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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광장] 화랑가의 두 풍경

편완식

#.1 대부분의 화랑 전시장들은 매주 화요일이면 분주하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떼가는 작가와 새로이 작품을 거는 작가들이 엉켜 바삐 움직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시작하는 작가의 설렘과 전시를 마친 작가의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전시가 개막되는 수요일엔 축하 뒤풀이가 화랑 인근 식당과 주점에서 밤늦도록 이어지지만 화요일 저녁엔 전시를 마친 작가들이 작품을 작업실로 실어 보내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일쑤다. 그런 마음을 헤아려주는 지인들이 자리를 함께 해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편완식 문화부 선임기자
화요일 저녁 화랑가 주점 풍경이 그래서 특별하다. 수요일 밤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무겁다. 서너 명이 모인 자리에서 유독 술병을 놓지 않고 폭음하는 남자가 있다면 십중팔구 전시를 끝낸 작가다. 여성 작가들은 대부분 구석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흐느낀다.

사람들은 전시가 좋았다고 입으로 말들은 하지만 얼굴 표정만큼은 속이지 못한다. 예민한 작가들이 그것을 못 알아차릴 리 없다. 사실 어느 작가치고 자신의 전시에 만족하는 이가 있을까. 늘 발가벗어 보지만 부족함의 허기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작가의 길이다.

요즘 들어 그림이 그저 좋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 작가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최근 한 여성조각가의 전시장에서 이색 풍경이 연출됐다. 지방에서 일부러 올라 온 40대 여성 관람자가 한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그녀는 “저의 아픈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는 것 같다”며 작가의 손을 꼭 잡았다. 실은 작가도 그런 아픔이 있었다. 소통으로 치유가 되는 순간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타인을 위무하는 무당이라 하지 않았던가. 예전에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굿판을 떠올려 보게 된다. 서민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무당들은 원통하게 죽은 이들까지 달래는 해원굿까지 펼쳤다. 마음에 상처가 컸던 이들의 이름까지 거명하며 한맺힌 사연들을 엮어나가는 대목에 이르면 굿판에 모인 이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야말로 해원이다. 굿이 치유의 기능을 한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이기도 하다.

#.2 20년 가까이 자신의 건물에서 화랑을 운영한 50대 화랑주가 지난주 몇몇 중견작가들과 인사동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가끔씩 만나 서로의 안부도 묻고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작가와 더불어 미술계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 화랑주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자리다. 하지만 이날 분위기는 심각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화랑주가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지금 같아선 화랑을 접고 다른 업종에 임대를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 놓았다. 문화사업을 한다는 자부심에서 그동안 버텼지만 힘이 부친다는 하소연이다. 아내 등 가족들로부터의 압력도 만만치 않아 마냥 그대로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라고 했다.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 기회를 주고, 작품 유통의 중심에 서 있는 화랑주의 절박함이었다.

사실 미술시장의 호황기를 거치면서 화랑의 유통환경은 오히려 악화됐다. 많은 컬렉터들이 돈이 되는 작가들의 작업실로 돈을 싸들고 가 작품을 구입했다. 화랑의 유통마진을 아끼자는 생각에서였다. 심지어 전시 중인 작가들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해 화랑을 제치고 거래하기도 했다.

유통질서 붕괴의 후유증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직거래를 했던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끝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거래 자체가 실종된 일도 흔하다. 미술시장이 나빠지자 직거래했던 컬렉터들이 작품을 일시에 마구 내던져서 벌어진 양상이다. 고육지책으로 일부 작가는 가격관리를 위해 인사동 등에 헐값으로 나도는 작품들을 사들이는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간혹 대형 갤러리들이 유명작가 전시회를 열기 전에 작품값을 올리기 위해 시중 작품을 거둬들이는 상황과는 다르다.

화랑에서 작품을 구입하면 아무리 시장이 안 좋아도 일정 금액에 되사주는 서비스를 받게 된다. 작품가격이 관리가 된다는 얘기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화랑에선 수작을 골라서 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미술품경매사가 생기면서 많은 컬렉터들이 화랑으로의 발걸음을 줄였다. 화랑들은 이래저래 사면초가다. 궁여지책으로 화랑들이 보따리장수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면서도 아트페어를 쫓아다니는 이유다. 화랑주들은 미술관이나 경매사들만이라도 화랑에서 작품을 구입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작가들의 등용문인 화랑이 살아야 한국 미술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세계일보 2012.05.25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120524022743&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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