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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도 미술 전시회의 경향

편집부

I. 통계로 본 2005년도 미술 전시회
2005년에 국내에서 이루어진 전시는 8858건이며, 한국작가가 해외에서 한 전시인 191건을 포함시키면 총 9049건으로 조사되었다. 2004년의 7413건에 비해 1636건이 늘었다. 이는 전년대비 22.07%가 늘어난 수치이다. 2000년 이후의 전시 통계자료만 다시 보아도 2000년 6351건, 2001년 6388건(전년대비 0.58% 증가), 2002년에 6703건(전년대비 4.93% 증가), 2003년에 6747건(전년대비 0.66% 증가), 2004년에 7413건(전년대비 9.87% 증가)이다. 전시회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2004년에서 2005년의 증가세는 매우 높았다. 조사 범위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화랑 같은 전통적인 전시공간뿐 아니라, 전시장 이외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미술 전시를 포함시켰다. 전통적인 전시공간 이외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전시들은 현장 및 ‘장소 특정성’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더불어 늘고 있으며, 전시장 이외의 곳에서 일어나는 낱낱의 미술행사들 역시 인터넷을 비롯하여 수많은 매체에 직 간접적으로 리뷰 및 정보가 실리기 때문에 통계에 잡힐 수 있었다.
번듯한 전시장에서 시시한 전시가 열리는가 하면, 시골 다방이나 지하철 역사 안에서도 중요한 전시가 열릴 수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마추어 미술인의 전시는 물론, 학생들의 졸업 전시를 비롯하여 과제전까지 화랑에서 열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전시 정보의 수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줄지 않을 것 같고, 전시공간이 얼마나 늘어나는가, 그리고 전시장 이외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미술 전시회가 얼마나 조사되는가에 따라 전시회 숫자의 증가 폭이 결정되리라 본다. 조사라는 것이 결국은 자료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통계는 미술정보가 담겨진 다양한 매체의 진화와 더불어 변화할 것이다. 2005년만 해도 새로 창간된 미술잡지들이 지역 및 장르별로 전시 미술 정보를 세분화하는 데 일조했다. 2005년의 미술전시의 조사 자료는 필자에게 수신된 팸플릿 및 전시 안내엽서 약 2000여 종, 『월간미술』, 『아트 인 컬처』, 『공간』, 『미술세계』 등 4종의 월간 미술 전문지, 김달진 미술연구소 발행의 『서울 아트가이드』, 월간 아트 프라이스의 부록인 『리뷰』지, 지방 신문들의 미술 기사 스크랩, 많지는 않지만 각 전시 공간에서 연감 제작을 위해 보내준 1년치 전시 자료, 그리고 인터넷 등에서 개별적으로 수집한 자료 등이다.
어떤 전시는 매체마다 기사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단 한 줄의 정보로도 기록되지 않았을 더 많은 전시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손에 닿는 자료를 다 본다 해도 정확한 통계가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전시도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과정에서 전시 기간과 전시 제목 등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경우에는 정보 내용이 더 많은 자료를 우선시했다. 그래서 필자는 이러저러한 자료들로부터 수집된 전시 통계를 가지고, ‘몇 건의 전시가 열렸다’는 표현보다는, ‘몇 건의 전시가 조사되었다’는 좀더 상대적인 표현을 쓰고자 한다. 수천 건의 자료가 다루어지는 통계 작업이기 때문에, 전시 기간의 확실성이나 중복기재의 염려가 있다. 그러나 어딘가 손에 닿지 않은 자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한 해 9천 건 이상의 전시가 이루어지는 것은 확실하다고 판단된다.
전시는 열린 장소를 기준으로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외국전시, 한국미술의 해외전시 등으로 항목을 나누었고, 장르는 회화, 공예, 한국화, 사진, 설치, 조각, 영상-설치, 영상, 유물, 회화-조각, 서예, 디자인으로 분류했다. 2004년 통계에서 디자인은 공예에, 서예는 한국화 부문에 포함시켰지만, 2005년도 통계에서는 디자인과 서예 부문을 첨가했다. 디자인은 현대적인 공예이고,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같은 것은 응용미술이라는 면에서 회화나 영상보다는 디자인 부문에 넣기 위해서이다.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건축 작품의 경우 디자인 부문에 포함시켰다. ‘종합’은 여러 장르가 복합된 경우, 단체전, 자료 전시, 장르가 불확실한 전시에 해당된다.
13개로 나뉘어진 장르별로 전시를 살펴볼 때, 2003년에 이어 2004년에도 회화의 비중이 제일 높았다. 회화는 2003년에는 전체의 34.69%, 2004년에는 36.37%였다. 장르가 애매한 부분인 종합을 제외하면, 그 다음을 잇는 것이 공예(9.48%), 한국화(8.03%), 사진(7.03%) 순이다. 제일 비중이 낮은 장르는 영상으로, 2003년의 0.24%에 이어, 2004년에는 0.39%를 차지했다. 회화는 한국화보다 약 4.5배가 많았고, 공예는 디자인에 비해 3.3배가 많았다. 소위 ‘서양화’라고 분류되는 그림의 경우, 한국화보다 월등하게 비중이 높은 반면, 전통공예는 현대공예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보다 비중이 높은 것은, 단순히 전통/현대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의 자율성이 강화되는 과정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건축에 이어 다양한 응용미술이 현장 및 담론의 차원에서 순수미술 분야와는 별도의 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편 전통공예의 경우, 북적거리는 인사동 문화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그림과 더불어 우리 미술문화의 중요한 한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지방, 특히 전라도 지역에는 한지공예 부문의 전시가 매우 활발하고, 그 장르만 다루는 전문 화랑도 많이 있으며,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사실, 동양미술이든 서양미술이든 모든 예술작품은 기본적으로 공예였다. 그것들은 반드시 어딘가 쓰임이 있었다. ‘순수미술’이라는 것은 근대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공예화된 미술, 장식이나 잉여의 것이 되어버린 ‘현대미술’은 무의미하다. 미술이 이제는 단순한 기교의 문제를 벗어나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기교’를 미술에 있어서의 성실성의 관건, 미학의 기준으로 삼는 전시의 가장 전형적인 예가 각종 공모전인데, 2005년에도 어김없이 많은 공모전이 벌어졌다. 전국 또는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는 공모전은 작가들이 참가비를 내고 참여하며, 수많은 수상자를 내고 입상작 전시를 하며, ‘초대작가전, 추천작가전’이라는 이름으로 공모전 주최측과 관련된 인사들의 전시가 아울러 열리는 전형적인 코스를 밟는다. 지방신문의 경우, 입선자 명단까지 빠짐없이 실리기도 하고, 입상 경력은 작가의 중요한 이력으로 빠지지 않고 기입된다. 수상자들은 공모전의 권위에 따라 적지 않은 혜택을 받는다. 한마디로 공모전에서의 수상은 그동안의 불확실한 예술가로서의 생활에 대한 알리바이를 단번에 성립시켜주는 행사로 각인되어 있다.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또 비판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존재하는 이런 종류의 전시는 공모전을 관할하는 해당 단체의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공명심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면이 있다. 꼭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제도란 개인에게서건 집단에게서건 풀뿌리 같은 집요한 필요성에 의해 보존되고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공모전 문화는 훌륭한 것이든 아니든, 자신의 창작 결과가 다른 이들과 만나는 어떤 사회적 통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말 그대로 공모전은 조건을 넘어서서 공정한 경쟁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신진 작가의 등용무대가 공모의 형식을 빌려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공모전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학연, 지연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욱 강화되는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II 장르별, 지역별, 국가별 분포
매우 화려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현대미술을 대변하는 듯이 보이는 설치, 영상-설치, 영상 부분은 모두 합쳐도 전체 장르의 10%도 차지하지 못한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외국전시나 한국작가의 해외전시에서도 구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회화의 비중이 제일 높았다. 외국전시의 경우 회화, 사진, 공예의 순서이고, 한국작가의 해외전은 회화, 한국화, 설치의 순서였다. 우리의 생활환경은 사진 및 영상, 다양한 응용미술의 형태가 잠식하고 있지만, 미술의 대표 장르는 여전히 회화임을 알 수 있다. 현장의 화가들은 나날이 가속화되고 있는 전자시대 복제매체들의 진화에 맞닥뜨려 ‘왜 아직도 그리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회의 자체가 현대 미술의 문제틀을 더욱 정교하게 해주고 있다.
사실 1990년대, 2000년대를 지나면서, 실제 공간에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설치 작업이나, 새로운 시각 패러다임을 창조하기보다는 대중문화를 쫓아가기에 급급한 영상 작업의 고루한 면모가 드러나면서 회화의 보편성과 매력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열화와도 같은 유행이 한바퀴 돌고 나서, 차분하게 미술 본연의 문제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회화는 다시금 중요한 매체로 부각된다. 동시에 회화는 다른 장르의 성과를 그 내부에 포함시키면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사실 표현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질이 문제라면 회화든 뭐든 상관할 것이 없다. 2005년 회화 부문 관련 전시현황을 살펴보면, 중요한 작가가 회화 부문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만큼, 작가층이 두터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연간 9000건이 넘는 전시회의 숫자에서 알 수 있듯, 미술이 대중화되고 전시하기가 예전보다 쉬워도 회화는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회화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그 미학적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유물이나 영상 부문은 각각 1.19%, 0.39%로 현재로서는 비중이 낮지만, 한국 미술계가 보다 기획력을 키워간다면 미래 성장력이 아주 높은 장르이다. 2005년에 전국을 순회하며 열렸던 <대영 박물관전>에서 보여지듯, 기획사를 통해 해외의 유명 전시가 대중 이벤트로 흥행몰이를 한 경우가 종종 있다. 분야의 특성상 생산보다는 소비의 측면에 집중되겠지만, 소비와 생산은 서로 맞물리는 문제이며, 양적인 문제는 질적인 문제로 승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미술에서 대중주의에 호소하는 전시는 소박한 계몽주의 및 애국주의, 언론의 부채질에 따른 일과성 이벤트의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국과의 역사 문제가 불거졌던 2005년에 많이 열렸던 고구려 역사 관련 전시나, 독도 때문에 일본과 문제가 생겼을 때 열린 독도관련 전시 등이 그것이다. 전국의 전시장을 돌며 이루어졌던 태극기 관련 전시는, 미술 작품 전시라기보다는 자료 전시였지만, 태극 문화의 저류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역별로 볼 때 서울 편중은 여전히 심했다. 2004년에 서울에서 이루어진 전시는 4583건으로, 전체 전시의 50.58%를 차지했다. 경기도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수도권에서의 전시는 전국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의 60% 이상이다. 인구 비례로 본다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중앙’과 ‘변방’의 차이는 확연하다. 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작업을 해도, ‘중앙 무대’에서 한 번쯤은, 아니, 될 수 있으면 많이 서 보는 것이 작가로서 받아야 할 기본 검증 절차라는 생각이 지방신문의 작가 인터뷰 코너 따위의 자료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출향 작가’라고 해서 지역에서 중앙으로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에게는 서울이나 머나먼 이국에서의 전시도 빠지지 않고 실리며, 국전 등의 전국 단위의 대규모 미술전시에는 해당지역 작가가 얼마큼 당선되었는가 하는 것도 중요 기사 중의 하나이다. 미술가들이 무슨 지역 대표 선수들같이 다루어지는 행태는 지역성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다시금 확인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수도권/지방의 차이와는 달리, 국내에서 이루어진 외국전시와 한국 작가가 해외로 나가서 개최한 전시의 비율은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외국 작가의 작품전은 238건, 한국 작가가 해외에 가서 한 전시는 191건으로, 각각 전체의 2.63%와 2.1%를 차지했다. 통계치라서 전시의 질적인 측면은 배제된 경우이긴 하지만, 들어오는 만큼 나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해외전시는 주요 아트페어나 기획전 초대, 개인적인 인연을 계기로 열린 전시, 양국의 미술단체 간의 교류전의 성격을 띤 것이 많다. 해외 전시의 분포를 보면 미국이 50건으로, 전체의 26.32%를 차지하며 가장 많고, 그 뒤를 일본과 중국이 이었다. 2004년에는 ‘빅 3’가 미국, 일본, 프랑스 순이었는데, 2005년에는 3등 자리를 프랑스 대신 중국이 차지했다. 해외전시의 경우 중국 풍이 거셌다. 그것은 중국 미술계가 더 이상 현대미술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시장으로 통하는 또 다른 관문으로 인식된 결과이다. 국내의 많은 화랑들이 전속 작가들의 작품을 가지고 중국 현지로 진출하고, 중국의 현대미술 전시도 국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협회 단위의 크고 작은 교류전 또한 활발했다. 국내외의 아트페어를 전후해서 해당 화랑들은 아트페어 참여 작가를 미리 선보이거나, 아트페어의 리뷰 성격을 띠는 후속 전시들을 열곤 한다.
월별 분포를 보면, 1월에 전시가 가장 적게 열리다가 6월까지 서서히 증가하고, 한여름인 7, 8월에 줄었다가 가을이 시작되면 다시 증가하여 10, 11월에 피크-1년 전시의 23% 정도를 차지-를 이루고, 12월에 다시 줄어드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전시는 이전 시절에 비한다면 연간 꾸준히 열리고 있는 편이지만, 상대적인 비수기는 있게 마련이다. 전시 비수기인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방학을 겨냥한 각종 학생관련 미술 전시들이 봇물을 이룬다. 비슷비슷한 아이템으로 경쟁적으로 열리고, 인기작가들이 겹치기 출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규모가 크고 잘 기획된 전시의 경우 전국을 순회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시는 단순한 이벤트성 행사를 넘어 미래의 잠재 미술인구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작가에게는 또 다른 시험무대가 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덧 지나친 배려의 대상이 되어버린 어린이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찾는 또 다른 놀이마당 정도를 넘어서, 어른이 보기에도, 심지어는 작가가 보기에도 의미있는 전시가 기획되어야 한다.
학생들 관련 전시가 가장 대표적인 대중관련 미술행사이지만, 이외에도 여러가지 목적을 띠는 전시들이 있다. ‘민주화 운동기금 마련 전’부터 ‘북녘에 물감 보내기 범미술인 전’ 같은 전시, 이러저러한 자선행사로서의 전시, 환자들을 위한 치유의 미술, 지자체의 홍보성 전시, 심지어는 지방의 국세청이 주관해서 연 세금관련 공모 전시도 열렸다. 이러한 류의 전시들은 미술의 다양한 쓰임새를 개발하고, 고립의 극복 및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창작 미술품이라고 할 수 없지만, 미학적 흥미를 끄는 전시도 눈길을 끈다. 압축 성장을 한 탓에 어느덧 생태 박물관 수준이 된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상 문화들이 밀랍인형으로 떠져서 ‘이런 시절도 있었다’는 식의 대중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시나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우는 키치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2005년에 전국의 전시장을 돌면서 이루어진 전시 중에서 세계 명화를 복제한 작품 전시들이 있었다. 이러한 복제미술전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화가들이 사용했던 캔버스 천에 아크릴이나 흰색 물감으로 밑바탕 처리를 하고 그 위에 디지털 프린팅을 하는 정교한 수작업을 통해 완성시킴으로써, 원본에 가까운 색감과 질감을 재현하고자 한다. 복제관련 특허기술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색이 바래고 물감이 떨어져나가 정교한 복원기술로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명을 다해가는 원본 작품들 대신에 ‘유일한 복제품’들이 세계의 미술관에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이 유일한 복제 작품에 대한 또 다른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복제를 통해 원본의 가치와 물신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 밖에 꼭 미술작품이 아니어도 미술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면서 관객 및 작가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전시들이 많았다. 어떤 한 분야에 깊숙이 매몰되어 있는 집요한 수집가들에 의해 모아진 희귀한 수집물들-가령 세계 각국의 십자가를 모은 전시, 특정 주제를 가진 LP 재킷 전시, 진기한 고지도 전시 등-은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에게 큰 관심을 끌 수 있는 아이템이다.
III. 대관화랑, 전문화랑, 대안공간, 사이버 공간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서 가장 전시가 많이 이루어진 곳은 경상도로 1402건, 전체의 15.53%를 차지했다. 전라도가 897건으로 9.91%를 차지해, 영호남 사이에 비율의 차이가 컸다. 그렇기는 하지만, 양 지역은 연중 내내 협회나 단체, 개인별로 빈번한 교류전이 열린다. 경상도 지역에서 열린 큰 전시는,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현대미술 속에서 대구경북 미술의 위상 전’이다. 1945년부터 1990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이인성, 이강소 등 지역의 작가 110명을 4부로 나누어 조명하였다. 그런가 하면 기존의 화랑과 대안공간이 연합하여 ‘뉴 제너레이션’, ‘영 아티스트 네트워크’ 등을 열기도 했다. 전자는 경상도 지역에서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음을 알리는 전시이고, 후자는 지방에서도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는 대안 공간을 중심으로 젊은 작가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제5회 세계 전북 비엔날레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려 23개국 2천 명의 작가가 참여하였으며, 총 11개의 공식 행사를 치렀다. 이는 전라도 지역이 구상, 한국화, 서예의 본고장임을 확인시켜 준다.
강원도와 제주도 지역은 인구 밀도 및 지역적인 특색 때문인지 미술 전시가 많지 않았다. 둘이 합쳐도 전국의 4%를 넘지 못한다. 관광 도시들이다 보니까 여러 가지 지역축제들이 많고 그 행사들 틈에 끼여서 미술 전시들도 이루어진다. 강원도 지역에는 박수근 미술관이 생기고, 이를 중심으로 예술인촌까지 준공되어 향후 활발한 문화 활동이 기대되고 있다. 2005년에는 강원도 지역에서 열리는 최초의 아트페어가 치악미술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제주도는 ‘섬, 희노애락’이라는 부제로 제주 미술제가 열렸고, 서귀포의 기당 미술관에서는 일생을 제주도의 토속적인 풍광을 담아왔던 변시지 화백의 작품전이 열렸다. 서울의 사비나 미술관이 제주도에 분관을 내서 지역 간의 교류를 시도했다. 충청도에서 이루어진 전시회 수는 562건으로, 전체의 6.21%를 차지했다. 2005년 충청도에서 벌어진 큰 전시는 60개국 작가 2000명이 참여하는 청주 국제 공예비엔날레이다.
경기도에서도 공예관련 비엔날레가 열렸다. 이천 세계도자센터와 광주조선요박물관에서 ‘문화를 담는 도자’라는 부제로,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가 개최되었는데, 각 도별로 경쟁적으로 비엔날레를 유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대규모 행사는 서울에서 열렸는데, 2월에 세종문화회관 전관에서 열린 ‘코리아 아트 페스티벌’이다. 이 전시는 회화, 한국화, 조각 부문의 작가 2200명이 참가한, ‘국내 순수미술 사상 최다 작가가 참여’하는 행사로, ‘대한민국 작가 총서’의 출판을 위한 전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시 규모를 키우고, 많은 작가가 동원되기보다는 확실한 이슈를 던질 수 있는 내실있는 기획전들이 더 필요하다. 지역에서는 도립, 시립 미술관의 역할이 크고, 문예회관에서도 많은 전시들이 열린다. 몇몇 도시에서는 지역의 미술관 건립을 위해 미술인들이 힘을 모으려는 전시들이 열리기도 했다. 한편으로 각 도나 시마다 경쟁적으로 세워진 미술관의 규모에 비해 소장품의 질이나 전문 큐레이터실의 운용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의 부족은 수년째 지적되어 오는 사항이다.
서울의 경우, 각 구마다 번듯하게 세워져 있는 문화체육회관 등이 미술 전시 부문에서 별다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각 지역의 문예회관은 지역의 중심적인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며, 몇 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1주일 단위로 전시가 열린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여기서 열리고, 문예회관에서 주최하는 각종 문화교실의 수강생들의 작품전부터 동호회, 학생들의 작품 전시 같은 아마추어적인 전시들도 열린다. 또한 각 지역의 문예회관은 협회 단위로 조직된 단체들이 공모하는 각종 전시들이 열리는 거점이 된다. 전시공간들은 대관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기획전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 양자가 적절히 혼용된 공간이 있다. 특히 서울 지역 인사동의 몇몇 공간은 일주일 단위로 바뀌는 전시들을 유치함으로써, 한 달에도 10건이 넘는 전시회를 소화하곤 한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이루어졌던 졸업 전시, 심지어는 과제전까지 화랑가에서 열리고 있어 졸업 시즌에는 학생들의 전시만으로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편으로 각 학교별로 있는, 또는 신축된 학교미술관 내지, 박물관에서는 교수나 학생들의 작품 전시를 넘어서, 일반 화랑에서는 할 수 없는 참신한 기획전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특정 학교가 운영권을 가지는 화랑들이 생겨나서 재학생이나 졸업생, 동문들을 위한 활동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미술대학과 일반 화랑의 관계는 매우 긴밀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관이 되는 대로, 무작위로 전시를 하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기획전을 적절히 병행함으로써, 대관을 병행해도 특화된 공간으로 거듭나는 곳이 있다. 특히 공예, 한국화, 사진 등은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대관, 또는 기획하는 몇몇 공간이 있다. 2000년대를 전후하여 생겨나기 시작한 대안공간은 젊은 작가들을 공모하거나 기획전을 통해 빠른 시간 동안 주요한 전시공간으로 자리매김되어 왔고, 이들의 성공으로 대안공간을 표방하는 공간들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특히 쌈지스페이스, 아트스페이스 휴, 대안공간 루프 등이 있는 홍익대 지역 부근은 또 하나의 전시 공간 블록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프린지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젊은이들의 축제가 빈번히 열리는 그곳은 개별적으로, 또는 연합해서 전시나 워크숍 등이 진행된다. 인사동 지역의 대안공간에서 인사미술공간과 대안 공간 풀은 2005년의 활동을 끝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여 문화 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많지 않은 공공기금으로 운영되는 대안공간들이 비싼 임대료를 물면서 번잡한 곳에 있을 필요가 없지만, 인사동만큼 대중의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서 관객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더 훌륭한 기획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된 셈이다. 인사동에 유일하게 남게 된 사루비아 다방의 역할이 커졌다. 마지막으로 상업화랑이 몰려 있는 강남 신사동 지역에서 대안공간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던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이 연말에 문을 닫음으로써 미술계로서는 큰 손실을 보았다. 대안공간의 약진을 통해 기존의 사립미술관들도 자극을 받는다. 토탈 미술관, 사비나 미술관 등, 주로 서울 및 경기 지역에 포진하고 있는 많은 사립미술관들은 공동으로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 미술관 공동 투어 티켓을 발행하기도 한다. 대안공간이든 사립미술관이든 그들은 끼리끼리 연대하여, 또 하나의 압력 집단으로 미술계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진작가 전시를 열어주는 화랑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통해 기존의 화랑들이 경쟁적으로 신진작가 공모전을 내건 것도 2005년의 특징이다.
경기도, 경상도, 충청도 등 지방에서도 대안공간들이 속속 생겨나 젊은 미술인들의 거점이 되고 있다. 신진작가들이 등단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대학교 교수들의 추천을 받은 작가들을 모은 전시들이다. 이런 방식은 한 전시에서도 여러 학교들이 뒤섞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지고, 여러 학교 출신의 예비작가들을 한 무대에 올림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2005년의 중요 기획전 중에는 단순히 작가를 모아 전시하는 것을 넘어 비평적인 담론과 긴밀히 접속된 몇몇 전시들이 있었다. 이러한 전시는 단순히 작가에게 발표 기회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작가를 주목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이론적으로도 분명히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10월에 경상도의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창작과 비평-평론가 선정 5인전’은 2000년도에 발족한 대구 미술비평연구회의 평론가들이 선정한 작가들의 전시였다. 서울에서는 9월에 토탈미술관에서 선정된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품론을 집필할 비평가들을 선택하여 작품과 담론을 함께 선보인 17x17전이 열렸고, 11월에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에서는 현대미술 이론 웹진 ‘미술과 담론’(www.artndiscourse.net)이 주최한 ‘신진작가들의 발언-비평가들의 제안’전이 열렸는데, 그것은 5명의 평론가와 5명의 신진작가가 각자의 담론과 작품을 펼친 전시였다.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 점차로 줄어들고 있는 평론가들의 기획전을 되살리는 의미도 있다. 개인전의 경우에도 전시에 병행해서 대규모 콜로퀴움 등을 통해 한 작가의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있었는데, 이러한 관행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대안공간이나 여타의 장치들을 통해 등단하는 것은 여러 가지 후광 효과를 가지지만, 여전히 한 작가의 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개인전이다. 그래서 2005년 전시 편람에도 확인되는 자료에 한하여 첫 개인전을 특별히 표기하였다. 그것은 어떤 작가가 유의미한 방식으로 미술계에 등장하는 오래 되고도 보편적인 방식이다. 물론 1회 개인전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작품을 늦게 시작한 것도 아닌데, 육순이 넘어서 하는 첫 개인전을 치른 어떤 작가가 지역에서 크게 조명되는 사례가 있기도 했다. 이는 너무 쉽게 전시를 하는 관행에 대해 신선한 자극을 준다. 2005년에 전국적으로 많이 이루어진 개인전의 방식으로 부스전이 있다. 본래 부스전은 미술품 견본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아트페어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인데, 일반 전시에서도 채택하는 양식이 되었다. 한국 화랑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 국제아트페어(KIAF)’를 시작으로, 지방에서도 많은 아트페어 및 아트페어 형식의 전시라고 할 수 있는 부스전이 열렸다.
한 공간을 부스로 구획하는 이러한 전시에 대해 ‘집단 개인전’, ‘00인의 개인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것은 전시와 판매라는 이중적인 목적을 가진다. 사실 모든 전시가 판매의 목적도 있는 것이지만, 부스 전시는 좀더 명료하게 상품적인 특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전시는 기본적으로 개인전이라는 것이 쉽지는 않고, 여러 작가가 참여하는 기획전 역시 기획전답지 않을 때, 가령 어떤 모토를 내건 전시이지만 전체 맥락과 관계없이 기존의 자기 작품을 들고 나오는 경우나, 기획의 개념 자체가 엉성한 단체전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전시가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공간인 인터넷을 주목하고 싶다. 사이버 전시는 우리나라의 발전된 인터넷 문화를 생각해 볼 때, 향후 발전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온라인 전시에 대한 보조적인 기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만 이루어지거나 오프라인과는 별도의 자율적인 특성을 가지는 경우인데, 회화, 한국화와 서예, 사진, 영상, 영상-설치 분야 등 각 장르별로 하나씩만 소개하겠다.
회화 부문에서는 5월 통영의 전혁림 미술관에서 주최한 전혁림 전이 있었다. 그것은 전혁림 화백의 판화 작품을 사이버상(www.jeonhyucklim.org)에 전시하고 네티즌의 감상문을 공모하며, 공모된 감상문을 도록에 싣기도 했다. 한국화와 서예 부문에서는 5월에 열린 서예협 사이버 전(www.seoye.net)이 있는데, 5.18 민주항쟁을 기념하여 전국의 서예가와 문인화가 110명이 참여한 전시이다. 사진 부문에서는 진주 SLR 창립전(www.jjslr.com)이 있다. 이는 진주 지역의 온라인 디지털 사진 동호회의 전시로서 오프라인 전시도 병행하였다. 영상-설치 부문에서는 DMAC 2005(www.dmac.or.kr)전이 있는데, ‘image echo’라는 부제로 열린 미디어 아트 전시로, 육태진이 디렉터로 참여했다. 영상 부문에서는 11월에 ‘블로그, 이름을 불러주다’전(blog1010.egloos. com)이 인천 지역의 주안미디어 축제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 사이버 전시는 ‘현시대 미술발전 모임’ 등의 미술단체와 네티즌이 함께 꾸린 블로그 전시였다. 이들 전시는 사이버 전시 특유의 광역성 및 공간 편재성, 상호 작용성을 특징으로 한다.
◈ 筆者 : 이선영 미술평론가
- 2006 문예연감 현황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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