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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왕조실록 영역(英譯)

김태익

미국인 사이덴스티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을 영어로 번역해 1968년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게 한 일본문학 번역가다. 나름 일본 문화의 최고 해석자라고 자부한 그는 1975년 심혈을 기울여 일본 고대소설 '겐지 이야기'를 번역·출간했다. 그러나 미국 어느 신문에 실린 영어판 '겐지 이야기' 서평을 보고 기절초풍했다.

▶'카사노바, 돈 후안, 휴 헤프너의 플레이보이를 능가하는 판타지.' 그 신문은 일본 헤이안(平安)시대 주인공의 사랑과 인생을 그린 대(大)로망을 흥미 위주 연애소설로 취급한 것이다. 사이덴스티커는 '다행히 대부분 언론이 '문학적 효과를 살리면서 충실한 번역을 했다'고 평가해 체면은 섰다'고 했다. 이처럼 고전을 외국어로 번역하기란 현대물 번역에 비해 몇 곱절 힘이 든다.


▶호남대 최병현 교수는 유성룡 '징비록'과 정약용 '목민심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17년 만에 끝내고 말했다. '물이 없는 곳에서 헤엄치고, 없는 적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기꺼이 떠맡으려는 노력이 있기에 고전은 한 나라의 지혜를 넘어 인류의 보배가 된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영어로 완역한 전남대 김달용 교수는 '전 세계 신화를 소개한 프레이저의 인류학 명저 '황금가지'에 한국 신화가 빠진 것은 '삼국유사' 같은 고전이 영어로 번역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왕조실록을 2033년까지 영어로 완역하겠다고 나섰다. 4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조선시대 25대 임금, 5300만자의 역사를 번역하는 작업이다. 조선왕조실록 영역(英譯)은 우리가 갖고 있는 지적(知的) 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일본 교토대가 중국근세사 연구의 중심이 됐던 것은 미야자키 교수의 지도 아래 40년 넘게 진행된 사료 독회(讀會) 덕이 컸다. 미야자키와 제자들은 청나라 옹정제와 중앙·지방 관료들이 주고받은 편지 '주비유지(�{批諭旨)' 18질 112책을 읽는 독회를 1949년부터 한 주도 빠짐없이 진행했다. 제자 중에 누군가 '이렇게 지루한 일을 오래 반복할 필요가 있나. 빨리 끝내자'고 투정을 부리자 교수는 이렇게 타일렀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해나가는 일, 그게 바로 학문일세.' 지금 국사편찬위에 필요한 게 이런 자세일 것이다.

-조선일보 2012.1.1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09/20120109029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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