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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정약용 탄생 250년

박해현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전남 강진에 유배돼 처음 4년을 동문 밖 주막집 단칸방에 머물렀다. 주막집 할머니가 어느 날 다산에게 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은혜는 똑같은데 아버지 혈통만 따르는 것이 옳은가요?' 다산은 '아버지가 탄생의 근본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그 베풂이 지극히 미미한 것이지만, 부드러운 흙의 자양분으로 길러내는 땅의 은공은 대단히 큽니다.' 흠칫 놀란 다산은 흑산도에 귀양 가 있던 형 정약전에게 편지를 보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진리가 밥 파는 노파에게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산은 늙은 주모의 말도 존중한 선비였다. 그는 주막집 단칸방을 '사의재(四宜齋)'라 이름 짓고 네 가지 원칙을 정했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과묵하게, 행동은 중후하게 하자'는 다짐이었다. '사의재'가 있던 주막은 2007년 강진군이 복원해 다산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다산은 주막집에서 나와 암자와 제자 집을 거친 뒤 만덕산 기슭에 초당(草堂)을 마련해 11년 동안 살았다. 올해 다산 탄생 250년을 맞아 다산 초당을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다산 초당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을 지나면 막바지에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뿌리의 길'이 나온다. 소나무 뿌리가 땅을 뚫고 튀어나와 몸을 비틀고 있는 숲길이다. 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초당을 코앞에 두곤 절로 조심조심 걷게 된다. 시인 정호승은 이 길을 걸은 뒤 '다산이 초당에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고 다산 사상의 방대함을 노래했다.

▶다산은 부인이 초당으로 보낸 치마폭에 시를 쓰고 매화와 새를 그려 시집가는 외동딸에게 전했다. 혼례를 지켜보지 못하는 아비가 눈물을 삼키며 '꽃도 이제 피었으니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라며 보낸 선물이었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도 자주 편지를 띄웠다.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남긴다'며 게으름과 낭비를 삼가라고 했다.

▶다산이 초당에서 쓴 명저가 '목민심서'다. '관리가 지방에 부임할 때 책수레만 갖고 갔다가, 돌아올 때 토산물을 가득 싣지 않고 책수레만 갖고 온다면 맑은 바람이 길에 가득하지 않겠느냐.' 다산 탄생 250년을 기리는 세미나·음악제·전시회가 올해 내내 줄을 잇는다. 한 권으로 압축한 우리말 목민심서를 비롯해 얇은 산문집, 서간집, 시집이 숱하게 나와 있다. 그중에 한 권 들고 다산 초당 가는 길에 오르는 사람들 마음속엔 맑은 바람이 가득하리라.

 

-조선일보 20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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