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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29) 선암사 승선교

편집부


반원형 아치 물에 비춰 큰 원으로
도가적 의미 스며든 신비스런 정취

한국의 다리 가운데 승선교만큼 아름다운 곡선을 보여주는 다리도 드물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모두 한국 최고의 교각으로 승선교를 선정하였다. 선녀가 승천하여 신선의 세계에 이르게 해준다는 선암사의 승선교. 그것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만큼이나 반원형의 아치가 물에 비춰 가득 찬 원을 이루어 내는 절경이 매우 빼어나다. 선계로 가는 승선교와 정토의 나라로 이어지는 불국사의 다리들을 살펴보며, 우리 돌다리의 아름다움을 살펴보기로 한다.
선암사의 경내에 들어서면 주산인 조계산의 맑은 溪流를 건너지르는 2기의 아름다운 아치형 虹霓石橋가 있는데 그 중 더 크고 위에 있는 것을 흔히 昇仙橋라고 한다. 전형적인 단칸 홍예교인 승선교는 1707년(숙종 33) 건립된 후 1713년에 중수된 것으로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돌다리를 소개하자면 누구나 주저함 없이 승선교를 제일로 지칭할 정도로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산지 사찰의 주 통로에는 양쪽 계곡을 연결하는 무지개 모양의 홍교가 설립된 경우가 많다. 佛家에서 말하는 다리는 聖界와 俗界를 구분하는 단절된 경계로 禁川을 건너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물이 깨끗함을 뜻하기 때문에 속계의 때 묻은 마음을 버리고 성스러운 곳으로 진입하게 되는 연결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다리이기도 하다.
승주지역의 평균기온은 14도이고, 강수량은 1천5백 밀리미터 정도인데 선암사 일대는 해발고도가 높아 주변의 평지보다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 선암사를 출입하려면 반드시 계류를 건너야 하며 지형적인 특성상 안전한 다리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홍예교를 가설하려면 재력과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서 처음에는 간단한 나무다리를 가설하였을 것이고 나중에 가서야 바로 이러한 돌다리를 시설하였을 것이다.
승선교가 가설된 곳은 하천의 폭이 10미터 내외로 좁은 지역이다. 하천바닥은 화강암계의 편마암석이 바닥을 이루고 그 위에 직경 8.8미터인 반원형의 육중한 홍교가 올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천 흥국사의 홍교가 11.3미터로 가장 넓은데, 수나라 때 중국 하북지방에 건립된 安濟橋는 단칸 홍교임에도 불구하고 37.4미터나 된다. 승선교의 위를 걷는 다리 폭은 약 3.6미터로 두 사람이 스쳐지나가기에 충분하다. 또한 아치를 이루는 홍예돌은 40개이며 내부의 돌까지 포함하여 전체 석재의 수는 1백40개 정도가 된다.
한국에는 많은 홍예다리가 있지만 이처럼 넓은 아치를 튼 예가 없다. 基底部에는 별다른 시설물 없이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육중한 무게를 떠받치고 있다. 자연암반이므로 큰 홍수가 나도 끄떡없이 견고한 천혜의 기초를 이룬다. 홍예는 지면에 면한 하부부터 원형으로 내쌓기하여 완전한 반원형을 이룬다. 결구방법은 잘 다듬은 장대석을 종으로 1단씩 빈틈없이 밀접시켜 스스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저부에는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르면서 꼭대기 부분에는 다소 작은 돌들을 끼워 넣었다. 정교한 홍예석 주변 양측면에는 잡석들을 쌓아 양쪽 언덕과 연결시켰으며 윗면에는 흙을 덮어 평평하도록 하였다. 중국의 홍예다리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윗면이 경사가 급하나 우리나라의 홍예다리는 평평하게 하여 걷기에 편리함을 우선하였다. 특히 중심돌(要石) 아래는 조그마한 석재를 빼내어 신기한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기하학적으로 무게중심을 이룬다. 돌출시킨 석재는 용머리인데 재앙을 막고자 하는 邪施設이다. 이는 우선 다리의 안전을 기하는 동시에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모든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승선교를 우리나라 최고의 돌다리로 치는가. 아마 돌로 이룬 인공적 곡선미가 주변의 경승과 어울려 아름다울 뿐 아니라 거친 석재를 조립하여 이룬 형태와 결구미가 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밑을 흐르다가 잠시 머무는 계곡 물이 돌다리와 함께 어울려 조형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실제로는 반원형의 아치이지만 물에 비친 또 하나의 반원이 합치되어 가득한 원을 이룬다. 반원이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반원이 하나의 원으로 가득 찬 것이다. 특히 계곡물에 투영되어 비친 강선루와 주변의 경관이 함께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흔히 불가에서는 건축물의 이름에 仙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이곳 승선교 부근은 강선루와 함께 마치 신선이 드나들었던 공간인양 도가적 의미가 스며있는 것 같은 이색적인 공간이다. 특히 선녀가 오른다는 승선교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신비로운 정취를 자아낸다.
선암사에서 승선교의 영역은 가람에 있어 일종의 과정적 공간이다. 속계에서 성계에 이르는 과정적 공간은 힘이 들고 멀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뵈러 가는 길은 즐거울수록 좋다. 더욱이 누구나 쉽게 개울을 건너도록 다리를 놓는 일은 불교에서 보시의 하나인 越川功德이라 해서 큰일을 한 것으로 손꼽았다. 다리 건설에 참여한 자들의 공력을 그들의 공덕으로 여겼을 것이고 튼튼하고 아름다운 돌다리는 결국 이러한 그들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다리의 가설주체는 국가나 민간, 승려들이었다. 그러나 승선교에서와 같이 특히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찰의 돌다리 건설에 승려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그래서 이 다리가설에 참여하여 수고한 분들의 공덕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하여 승교 북쪽에 橋碑를 마련하여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량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三國史記에 平壤州大橋(414)와 熊津橋(498)를 가설한 것이다. 현존하는 유구로서는 오래된 것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가설된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그리고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계곡을 건너는 홍예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승선교에 버금가는 유명한 돌다리로서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불국사는 산지사찰로 높은 축대로 만들어진 대지 위에 佛殿들이 자리한다. 특히 높은 축대를 오르기 위해서 좌우에 2단의 돌계단을 두었는데 동쪽의 것이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것이 연화교와 칠보교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로 홍예형식을 하고 있으며, 세속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신라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매우 귀중한 유구이다. 특히, 무지개 모양의 홍예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 부분은 우리나라 홍예교의 원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다소 급한 계단은 45도 정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양쪽에 손스침을 두어 난간을 대신하였고, 중간에 한번 쉬어가는 계단참을 두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의 아치로 만들어 직선으로 하였을 때 딱딱하거나 무거운 느낌을 부드럽고 생동감 있게 풀어주고 있다. 특히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예전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계단 양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석루조가 남아 있다.
홍예교는 세계 여러 나라에 보편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더욱이 상당수가 현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역사적 조형물이다. 또한 지역에 따라 형태나 기술력의 차이가 클 뿐만 아니라 양식적으로 규모와 균형감에 있어 다른 구조물에 없는 특이한 경관을 지닌 구조물이다. 우리나라에는 홍예교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모두들 역학적 구조미와 형태적 조형미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선암사 승선교는 크기와 형태, 구조미, 주변경관과의 어움림 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 천득염(전남대ㆍ건축학부)
필자는 고려대에서 ‘백제계석탑의 조형특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의 명원 소쇄원’ ‘한국의 건축문화재’ ‘운주사’ ‘광주건축 10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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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29) 中國 돌다리와 비교
빈틈없이 늘어선 평평한 석재로 완만한 곡면 이뤄
일반적으로 아치기술은 로마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중국에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나 로마의 수도교와 하수구 등 아치로 된 유적은 수없이 많다. 이러한 아치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홍예교는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라시대에 당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술을 도입하여 다리가설에 응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612년 백제인 路子工이 飛鳥宮의 남쪽 정원에 須彌山과 吳橋를 중심으로 하는 정원을 꾸몄다고 한다. 이를 보면 일본에 다리 건설기술을 전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선조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한다. 홍예교가 일본에 전해진 것은 1452년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1643년에는 명나라의 승려인 如定和尙이 일본 유일의 개항장인 나가사키에 와서 다리 건설공법을 전하였으며 그후 나가지마에 20개의 석교가 만들어졌는데 현재 12개가 남아 있다.

한편 중국에는 홍예의 모양이 크거나 작은 모습으로 조립된 다양한 돌다리가 있는데 제일 오래된 홍예석교인 安濟橋는 중국 남북교통의 중요한 간선도로 위에 있는 석교로서 하북 趙縣의 남문 밖에 위치한 河 위에 있다. 이는 수나라 때인 大業年間(605~617)에 李春의 책임하에 건조되었는데 축조기술과 형태미로 보아 대단한 걸작품이라 하겠다. 이 다리의 길이는 37.4미터이고 높이가 7.2미터에 이르며 그 양쪽에는 각각 2개의 소형 아치가 있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敞肩橋라 할 것이다. 여기서 창견교란 중앙의 큰 아치 양쪽에 2개씩의 조그만 아치구멍이 있는 중국 특유의 형식을 말한다. 李春은 홍수가 나면 河의 유량이 급증하여 물 흐름이 맹렬할 것이므로 양쪽에 두 개씩 모두 4개의 구멍을 뚫어 물이 거세게 밀어 닥치는 것을 방지하고, 동시에 교량자체의 중량을 줄이며 재료를 절약하도록 창견교라는 구조를 창안한 것이다.
이 다리는 평행하면서도 빈틈없이 늘어선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석재 사이의 연결이 밀착되어 있어 쉽게 양쪽으로 분산, 무너질 염려가 있다. 그러나 이춘은 漢代 이래로 내려온 전통적인 방식을 바탕으로 하여 아치를 이루는 부재 위에 횡방향의 석판을 이용하여 한 층을 추가하였다. 이들 부재를 연결하는 데에는 횡방향의 철구조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다리 폭을 중간이 점점 좁아지게 하고 양쪽에서 각 석재가 안쪽으로 약간 기울게 하였다.
이 다리의 아치는 60도 정도로 완만한 곡면을 이룬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반원의 아치는 아니다. 또한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아치를 연결한 이색적인 창견교는 오히려 경쾌하고 깔끔한 형상을 만들었다. 교량 위에는 원래 수나라시대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조각의 난간이 있었는데 河의 범람으로 떨어져 나가 수백년간 땅에 묻혀 있다 발굴되었다. / 천득염(전남대ㆍ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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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29) 전문가 조사 : 불국사 다리, 청운교·백운교, 연화교·칠보교
직각삼각형의 안정된 비례
전문가들은 선암사의 승선교를 최고의 교각으로 추천했다. 돌로 이룬 인공적인 곡선미나 결구미가 빼어나 탁월한 아름다움과 조형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어, 불국사의 靑雲橋, 白雲橋와 蓮花橋, 七寶橋가 우리나라 최고의 교각으로 지목되었다.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 두 곳이 있다. 이들은 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들로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불국사 돌다리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직각삼각형의 원리에 입각한 勾股弦法으로 건축되어 3대 4대 5의 안정된 비례를 보여주고 있다. 서양의 경우 다리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층계석의 높이를 먼저 정하고 그것을 합하여 돌다리의 높이를 정한다. 반면, 불국사 청운교·백운교의 경우 측면의 아름다움을 고려하여 안정된 비율을 설정한 뒤 그에 맞추어 층계석의 수와 높이를 산출해 내었다. 이는 신라인들이 실용성을 위한 과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 조형력도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또한, 계단참과 연화교가 이어지는 부분의 완벽한 결구는 돌로 가설하면서도 목조를 건축하는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불국사의 교각들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이다. 화강암은 돌 가운데서도 경도가 매우 높은 단단한 석재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에서 자재로 쓸 수 있는 돌이 대부분 화강암이기 때문에 화강암으로의 가설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나, 그러한 재료에 목조건축의 방식을 재현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연화교에는 층계마다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어 마치 연꽃잎을 밟으며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주며, 청운교와 백운교에는 난간의 받침대에 추상화된 구름형상의 무늬를 넣어 이름에 걸맞는 분위기를 창출해 내었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준다면, 서쪽의 연화교·칠보교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불국사 내에서도 조형에의 조화와 변화의 美를 추구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유물로서 완벽한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는 면에서도 연구사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 출처-교수신문 2007.01.01
▼ 승선교의 모습. 반원형의 아치가 물에 비친 반원과 어울려 큰 원을 이룬다. 특히 물에 투영되어 비친 강선루와 주변풍관은 한 폭의 그림 같다.
▼ 홍예를 중심으로 좌우의 계곡기슭까지 사이사이에 자연그대로의 냇돌을 사용하여 석벽을 쌓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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