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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예술대학 죽이기

박형찬

지난달 2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구조조정 대상 대학’을 발표했다. 구조조정 대상 대학이란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학자금 대출에서 제한을 받는 대학을 뜻한다. 이는 대학경영에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총 43개 사립대학이 선정됐는데 추계예술대, 상명대, 목원대, 부산예술대 등과 같이 대부분의 학과가 예술전공인 대학들도 포함됐다.

교과부의 발표가 있은 직후 해당 대학들은 정부에 즉각 이의를 제기했고, 총장을 비롯해 전 보직자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추계예대는 전체 교수가 교수직을 사임한다는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다. “여러분을 부실대학생으로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정부의 지원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워온 여러분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교수들 모두 깊이 통감합니다. 예술교육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잣대로 예술가와 예술대학을 모욕하고 폄하하는 모든 반예술적인 이 상황에 선생으로서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취업률 때문에 부당하게 평가받는 이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우리 교수들도 모두 교수직을 내놓고 예술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정부 당국자는 이 성명서를 머리로 읽지 말고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이 나라 교육정책이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얼마나 무자비한지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 대학 선정 평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지표는 전체의 20%를 차지한 ‘취업률’이다. 결국 취업률을 내세워 예술대학을 구조조정 대학으로 ‘낙인’찍어 버린 것이다. 교과부의 ‘지표 적용 일반화’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이 잔인하다.

예술계에서 ‘정규직 취업’이란 없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인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지난해 생활고로 목숨을 잃은 젊은 여자 영화감독이 이를 증명하지 않았던가. 교과부의 취업률은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 정규직 취업률로만 산정되기 때문에 예술대학들은 근본적으로 정부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이번 사태는 결국 정부가 예술대학을 죽인 것이다. 예술가의 길을 택한 학생들의 꿈을 죽인 것이고,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 나라 예술가들의 자존심까지도 무참하게 짓밟은 것이다.

예술대학 사태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예술대학 취업률 평가에 대한 ‘부당성’은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예술대학 보직자들과 각 예술분야 대표교수들이 교과부를 수차례 방문해 경고했고, 성명서도 전달했다.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 있었음에도 의견을 묵살한 것이다. 이런 교육행정으로 어떻게 세계적인 교육경쟁력을 갖춘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번 사태에 대해 교과부 담당관은 “이미 발표된 평가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다. 내년부터는 취업률 산정에서 국세청 자료도 연계해 1인 창업자나 프리랜서 등도 취업자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땜빵’ 대책을 내놓았다. 이보다는 교육정책의 최고책임자인 교과부 장관이 근본적이며 장기적인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현재 예술대학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단일 예술대학들은 정부의 재정지원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고, 종합대학 속의 예술단과대학들은 학내에서 구조조정 1순위에 올라 있다. 학교 전체의 취업률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정원을 줄이고 폐과를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모처럼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있는 한류 드라마, 영화, 음악, 디자인, 소설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경향신문 2011.10.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022315435&code=9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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