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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빛으로](2) 헤르메스와 피롤로기아의 결혼

편집부

안재원|서울대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강사
독일의 귀족 가문 출신인 헤라드 본 란스베르그가 학문의 즐거움을 맛본 뒤 한 화가에게 청탁해 그 희열을 담아 그린 ‘환희의 정원’(1180년 경). ‘일곱 자유교양학문’ 체계가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천상과 지상이 결혼을 통해서 하나가 된 우주사적 사건이 한번 벌어진 적이 있다. 400년께에 천상을 대표해서 헤르메스라는 청년과 지상을 대표하는 필로로기아라는 처녀가 주신 제우스를 중심으로 만신들이 회합한 가운데 성대한 혼인을 통해 영원해로(永遠偕老)의 길에 들어선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이 결혼이 성립하기까지는, 여느 연인들의 혼인 과정이 그러하듯이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카르타고 출신의 작가 마르티아누스 카펠라(400년대 활약)는 ‘메르쿠리우스와 필로로기아의 결혼에 대하여’라는 저술에서 밝히고 있다.
어느날 올림포스의 신궁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이 잔치는 모든 신들이 부부 동반으로 모이는 자리였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부부, 전쟁의 신 아레스 부부, 저 멀리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 부부도 초대받았고, 짝이 없는 야누스 신도 두 얼굴을 한 채 잔치에 참여했다. 그런데 부부 동반으로 모인 신들의 다정하고 즐거운 모습에 헤르메스는 그만 노총각의 외로움을 느끼고 말았다. 고민 끝에 헤르메스는 아버지 제우스에게 결혼 결심을 밝힌다. 그러나 어느 아버지가 자식의 혼인을 반대하랴만,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의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저 성실한 헤르메스가 젊은 여인의 품에 안겨 나태함에 풀어져 버리면 열여섯 구역(천계가 열여섯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세계관)으로 나눠진 저 드넓은 우주의 운행과 통치에 큰 차질을 빚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여 헤르메스가 달콤한 사랑에 취해 하루라도 늦잠을 잔다면, 전 우주의 통신체계(?)가 뒤죽박죽 될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헤르메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제우스는 남편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주는 내조의 현명함을 지닌 배우자와 혼인하는 조건으로 아들의 결혼을 승낙한다. 헤르메스의 마음에 맨 처음 떠오른 여신은 지혜롭고 순결하며 성스러운 소피아(지혜)였다. 그러나 소피아는 헤르메스의 누이인 아테네 여신의 자매였고, 아테네 여신과 도무지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그러자 헤르메스는 프쉬케(영혼) 여신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모든 신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던, 그러나 우주의 법도를 알만큼은 알고 있었던 그녀이었기에 자신의 신부로 딱이라고 헤르메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뜻밖의 비보를 접한다. 프쉬케가 천하의 난봉꾼인 쿠피도(욕정)에게 눈멀어 그를 따라 가버렸다는 것이다. 장가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헤르메스는 아폴로에게 조언을 청한다. 아폴로는 헤르메스에게 차라리 지상 세계에서 짝을 구하라고 권한다. 마침 필로로기아라는 처자가 있는데 한번 보겠냐고 제안한다. 그녀는 비록 지상의 여인이었지만 프쉬케 못지않게 절세미인인 데다 고고한 소피아에게 견줄 만한 지성과 교양을 겸비했으며, 오히려 소피아에게 결여된 인간적인 다정함이 있는 그런 여인이었다. 천상의 세계를 어지럽힐 위험이 없는, 그래서 제우스도 흡족할 만한 그런 여인이었다. 이렇게 해서 노총각 헤르메스도 마침내 장가를 가게 된다.
헤르메스의 청혼을 받게 된 지상의 필로로기아! 그러나 남편과는 면식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천상으로 시집가는 일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찌 잘 모르는 이와 하는 결혼에 대해서, 그리고 낯선 천상의 생활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지 않으랴. 그러자 수(數)에 밝은 그녀는 결혼생활이 행복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헤르메스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수로 풀어본다. 먼저 그녀는 이집트인들이 헤르메스를 토오우트라 부르는 사실을 이용해 헤르메스의 이름값을 계산한다. 그 결과 그녀는 헤르메스의 이름이 상징하는 수가 3임을 알게 된다. 이어 자신의 이름 ‘Philologia’를 풀이하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4를 얻는다. 3은 시간적으로 시작과 중간과 끝을 포함하고, 공간적으로 모든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선(線)으로 표상되는 천상의 수인 반면, 4는 우선 피타고라스가 말하는 가장 완전수인 10을 만들 수 있고(1+2+3+4=10), 여기에 천상과 지상의 춘하추동(春夏秋冬), 동서남북(東西南北),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아우르는 지상의 수이다. 이렇게 얻은 3과 4를 합해서 가장 축복받은 만남을 상징하는 7을 얻는다. 숫자 7은 이성과 지성의 완성을 상징(키케로의 ‘신들의 본성에 대하여’)하기 때문이다. 7을 얻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결혼이 이성과 지성의 완성을 뜻한다는 것을 깨닫고 희열에 잠기게 된다.
그런데 헤르메스와 필로로기아의 만남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지상의 인간에게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들의 만남을 상징하는 숫자 7은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세계로 승천(昇天·일곱 자유교양학문을 통해 인간은 승천, 구원이 가능하다는 게 카펠라의 입장)할 수 있는 도구와 방법들로, 나중에 중세 대학에서 학문적으로 제도화된 학문의 수를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3학 4과로 잘 알려진 자유교양학문들(artes liberales)이다. 3학에는 문(법)학(grammatica), 논리학(logica), 수사학(rhetorica)이 속하고, 4과에는 기하학(geometria), 산수(arithmetica), 천문학(astronomia), 음악(harmonia)이 속한다. 3학은 원래 헤르메스가 관장하는 영역이고, 4과는 필로로기아가 주관하는 영역이다. 천상의 의사소통을 관장하는, 곧 언어 영역(logos)을 총괄하는 신이 헤르메스이고, 자연의 실상과 운동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인간의 이성의 탐구 노력을 주관하는 이가 필로로기아이기 때문이다. 양 영역의 통합적 탐구를 통해서 인간 지성은 그 완성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용어로 풀이하면, 이들의 만남은 인문학과 자연학의 결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어떤 사연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헤르메스와 필로로기아가 별거 중이어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이들의 별거를 끝내는 방법은 없을까? 한가지 희망은 있는 것 같다. 필로로기아 처녀의 이름이 그것이다. 이것은 ‘말(logos)을 사랑하는(philein) 처녀’를 뜻한다. 필로로기아는 이름 자체에서 헤르메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랑을 통해서 지성의 완성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릇 학문(philologein)이란 것은 자체 운명에 의해 규정된 목적(logos)을 향해, 그러니까 지성의 완성을 위해 외적 조건과 ‘관계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경향신문 200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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