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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화가 오지호의 漢文사랑

김인숙(김테레사)

미국 서부의 애리조나와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주에 걸쳐 ‘나바호 네이션’이라는 인디언 자치구역이 있다. 나바호족이 자신들의 법과 질서로 운영하는 ‘나라 안의 나라’다. 인디언 자치지구가 많지만 여기처럼 뚜렷하게 문화적 특색을 보전하는 곳은 없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 이곳을 지나가는 국도를 제외하고는 도로에 아스팔트도 깔 수 없다. 도로 포장이 지형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다.

이곳에는 유전개발을 위한 석유회사가 두 개 있고, 자신들만의 발전소, 수도국, 위생국이 있다.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여 사회 전체가 교구처럼 조직돼 있으며 교회의 하얀 첨탑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술과 담배가 금지돼 음식점에서도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맥주와 포도주만 내놓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온전하게 보전해 나바호 말로 TV방송을 하고 신문을 만든다. 알파벳으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해 언어사전에도 올려 놓았다. 2차 대전 중에 미합중국의 일원으로 참여했을 때 통신부대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무선통신으로도 기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바호 문화를 길게 설명한 것은 한문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우리도 1960∼70년대에 한문폐지 운동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었다. 한문이 우리 역사의 일부라는 생각에서다. 그 주역 가운데 한 분이 화가 오지호 선생님이다. 1970년대 초에 사진가 임응식 선생님과 함께 오 선생님을 찾은 적이 있다. 나중에 ‘목우회’라는 화가단체의 사무실이 된 종로2가의 허름한 2층 화실이었다.

화필을 잡은 선생님을 상상하며 들어서니 이젤에는 15호 정도의 그리다 만 바다 풍경의 캔버스만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오 선생님은 정장 차림에 심각한 표정으로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문폐지 반대운동을 한창 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문이 귀찮던 참에 선생님께 물었다. “한문 없어지면 참 편하겠는데, 그거 왜 안 되나요?” 그가 답했다. “너, 미국 갈 때 비행기 대신 날틀 타고 가련?”

그는 “우리 5000년 역사가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글을 폐지하고 한글 전용을 하면 우리 전통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열성스럽게 설명하시는 것이었다. 나바호를 제외한 다른 인디언 부족의 잃어버린 문화처럼 말이다. 오 선생은 이후 많은 글과 활동을 통해 우리 문화에서 한문이 지닌 가치를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나도 오 선생님 덕분에 한문을 즐기게 됐고, 특히 한시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지난여름, 우면산에 사태가 났을 때 위응물(韋應物)의 당시(唐詩)를 읽으며 안타까움을 달래기도 했다. “水性自云靜 石中本無聲 如何兩相激 雷轉空山驚(물의 본성은 고요하고, 돌에는 본디 소리가 없는데, 어찌하여 둘이 부딪치면 온 산에 우레같은 소리를 내는가)” 한글을 사랑하되 한문을 배척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국민일보 2011.10.12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442088&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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