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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조선의 반 고흐’

김관용


평생 그림을 그리며 객지를 떠돌았던 조선시대 화가 최북(崔北 1712∼1786). 중인 신분이었음에도 돈과 명예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가의 자존을 지켰던 화가다. 특히 술을 각별히 사랑해 하루에 대여섯 되는 마셨다고 한다. 아침에 그림 한 점 그려 끼니를 해결하고, 저녁에 그림 한 점 팔아 술을 마시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부산에서 평양까지, 중국에서 일본까지 주유하며 길 위의 화가로 살았다. 금강산 구룡연에서는 술에 취해 연못에 뛰어들었다가 가까스로 살아났고,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자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 외눈박이로 살았다. 그에게 따라 붙은 별칭도 많다. ‘北’자를 세로로 나누어 ‘칠칠’이라 했고, 붓 하나로만 먹고사는 사람이라 하여 ‘호생관(毫生館)’이라 했다. 혈육 한 점 남기지 않고 눈밭에서 객사했다.

칠칠 선생보다 늦게 태어난 유럽의 고흐라는 사나이는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 우리 칠칠 선생은 고흐와 생전의 광기와 저평가는 비슷한데, 불행하게도 고흐와는 달리 사후에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편이다. 그의 그림을 좋아했던 영조대의 문인 신광하는 ‘최북가’에서 “묻노니 북망산 흙속에 만골(萬骨)이 묻혔건만/ 어찌하여 최북은 삼장설(三丈雪)에 묻혔단 말인가/ 오호라! 최북은 몸은 비록 얼어 죽었어도/ 그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안타까워했다.

최북 탄생 300주년을 맞아, 그의 사후 처음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그림들을 한자리에 모아 조명하는 전시회가 지금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기인을 넘어서서 시서화 삼절에 능했던 지식인 화가 최북의 역량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다. 그가 주로 그렸던 산수화나 세필로 정교하게 묘사한 꿩과 메추라기와 토끼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그는 특히 눈 시린 설경을 자주 그렸다. 바람 불고 눈 쌓인 산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외로움이 사무치는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이 이번 전시에 나오지 않은 건 안타깝다.

사람들은 겸재나 단원과 비교하면 최북의 대표작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술을 너무 좋아해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술이 없었다면 호방한 예술혼이 작동이라도 했을까. 풍설 속에 스러진 칠칠 선생 영전에 술 한 잔 올린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세계일보 2012.6.7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120606021528&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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