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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나는 세계의 현대미술 ③·끝 루이즈 부르주아와 페미니즘 미술

이규현

[문화] 한국에서 만나는 세계의 현대미술 ③·끝 루이즈 부르주아와 페미니즘 미술

거미·동굴·칼… 내면의 상처를 고발한다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 때문에 서울 한남동에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보안 분위기도 삼엄하다. 언론사 로고가 새겨진 차를 타고 가서 리움 현관 앞에 내리자 경비요원들이 달려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다짜고짜 묻는다. 삼성그룹 일가가 비자금으로 미술품을 샀느냐 안 샀느냐 하는 문제로 리움까지 요즘 세인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현대미술관이다.



▲ )루이즈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 가 삼성미술관 리움 주차장 옥상에 놓여 있다. photo 삼성미술관 리움 제 해외에서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이 미술관 소장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주차장 옥상에 있는 대형 거미 조각 두 점일 것이다. 미국 여성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97)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약 9m 높이의 큰 조각은 ‘엄마(Maman·1999년작)’, 3m 높이의 작은 조각은 ‘거미(Spider·1996년작)’라 제목 붙여졌는데, 보통 둘 다 ‘거미’로 불린다. 주차장 옥상이 미술관 입구와 거의 같은 높이라서 미술관 입장료를 낼 필요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거미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단골소재다. 외형은 끔찍하고 징그럽지만 내면은 상처 받기 쉬운 이중성을 품은 생명체로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의 거미 조각은 여성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작가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미국의 부르주아 재단,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일본의 모리아트센터, 캐나다 국립미술관 등 세계적 미술관들이 이 거미 조각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리움에 두 개, 그리고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에도 높이 3m짜리가 하나 있다.



▲ ‘엄마(Maman·1999년작)’가 삼성미술관 리움 주차장 옥상에 놓여 있다. photo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루이즈 부르주아는 프랑스 태생이지만, 1938년에 미국인 미술사학자와 결혼한 뒤 줄곧 미국에서 살아와 이젠 미국작가다. 1982년에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회고전을 했고,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뉴욕에 거주하면서 97세에도 여전히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 현역작가를 위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올해 6~9월 그의 회고전을 연다. 그가 얼마나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중요한 작가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시장의 반응도 뜨겁다. 2006년 11월 뉴욕 크리스티에서 높이 2m 정도의 거미 조각이 360만달러(약 36억원)에 낙찰됐으니, 리움과 신세계백화점에 있는 거미가 지금 얼마나 비쌀지도 짐작할 수 있다.

거대한 거미의 겉모습은 징그럽고 무섭기까지 하지만 길고 가는 거미의 다리는 아슬아슬하다. 상처 받기 쉬운 연약한 존재로서 자신의 모습을 이런 모양으로 표현했다. 거미는 조각뿐 아니라 드로잉, 판화 등 루이즈 부르주아 이전 작품에서도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미국 ‘페미니즘 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분류된다. ‘페미니즘 미술’은 미국에서 1970년대에 부쩍 고개를 들었다. 페미니즘 미술이 나타난 것은 이념, 정체성, 정치·사회적 주제가 다시 미술의 요소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이 압도적 인기를 끌었다.

이 두 미술 경향의 공통점은 작가의 개성과 내면세계를 애써 숨긴 것이었다. 앤디 워홀 같은 팝아티스트들은 이미 있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이용해 작가가 작품에서 손을 뗀 척했다. 도널드 저드 같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모양과 색깔을 최소화한 간결한 조각을 통해 “되도록 보여주지 말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미술이 지닌 무심함을 싫어한 작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다시 작품을 통해 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사회에 발언하고 싶어했다. 페미니즘 미술은 그런 흐름 속에 있었다.



▲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밀실’, ‘집=여자’ photo 조선일보 DB 루이즈 부르주아는 여성으로서 괴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 때문에 남성에 대한 혐오감을 가졌다. 페미니즘 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가정교사와 10년 동안 불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고 병으로 일찍 죽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끔찍하게도 어린 소녀인 부르주아에게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감시하도록 시켰다. 부르주아는 70세가 넘은 1982년에 이런 가정사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끔찍했다.

그건 아동학대였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받은 깊은 상처는 부르주아가 평생 해온 괴기스러운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는 드로잉이나 평면회화도 했지만, 조각과 설치작품으로 특히 유명하다. 팝아트 작가나 미니멀 작가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내면을 숨기지 않고 작품에서 드러낸다. 여성 작가로서 ‘손맛’도 강조한다. 특히 ‘동굴’ ‘밀실’ 등 감옥처럼 닫혀 있는 집 모양을 소재로 한 설치작품을 많이 했다. 집 현관 문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식으로 표현했다. 집이 여성에게 얼마나 억압과 갈등의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줬으니, 주제의식이 강한 페미니즘 작가였다.

신체, 성(性),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등은 부르주아가 즐긴 주제였다. 감옥처럼 높은 울타리를 친 우리(cage) 안을 관객이 들여다보게 해 관음증을 유발하는 설치물, 남성의 성기모양 조각이 철사고리에 꽁꽁 묶여 매달려 있는 조각, 여성의 누드 모양을 한 칼 등이 그의 유명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 부르주아는 그가 받은 상처, 아버지에 대한 증오, 여성의 괴로움을 표현했다.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페미니스트였기에 부르주아의 작품은 성적 이미지를 암시한 것이 많다.

하지만 ‘거미’에서 볼 수 있듯 주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결과적으로 나타난 모양은 즐겁고 유머러스하다. 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부드러운 곡선미가 있어서 에로틱하다. 작품의 재료는 청동, 나무, 대리석, 천, 고무 등을 써서 작가의 손재주를 보여줬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 작가의 손맛, 그러면서도 그로테스크하고 강한 주제의식을 담은 미술 경향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작가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루이즈 부르주아는 현대미술의 대가로 평가 받는다.


/ 이규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kyuh@chosun.com

- 주간조선 20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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