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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 창작지원제도에 대한 반성

정준모


제도로서의 지원, 기관으로서의 후원
정준모(미술비평, 미술사)

시작하면서
우선 미술가를 위한 지원 특히 창작지원에 대해서는 할 말도 많지만 해야 할 말도 많다. 대한민국정부의 문화예술의지가 어떠했던 간에 정부는 지금까지 직접적으로는 특정 비영리 민간단체를 지정해서 특정한 사업을 지원하거나 또는 정부를 대신해서 수행하도록 하는 교부금 사업과 문화예술진흥원(현 문화예술진흥위원회의 전신)을 통해 직간접적인 지원을 해왔다.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해 수혜를 받은 예술가 특히 미술인들에게 얼마나 직간접적인 지원이 되었는지, 또 그 성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
물론 문화예술 관련해서 평가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러나 아주 미개한 방식으로 평가를 해 보아도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받은 작가들 가운데 ‘정말 고마웠다.’ ‘적은 돈이지만 나의 경유 유용하고 적절하게 사용했다.’ ‘필요한 때 매우 요긴했다.’ 라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칭찬에는 야박하고 조심스럽지만 타박하고 야단치는 데는 후한 우리네 성정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지원의 경우는 대개는 금전적인 지원이 대종을 이룬다. 하지만 창작스튜디오 운영, 미술은행의 설치, 해외 스튜디오 확보 및 작가의 파견 등등의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경우는 직접적인 지원보다도 그 효과가 크고 장기적이라는 효용성이 있다.
하지만 늘 이렇게 좋은, 또 의미 있는 제도를 누가 운용하는가가 문제이다. 사실 제도나 시스템이 마련되면 그 시스템에 따라서 운용된다고 시스템의 변화와 확립의 필요성을 외치지만 결국은 사람의 일이다. 시스템을 강조하다보면 결국은 그 시스템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그 시스템을 재고하는 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람의 일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그런 이유로 전문기관이나 전문적인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이해당사자들이 시스템 운용의 주체가 되는 경우 분배의 편향성이 문제가 되고 행정 전문 인력이 주체가 되는 경우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으로, 융통성 없이 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전문 인력이 소수 나마 확보된 미술관등 전문기관이 나서서 이를 대신하는 방안을 떠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은 작가와 국민 즉 관람객을 매개하는 작품을 수집하고 이를 연구조사해서 그 결과를 전시라는 형태로 이어내는 기관이자 시설이라는 원칙은 사라지고 미술관은 화가, 작가를 위한 곳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의 작품 수장행위를 작가들을 위한 창작지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와 같은 오해와 몰이해가 생기게 된 것이다. 미술관의 작품의 수집과 보존이라는 원칙은 미술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동시에 미술관의 존재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가장 중요한 임무가 창작지원수단으로 전락해서 젊은 작가들의 생계를 위해서 작품을 구입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정부나 국회의 요구에 따르다 보면 허겁지겁 계획을 변경해서 실행해야하는 불합리한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이는 미술관의 기본적인 임무를 저버리는 행위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미술관의 작품수장은 지난 역사와 문화를 가장 정교하게 드러내는 예술성 높고 높은 미학적 가치를 실천한 작품들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작가로서 검증되지도 않은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수장하라는 것은 미술관을 작품창고이자 창작지원을 하는 기관으로 잘 못 생각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물론 미술관에 대한 오해와 이해부족에서 요구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하나둘이 아닌 바에야 그렇게 흥분 할 일도 아니지만.
창작스튜디오나 미술은행 같은 제도도 작품수장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사실 창작스튜디오를 국립미술관이 운영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게다가 전문 인력이 한사람도 없는 일반 행정직들로 구성된 부서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인력 한사람을 고용해서 운용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는 미술과는 거리가 먼 일반 행정요원들에게 사업안을 보고하고 협의해서 그들의 결심을 얻어 그제야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나마 국립미술관의 전문 인력들이 자문을 하면서 진행되니 그나마 나은 경우다.
사실 창작스튜디오란 이름의 사업이 시행된 것은 실은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문예 진흥원이 지방정부를 지원해서 폐교 등을 활용한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영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해 놓고 보니 한 두 곳을 제외 하고는 폐교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 들여 폐허를 만드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필자 등이 국립 창작스튜디오를 제안하게 되었고 이 아이디어가 사업안으로 채택되고 다시 그 사업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맡겨지는 행정조직의 관습에 따라 미술관의 목적과 성격과는 무관한 이 일이 미술관의 업무가 된 것이다.
미술은행의 경우도 그렇다. 미술관이 미술문화진흥정책의 일환으로 문화부에 아이디어로 제출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의 경우 애초에는 프랑스의 프낙(fnac)이나 독일의 이파(ifa)등의 제도를 모델로 미술관의 작품수장이 창작지원이라는 오해에서 자유스러울 목적과 함께 청년작가의 창작지원과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의 체감적인 실적이 급했던 문화부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창작지원과 미술은행이라는 이름을 이름그대로 이해해서 작품의 대여 즉 대출에 급급하다 보니 사업의 본말이 전도되었고 미술관은 결국 작품수장예산만 미술은행예산만큼 줄어든 셈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작품수집관련해서 이에 대한 노하우나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있는 인력은 충원하지 않은 채 작품 수집을 하려다 보니 투명성 확보라는 이유만으로 옥상옥의 제도와 위원회만 양산하고 말았다. 결국미술관은 미술관의 기본업무도 제대로 수행 할만 한 전문 인력도 제대로 없는 터에 일만 하나 더 안은 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시행착오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문제의 발단은 역시 전문인력 이라는 것이다. 사실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행정이나 재정 특히 경리부문에 대해서 무신경하거나 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일반 행정 전문가들이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원보다는 지원을 빌미로 전문성이 침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철저하게 업무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는 주요정책과 실현을 그리고 행정전문가는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사안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혁신이나 개혁이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은 손대지 않고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 인력과 행정전문가들의 아름다운 협업체제의 구축이야 말로 문화예술진흥의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진료는 의사가 하고 약의 조제는 약사가 하는 서로의 전문성이 안정적으로 인정되고 상호 협력하는 체제가 몇 년 전 도입 될 때 많은 저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어 오늘의 시스템을 구축했듯이 문화예술행정에도 의약 분업 같은 제도가 하루빨리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관은 미술관이다.
한국의 미술관 역사는 일천하기 그지없다. 일제 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경복궁 안에 물산공진회를 위해 지었던 건물을 기초로 총독부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이 미술관은 통칭 경복궁미술관이라 불리었다. 이후 광복 후에는 이 경복궁미술관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개최를 위한 공간으로 정식명칭은 국립미술관이었다.
그리고 이 미술관은 소장품 한점 없이 국립미술관이란 간판을 달고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1969년 국전개최권이 문화공보부로 이관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이란 현대적인 간판을 내걸고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덕수궁으로 다시 과천으로 이전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야기가 본론에서 좀 벗어나지만 과천미술관에다 88올림픽 당사 올림픽 조각공원을 건립하는 예산을 보태 제법 튼실한 미술관을 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해본다.
아무튼 미술관은 이렇게 소장품 한 점 없이 큐레이터 한 사람 없이 출발한 것이다. 그러니 미술관이라는 명칭보다는 전시관이라는 명칭이 더 나았을 법한데 이를 지적하는 미술인들은 한두 명에 불과했으니 이런 미술인들의 의식에도 기인하는 것이지만 이를 주도적으로 입안하고 실천한 문화영역과는 별개인 행정전문가들의 문화예술영역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미 이 때부터 미술관은 미술관 본래의 업무를 채 추스르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떤 이들이 모여 어떻게 일할 까를 결정짓기 전에 보다는 미술관 관련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시행하는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왜 미술관 임에도 불구하고 실행만 하고 정책은 수립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책은 문화공보부 또는 문화부에서 수립하는 행정전문가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미술관에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전직 농협직원이나 행정부서의 경리보조 등 기능직 요원들을 편의상 발령 내서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인 국전 즉 공모전의 운영을 맡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을 수립할 어떤 전문성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학예 연구직이 직제화 되고 나서도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3년마다 새로이 부임하는 관장들이 취임일성으로 외치는 학예직원의 대폭확충이라는 구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대로인 학예직원의 숫자, 작품관리를 위한 전문 인력의 부재, 교육이나 홍보인력, 전시 디스플레이어의 부재 등등의 문제이다.
이와 함께 비전문 인력으로 전문 인력이 해야 할 일을 대체하는 기형적 구조 즉 미술관에서 일하는 직원중 미술관련 학과 졸업자가 20%도 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또다시 미술관이 국립스튜디오 운영, 미술은행의 운용 등의 업무가 부가된다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 없다고 지적당하는 미술관을 사실은 어느 것도 잘 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미술관의 기본업무외의 직접적인 미술진흥사업 또는 지원사업은 과감하게 민간에 이양하거나 별도의 기구를 두어 집행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술 관련한 일은 모두 미술관이 한다, 또는 해라.’라는 식의 문화관광부의 태도는 미술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족을 상징하는 일이다.
미술관은 미술관이고 미술문화의 진흥과 지원은 문화관광부와 문화예술위원회에 이관하는 한편 전문영역의 인력들을 충원하고 보강해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력증원이 어렵다면 문화관광부의 일반 행정 전문 인력의 정원을 전문문화예술 영역 인원으로 전환해서라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문화예술의 발전과 진흥, 지원을 한다고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미진한 결론이지만
미술인들을 지원하고 후원해 온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도 미술인들은 여전히 배가 고픈 까닭은 무었을까. 히딩크처럼 승리의 욕구가 큰 탓일까. 아니다. 지금까지의 지원을 살펴보면 그 지원의 규모가 작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하거나 체감적으로 지원효과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직접지원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처럼 방법보다는 당장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의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 지원이란 것이 많은 사람에게 공평하게 배분되었다는 인상을 주기위해 개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소액 다건식의 지원이 필수불가결한 원칙이 되었다.
미술인들의 창작의지를 구현하거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나 요즘 그렇게 외치는 시스템의 구축 즉 버스를 사주기보다는 버스비를 주어 영원히 버스회사 즉 문예 진흥원이나 문화부의 행정지원요원들의 자리만 굳게 해 주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결국 본말이 전도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 지원을 원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헤아려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지원을 대리하는 요원들의 편의적이고 탁상행정식 지원으로 그간의 지원은 지원을 위한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현재의 아르코미술관 같은 경우도 그 하나이다. 아르코미술관의 원래 이름은 미술회관이었다. 그리고 이 장소의 애초의 목적은 독일의 쿤스트컨페어라인 즉 미술가협회가 운영하는 조합원식의 갤러리였다. 형편이 어려운 작가들에게 번듯한 전시장을 저렴한 돈으로 대관할 수 있도록 문예진흥기금을 투입해서 만든 시설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런 중요한 기능은 사라지고 미술관 흉내를 내고 있다. 변변한 소장품도 없이 전시관에 불과한 시설을 두고 말이다. 작가들은 저렴한 돈으로 그럴듯한 전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런데 이를 지적하는 미술인도 없지만 아니면 당연하다는 듯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아르코미술관 같은 시설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설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애써 자리 잡은 미술회관의 4반세기 넘는 역사는 사라지고 작가들은 좋은 전시장 하나만 잃은 꼴이 되었다. 그 누구와의 의논이나 공론화하는 과정 한 번 변변하게 거치지 않고 미술회관은 역사의 뒤로 사라진 것이다. 이 정부 들어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참여와 소통은 구두선이었단 말인가.
그래서 지원이란 분명한 것이다. 형태만 바꾸지 말고 실질적으로 바꿔 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원을 위한 지원과 진흥을 위한 지원, 진흥을 위한 후원을 분별하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혼재된 비빔밥 그 자체이다. 그 가닥부터 추리는 일 이 급선무이다. 그리고 무관심은 죄악이라는 심정으로 미술동네의 현안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원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도 지원받는 이들이 없다면 그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을 전제로 상호견제와 소통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소통을 위해 참여한 미술인들의 관료화가 더 큰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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