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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문화부, 유행어 발표하듯… 의욕만 앞선 행정용어 순화

김기철


가건물→임시건물, 대합실→맞이방, 가이드라인→지침.

문화관광부는 19일 어려운 행정용어 874개를 이해하기 쉽고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단어로 바꾸겠다며 새롭게 확정된 행정용어 순화어를 발표했다. 이 순화어를 행정안전부에서 운영 중인 전자문서 결재시스템인 온-나라에 싣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해 활용도를 높이겠다고도 했다. 정부 행정 부처에선 앞으로 어려운 행정용어 대신 쉽게 만든 이 순화어를 쓰겠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국어기본법에 따라 구성된 국어심의회에서 처음으로 행정용어 순화어를 심의·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식 용어나 알쏭달쏭한 한자어, 영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쓰겠다는 문화부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언어의 사회성과 오랜 관습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의욕만 넘치는 순화어 여럿이 눈에 띈다. 내비게이션→길도우미는 그렇다 치자. 랜드마크→마루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누리소통망, 유비쿼터스→두루누리 같은 단어가 언중(言衆) 사이에 정착될 수 있을까.

문화부가 같은 날 내놓은 다른 보도자료는 역설적으로 행정용어 순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한다.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 6건 가운데 행정용어 순화건을 제외한 5건 모두에 문화부가 순화해서 쓰겠다고 발표한 용어가 그대로 실렸다. 젊은 건축가상을 발표하면서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거쳐서 선정했다고 쓰거나, 2012 글로벌 문화기술 포럼 개최를 소개하면서 네트워킹의 장으로 마련된다고 표현한 것이 그렇다. 문화부의 행정순화용어에 따르면, 프레젠테이션은 시청각 설명, 네트워킹은 연결망, 또는 관계망으로 바꿔써야 한다.

중국 최대 방송 마켓서 1000만달러 수출 계약을 올렸다는 또 다른 자료도, 마켓은 시장으로 상하이 TV페스티벌은 TV 축제로 바꿔야 한다. 우리 말에 침투해 들어온 영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무래도 부족해보인다. 문화관광부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할 행정용어를 개그맨이 방송에서 유행어 를 유통하듯 후다닥 발표하는 게 정부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 번 생각해봤을까. 공자는 논어에서 치국(治國)의 도를 묻는 제자 자공(子貢)에게 이렇게 답했다. 군비(軍備)와 식량은 포기하더라도, 백성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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