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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 이제 문화예술도 복지다

전해웅

중학생 시절, 데이트 하는 누나를 따라 난생 처음 양식당에 갔다. 고급스런 분위기에 으쓱하면서도 낯선 포크와 나이프를 잘못 사용해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음식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쭈뼛쭈뼛했던 기억이 잊히질 않는다. 우리 세대들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리라. 과거 예술은 우리에게 양식당처럼 사치품이었다. 없다고 큰 불만은 없었고 때로는 없이도 살 수 있는 상황이 더 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공연 티켓 가격이 40만원을 하든 100만원을 하든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30년 전에 선언

하지만 이제 양식당과 포도주는 사람들에게 일상이 됐고 예술도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필수품이 됐다. 사람들은 수입상의 폭리로 다이아몬드 가격이 오르는 데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포도주 수입상의 폭리로 포도주 가격이 유럽 가격의 2~3배라는 뉴스를 접하고는 분개한다. 납득할 만한 기준 없는 티켓 가격, VVIP석과 P(프레지던트)석 등 끝없이 높아지는 좌석 등급 등 공연 티켓 가격의 불합리한 관행은 오래 된 일이지만 요즘 새삼스럽게 주목 받는 것을 보며 이제 공연이 많은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목록에 자리 잡았음을 실감한다.

문화예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치품이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시기를 거쳐 한때 갑자기 경제적 가치가 각광받던 시기도 있었다. 영화 '쥬라기 공원'한 편의 경제적 효과가 현대자동차가 몇 만대를 수출한 금액을 넘어선다고 한다. 문화의 산업적 가치를 강조하는 패러다임은 문화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나름대로 성공했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는 문화의 여러 가치 중 하나일 뿐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술의 가치를 경제적 효과로만 따진다면 당장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예술에 대한 대접으로는 너무 야박하다.

필자는 오늘날 예술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삶에 행복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수준은 높아진 반면 정서적ㆍ정신적으로는 더 팍팍해지고 피폐해지기 쉬운 오늘날 예술이 삶에 주는 행복감에 주목해야 한다. 예술의 이러한 효용은 예술을 통한 복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직결된다.

필자는 지난 1980년대 초 프랑스 정부가 문화예술 향유를 국민 복지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우리 국민은 빈부에 관계없이 문화예술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것을 보고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했었다. 당시는 복지라면 극빈층에 대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정도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도 문화복지라는 말이 절실한 시대가 됐다. 문화예술이 삶의 필수품이 된 시대, 모든 국민이 문화예술에 접근할 권리를 가져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예술의 가장 큰 가치는 행복감

필자에게는 요즘 예술의전당 방문객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방문객은 해가 다르게 늘고 있다. 공연ㆍ전시장뿐 아니라 야외 광장과 카페ㆍ식당 등 늘어난 서비스 공간을 찾은 방문객들의 표정에서 느긋하고 편안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꼭 공연ㆍ전시를 보지 않아도 음악분수 앞 광장에서 공연장과 미술관 그리고 그 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주는 예술적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예술의 소비는 배타적이지 않으며 외부 효과가 있다는 문화경제학의 주장이 아무런 이론적 설명 없이도 피부에 와닿는다. 예술을 통한 행복은 전염성이 있고 생각보다 비용이 크게 들지도 않는다. 이제 문화예술을 통한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서울경제 2012.7.21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207/e20120720174639489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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