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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엄덕문의 세종문화회관

서울 세종로 ‘랜드마크’인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건립 이래 시민들의 약속 장소이자 문화공간이다. 늘 북적이지만 지상 6층 회관은 늘 외롭다. 경복궁과 정부청사, 교보와 케이티 사옥 등 관공서, 상업빌딩 등이 뒤섞인 도로축선에 붙어서, 이순신·세종상이 놓인 광화문광장을 바라보면서 홀로 기품을 지키며 사람들을 받아안는다. 장대한 기단과 강당의 배흘림기둥, 열린 계단 마당으로 꾸려진 얼개의 단아함이 우리 눈을 감싸 안는다.

박정희 정권과 수싸움을 벌여 이 회관의 정체성을 지킨 한 건축가가 1일 세상을 떠났다. 93살로 타계한 그의 이름은 엄덕문. 1919년 태어난 한국 건축가 1세대인 그는 세종문화회관과 1962년 완공된 국내 첫 대단위 단지인 마포아파트 설계자로 기억된다.

애초 박정희 정권은 1972년 불탄 시민회관 터에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 만수대 극장에 필적하는 기념비적 건물을 짓고 싶어했다. 설계자 엄덕문에게 청와대는 5000명 들어갈 대회의실 등을 갖춘 기와 건물을 요구했지만 그는 “그건 평양의 특징일 뿐”이라고 거절했다. “기와 씌우지 않고도 전통을 살릴 수 있다”고 고집한 그는 대강당, 소강당을 안채·사랑채처럼 ㄷ자형으로 갈라 세우고 사이에 회랑과 안마당을 차린 전통 공간을 빚어냈다. 전무후무한 건축가-청와대 담판 끝에 한국 건축은 기와집 덩치만 부풀린 관제 건축의 악령에서 그렇게 벗어났다.


쇠고기 협상 반대 시위대가 세종로의 ‘명박산성’과 대치하던 2008년 5월31일 밤, 세종문화회관에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혁명’>을 연주했다. 4악장 피날레의 전율을 품고 회관 계단과 회랑을 서성대며 시위 함성을 들었던 그날 밤, 감흥의 공간을 베풀어준 ‘건축장이’의 이름을 지금 힘주어 적는다.

 

-한겨레신문 2012.7.3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06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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