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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짜맞추는 재능

임근준

[내일의 미술가들]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
위 사진은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 아래사진은 김영나의 2011년작‘테이프 포스터: 확대 연작 3’ 디자인이란 말에는 자주 '창조성'이란 말이 붙는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실감 나는 요즘, 다른 길을 택한 이들이 있다. 기성의 조형 요소를 그러모으고, 수집한 아이템을 재배치하고 재구성하는 연구 과정을 통해 뭔가 살짝 이상한 디자인을 만드는 것.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33)는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스티커와 인쇄물 가운데 사선의 줄무늬를 담은 것만 골라 모은다. 짬이 나면 그렇게 모은 자료를 요리조리 짜 맞춰 재구성한다. 이 연습 프로젝트의 제목은 '발견된 구성'. '평범한 일상 곳곳에 존재하지만 눈에 잘 띄지는 않았던 어떤 시각 질서를 찾아내 가시화해냈다'는 뜻이 되겠다.

그의 '확대' 연작은 수집한 그래픽 요소를 확대해 스티커 재질의 포스터를 만든 것.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래픽 오브젝트를 형태와 기능 관점에서 변환하는' 것이 목표다. 검정·빨강·보라의 사선 줄무늬가 인용된 포스터에서 절취선을 따라 한 줄 떼어내면, 경고의 의미를 띠는 라인 테이프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대다수 그래픽 디자이너가 시각적 충격이나 감동을 선사하려 용쓰는 것에 비하면, 이는 썰렁한 농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영나도 감동적(?)인 포스터를 만들긴 한다.

'기억의 선언 03'은, '만'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조각가 만프레트 그내딩어의 탄생과 죽음을 알리는 비정상적 시제(時制)의 포스터다. '자연의 순환에 의탁한 삶을 살았던' 만은, 2002년 11월 17일 발생한 스페인 유조선 프레스티지호의 원유 유출 사고로 환경친화적 생존 시스템이 오염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내딩어는 12월 28일 세상을 떴지만, 포스터가 제시하는 사망일은 11월 17일이다.

김영나는 작품을 전시에서 소개하는 법도 남다르다. 잘 디자인된 인쇄물을 책상에 늘어놓는 일반적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 그가 찾은 탈출구는 동료와 협업하는 것이다. 사진가 아누 바트라와 함께 제작한 '단체 초상'은 사진가의 스튜디오에 2006년 이래의 주요 그래픽 작업 21종을 교묘히 배치하고 촬영한 결과다.

김영나는 상업적 디자인 활동과 독립적 실험 창작을 병행하는 가운데 계간지 '그래픽'의 아트디렉터 겸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KAIST에서 제품디자인을, 홍익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네덜란드 타이포그래피공방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조만간 활동 거점을 서울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세대 격변의 시대, 근미래의 대한민국에서 낯익은 듯 낯선 그래픽 디자인 문법을 마주치게 된다면, 한 번쯤 작자를 확인해봐도 좋겠다.

-조선일보 2012.2.2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20/20120220030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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