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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임응식과 ‘求職男’

손수호

깃발에 젊은 남녀의 흑백사진이 담겨있다. ‘구직남’과 ‘핫팬츠녀’다. 나부끼는 깃발은 덕수궁 미술관으로 향한다. ‘한국사진계의 대부’ 임응식(1912∼2001)전이 열리는 곳이다. 지난해 12월 21일 시작해 올 2월 12일까지 이어지니, 선생의 10주기이자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다. 제목은 ‘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

‘구직남’은 임응식의 대표작이다. 1953년 서울 미도파백화점 앞에서 촬영됐다. 남루한 옷차림에 ‘求職’ 팻말을 허리에 두른 모습에서 시대의 아픔이 배어난다. 주인공은 누구일까. ‘求職’ 글씨의 솜씨가 보통 아닌데다 벙거지 속에 언뜻 비치는 얼굴 윤곽선이 단정하다. 짐작건대 교육 받은 엘리트 청년이 전쟁 직후의 가혹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이 작품은 기록사진의 백미이자 임응식 사진세계의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전까지 유행한 ‘살롱사진’과 결별하는 동시에 리얼리즘 사진의 등장을 알린 것이다. 인간과 사회 문제에 눈뜬 작가는 일자리 없는 시대의 불행을 한 장의 사진으로 웅변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핫팬츠녀’는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풍속의 변모를 보여준다. 배경은 1971년 명동. 한복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인이 앞서가고 핫팬츠 여성이 뒤따르는 장면이다. 굽 높은 샌들에 허벅지까지 드러내는 의상은 당시로서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임응식의 명동 사진에는 판탈롱과 미니스커트 등 시대별 패션이 펼쳐진다.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임응식의 사진인생은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른다. 1934년 일본 잡지 ‘사진살롱’에 ‘초자(硝子)의 정물’을 발표한 이후 타계하기까지 ‘사단(寫壇)의 선구자’로 살았다. 한국전쟁이 남긴 폐허, 문화유산과 예술가의 초상, 도시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길이 닿지 않은 영역이 없었다.

더욱이 그는 사진이 기술로 핍박받던 시절에 외로이 작업을 했다. 그의 얼굴을 찍은 주명덕 작가는 이렇게 술회했다.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는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진가도 고뇌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얼굴을 찍을 때) 눈을 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공로에 힘입어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진가로는 드물게 작품 420점을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데, 발랄한 핫팬츠 여성보다 일자리를 기다리는 청년의 모습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어른거렸다. ‘청년실업’이라는 시대의 초상과 겹치기 때문이리라.

- 국민일보 2012.1.3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005703214&code=11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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