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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림박물관 30년展

이정환

“정병(淨甁) 60만원은 너무 비싸군요. 홍두영 사장이 산 것도 정병이었는데 매우 세련된 작품이었고 값은 20만원이었습니다. 이 물건은 애써 구하실 대상은 아닌 듯하고 시세 외의 값입니다.” 당대 최고의 문화재 감식안으로 통했던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1916~1984)이 1972년 7월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1974년 4월엔 신라 토기에 대해 묻자 “어디서 한 번 본 일이 있습니다. 물건은 괜찮은데 너무 상태가 나쁘고 값이 너무 합니다”고 조언했다.

두 사람이 교류를 시작한 건 1960년대 말부터다.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 진홍섭 전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고미술잡지를 준비하던 최 관장이 자수성가한 동향(개성) 출신 사업가 윤 이사장에게 후원을 청한 게 계기였다. 이후 윤 이사장은 고향 선배들의 도움으로 식견을 키워가며 유물들을 하나씩 사모았다. 최 관장은 조언과 감정에 대한 사례를 하려 해도 늘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가짜 많고 바가지 잘 씌우기로 유명한 고미술계에선 보기 드문 인연이다.

이렇게 수집한 유물을 바탕으로 1981년 성보문화재단이 설립됐고 이듬해 서울 관악구 미성동에 호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2009년엔 강남구 신사동에 신사분관도 들어섰다.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호림박물관에는 국보 8점과 보물 46점을 비롯해 1만5000여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간송미술관과 함께 국내 3대 사립미술관으로 꼽힌다. 특히 토기와 도자기는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정상급 컬렉션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려시대 사경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211호), 삼국시대 금동탄생불(보물 808호) 등 전적·금속공예 유물 중에도 명품이 적지 않다.

보성전문을 나와 농약사업으로 기반을 다진 윤 이사장은 신용을 중시하고 빚지기 싫어하는 송상(松商)의 전형이다. 사업을 금융업으로 확장해 한때 ‘현금왕’으로 불릴 만큼 거부가 됐는데도 근검절약하는 생활습관은 여전했다. 허름한 백반집이나 나무계단 삐걱대는 중국집을 즐겨 찾고, 휴지 한장도 허투루 쓰지 않았지만 고미술에는 돈과 정성을 아낌없이 쏟았다.

호림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전이 신사분관에서 열리고 있다. 3000여점의 토기 중에 기원전후부터 통일신라 때까지 만들어진 걸작 200여점을 골라 내놨다. 배 짚신 오리 말 기마인물형 토기 등 형태와 질감이 다채롭다. 말 많고 탈 많던 선거도 끝났으니 옛 토기의 질박한 아름다움을 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게 어떨지.

<-한국경제 2012.4.12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41186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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