케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검사) 그라티우스여, 자네는 묻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이토록 열정적인 사랑을 보내는 까닭을 말이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운 광장의 다툼에 지친 마음엔 생기를, 말싸움에 이력이 난 우리의 귀엔 휴식을 불어 넣어준다. (중략)그리고 배심원들이여, (중략)다른 사람들이 만약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놀자판 축제만을 위해서, 여타의 오락만을 위해서, (뭔가를 잊고 즐기는 것만 추구하는)마음과 몸의 휴식을 위해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밤늦은 술자리에, 주사위(도박)에, 공놀이에 허비했다면, 나는 나를 위해서 이 학문들의 광맥(鑛脈)으로 돌아와 깨고 닦고 가꾸는 데에 그 시간을 투자했기에 말이다. (중략)지금 하고 있는 이 연설도, 비록 미력에 불과했지만 위험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는 데 결코 실패한 적이 없던 이 능력도 그 뿌리는 사실 이 학문들에 있고, (여기에서)성장한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별 것 아닌 것으로 가볍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최상의 힘을 나는 어떤 샘으로부터 길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다. 무릇 한 인생을 살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칭찬과 명예를 추구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그런데 이것을 실천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신체적 고통, 추방, 죽음의 위험까지도 가벼이 여겨야 함을, 어린 시절에 많은 사람의 가르침과 많은 글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저 숱한 종류의, 저 대단했던 전투에 그리고 오늘 벌이는 이 재판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드는 악한들의 공격에 이 한 몸을 내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책들은 모범사례(模範事例)로, 현인들의 목소리는 규범전례(規範典例)로, 옛 역사는 전범선례(典範先例)로 가득 차 있다. 문자의 빛이 없었다면 이 모든 모범들은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은 가장 용감했던 이들을 경탄은 물론 본받음의 대상이 되도록, 얼마나 많은 위인들을 전해주고 있는가? 내가 국가를 통치할 때 나의 마음과 정신을 이끌어주고 지켜준 것은 바로 이 위인들에 대한 생각, 바로 그 자체였다. 나는 이 위인들을 항상 마음의 첫 자리에 모셔두곤 했다.”(아르키아스 변론 제12~14장)
각설하자면, 키케로가 아르키아스를 구제키 위해 나선 것은 학문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문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학문은 평상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최상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답게 살고자 할 때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종종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뭔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 힘이 되고, 더 나아가 국가공동체의 운명까지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는 더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키케로 본인에게는 그랬다. 키케로가 저토록 강조하고 있는 저 학문, 평상시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저 학문, 그게 바로 오늘날 우리의 ‘인문학(humanitas)’이다. 결론적으로 아르키아스 같은 시인, 곧 인문(人文) 일을 하는 사람들을 추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당장 쓸모가 없다고 추방하는 사회는 더 이상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야만(barbarus)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로마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점철됐던 삼두정시대와 공화정의 몰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로마 사회의 위기를 키케로는 미리 꿰뚫어 보았기에 ‘별 것 아닌 것’을 지키기 위해서 법정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 ‘별 것 아닌 것’을 지키는 와중에 인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이 태어난 곳은, 흔히들 알고 있듯이 그런 고상한 곳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이 인간들에게 선물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한복판에서 사회적 위기와 함께 태어난 학문이다.
-경향신문 200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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