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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고려 사람 청자 보듯 주변의 보물을 모르고 지나치는 우리

노재현


‘컴퓨터’와 ‘박물관’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러나 김권태(44) 대한컴퓨터박물관협회 회장은 달리 생각한다. 1980년대 초 삼성·금성·대우가 만든 8비트짜리 컴퓨터들이 골동품 아니면 뭐냐고 되묻는다. 세월이 흐르면 어엿한 문화재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본다. 맞는 말이다. 제품 사이클이 빨라서 10년만 지나도 레트로(retro) 또는 빈티지(vintage) 컴퓨터 대접을 받는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수집 붐이 인 지 꽤 됐다.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김 회장은 5년 전부터 취미로 컴퓨터 수집에 나섰다. 지인들과 함께 약 200종, 총 450여 점을 모았다. 가장 아끼는 것은 애플 초기 모델인 애플Ⅱ 오리지널 두 점. 전자상거래 사이트 이베이에 1년에 10점도 채 올라오지 않는 귀하신 몸이다. 애플Ⅱ 이전의 첫 모델 애플Ⅰ은 전 세계에 50여 대밖에 없고, 가동되는 것은 6대뿐이다. 그중 하나가 1주일 전 소더비 경매에 나와 37만4000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팔렸다. 김 회장은 10월쯤 수집품을 갈무리해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450여 점 중 80%는 지금도 작동한다. 오프라인 박물관도 구상하고 있지만 여건상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만약 김권태씨가 컴퓨터박물관을 세운다면 현재 262개인 국내 사립박물관에 새 식구가 생기는 셈이다. 기존 사립박물관들도 짚풀·장신구·부채·옹기·탈·열쇠·등잔·김치·술·거미·떡·닭·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전문 분야를 자랑한다. 대부분 개인이 평생을 바쳐 수집한 소장품들이다. 그러나 유물 보존·전시, 문화 체험·전수, 학생교육 등 수많은 공익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사립박물관들은 운영난에 허덕인다. 국립박물관 무료입장 제도가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박물관 발전 기본구상’이라는 종합대책을 내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문화부의 대책 중 ‘사립박물관 비영리법인화 지원’ 대목에 특히 주목한다. 박물관 1세대 운영자들이 대부분 고령화된 시점이다. 재산권을 포기하고 비영리화 결단을 내린 분들에게는 공익에 기여한 만큼 혜택을 부여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러니 주변 물건들을 잘 살펴보시라. 장래의 박물관감이 많을 것이다. 어린 시절 놀잇감이던 딱지·구슬은 이미 근현대 골동품 반열에 올랐다. 고려청자·조선백자가 지금처럼 극진히 대접받을 줄 고려·조선 사람들이 짐작이나 했겠는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미래의 고려청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물건만 그럴까. 사람은 물건보다 훨씬 귀하다. 곰곰 생각해보면 내가 미워하고 탓하는 사람도 실은 엄청난 우연과 인연 덕분에 동시대를 살게 된 이다. 그의 이런 ‘귀중함’에 눈길을 돌리면 미움도 한결 가실 것이다.

- 중앙일보 2012.6.22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6/22/8165275.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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