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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Art Talk] 취향을 알면 작품이 보인다

이명옥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미술과 가까워지는데 유용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술에 낯가리는 초보자들을 위한 맞춤용 감상법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선택해 공부하면 미술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취향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여주인공 테레사는 카페에서 토마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테레사가 토마스를 운명의 남자라고 확신한 근거는 독서 취향에 있었다. 테레사에게 책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 짓는 표식이며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는데, 토마스는 그녀가 일하는 카페 손님들 중에서 탁자에 책을 펼쳐놓은 유일한 남자였다.

영화 ‘타인의 취향’에 등장하는 사업가 카스텔라는 연극배우 클라라의 예술적 취향에 매혹당해 그녀에게 애정을 느낀다. 카스텔라는 취향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속물이지만, 클라라를 짝사랑하면서 자신의 미적 취향을 발굴하고 타인의 취향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한 인간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취향은 미술 감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특히 미술에 갓 입문한 초보자에게 취향은 절대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초보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들을 감상한다고 가정해 보라.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미술 감상이 즐겁기는커녕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종내는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취향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미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감하기 쉬운 영화나 대중음악 장르를 생각하면 미처 몰랐던 자신의 미적 취향을 알 수 있게 된다.

독자는 다음 중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가? 호러, 스릴러, 멜로, 전쟁, 웨스턴, 하드보일드, 판타지, 공상과학, 필름느와르, 코미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음악 중에서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가? 컨트리, 록, 팝, 발라드, 리듬 앤 블루스, 재즈, 샹송, 칸초네, 힙합, 트로트 등.

미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새롭고 혁신적인 미술, 어떤 사람은 편안한 주제에 색채가 아름다운 그림, 어떤 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 또 다른 이는 풍경화, 혹은 인물화, 추상화를 좋아하는 등 미술 취향도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 잡지의 페이지를 무심코 넘기다가, 또는 명화달력이나 화집을 보다가 ‘필(feel)’이 꽂히는 미술 작품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나의 감성을 종처럼 댕∼댕∼댕 울리는 그 작품이 바로 내 취향의 미술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도 예술이란 ‘상호 교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스스로 일깨우는 것, 그렇게 자신 안에 감정을 불러낸 후에는 움직임, 선, 색채, 소리, 또는 언어로 표현된 형식을 통해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그들이 자신과 동일한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활동이다.”

마음에 끌리는 내 취향의 작품을 발견했다면 이제부터 실전이다. 자료를 구해 예술가와 작품 배경 등을 공부하고 전시회가 열리면 미술관을 방문해 관람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미술과 소통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 취향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는 미술 감상법을 통해 전문가 수준의 안목에 도달했던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을 꼽을 수 있다. 스탕달은 늘 자신의 취향을 믿고 따랐다고 글에서 밝혔다. “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3년간 지내며 언제나 혼자서 그들(치마부에, 조토, 마사초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을 찾아다녔다. 온갖 뜬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는 안내인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남들과 비교해 자신의 미적 취향이 수준 미달이라고 자기 폄하할 필요는 없다. 취향은 각자의 몫이다. 학습과 경험을 쌓으면 고급 취향으로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취향의 발굴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게 하고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에 따르면 취향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취향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동일한 취향과 접촉하기 때문에 (인격이) 함양되는 것이고, 또한 이질적인 취향과 만나서 계발되는 것이며, 높은 취향에 매료되기 때문에 향상심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 운명의 7할 이상은 이 취향의 발달로 인한 것이므로 취향이 고립되어 말라죽게 된다면 세계의 진보는 멈추게 될 것이다.”

◇And는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겸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의 미술 칼럼 ‘Art Talk’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국내외 작품과 작가, 미술 애호가들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미술 길라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관장은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다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예술계의 대표적 베스트셀러 작가로 ‘팜므 파탈’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 ‘그림 읽는 CEO’ 등 다수의 저서를 냈습니다.

-국민일보 2011.9.16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355473&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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