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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미술, 과학을 만나다

박우찬

미술은 눈으로 보는 예술이다. 미술은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지난 이 만여년 동안 미술은 공간과 물체를 시작으로 운동, 명암, 빛, 리얼리티, 사차원 그리고 가상현실까지... 미술은 열정적으로 세계를 보아왔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풍성한 미술의 역사란 미술이 주변 세계를 열정적으로 보아온 결과물이다.


지난 이 만여년 동안 미술은 네차례의 시각적 혁명을 겪었다. 미술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원근법, 사진, 복제기술, 컴퓨터였다. 특히 렌즈라는 기계 눈의 등장은 인간의 보는 방식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람과 대상 사이에는 렌즈라는 기계의 눈이 굳건하게 자리잡았고 인간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인식해나가기 시작했다. 기계 눈의 도움을 받은 미술은 공간과 물체를 시작으로 운동, 명암, 빛, 리얼리티, 사차원,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열정적으로 관찰하여왔다. 그 결과로서 서양의 다양한 근현대미술이 탄생하였다. 


그동안 우리의 미술교육은 지나치게 감성 중심적인 측면에서 미술에 접근해왔다. 물론 감성교육은 미술을 매우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감성교육만으로는 서양의 다양한 근현대미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서양의 근현대미술은 새로운 과학,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미술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근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에 접근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미술, 과학을 만나다”는 미술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원근법, 사진, 복제기술, 컴퓨터라는 미디어와 그것들이 인간의 보는 방식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 결과로서 만들어진 다양한 미술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연구이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맥루한의 말처럼 모든 미디어(media)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미디어가 달라지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도 변화한다. 미디어의 영향은 메시지와 인식방식의 변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는 나아가 예술이 된다. 매체가 바로 새로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사진은 사진예술로, 컴퓨터는 컴퓨터아트로, 비디오는 비디오아트로, 레이저는 레이저아트로... 미디어는 그 본연의 기능을 뛰어넘어 예술이 되었다. 앞으로 등장할 미디어도 그러할 것이다. 



15세기 등장한 원근법은 르네상스 미술이라는 사실주의 미술을 탄생시켰고, 르네상스의 사실주의 미술은 인상주의 미술이라는 근대미술이 나타나기 전까지 사 백년 이상을 서양미술을 지배하면서 리얼리즘 미술의 전통을 굳건하게 세웠다. 그러나 19세기 과학적인 빛의 연구(광학)와 사진의 출현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미술의 몰락을 가져오고 인상주의 미술이라는 과학적인 근대미술을 낳았다. 사진의 영향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화면의 균질성과 복제가능성 그리고 순간적인 시간의 포착 및 비개성이라는 사진의 제특성은 20세기 미술의 역사까지도 바꾸어버렸다.  



20세기의 미술은 과학적 세계관에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근대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요소환원주의이다. 알고자 하는 대상을 가장 작은 단위로서 쪼개고 난 후 그것들을 재조합하여 일련의 법칙을 밝혀내는 것이 요소환원주의의 특징이다. 19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선구자 세잔은 형태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하여 모든 자연의 형태를 원기둥, 구, 원추로 환원시켰다. 세잔의 뒤를 이어 피카소는 세잔이 단순화한 원기둥, 구, 원추를 더욱 단순한 형태로 환원시켜 입체덩어리(큐브)로 만들어 입체주의미술을 탄생시켰다. 몬드리앙과 말레비치는 피카소가 단순화한 큐브(Cube)를 면으로 더욱 더 단순화시켜 추상미술을 탄생시켰다. 과학적 분석주의와 기능주의적 세계관이 20세기 추상미술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미술의 역사란 이미지를 생산하고 다루는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잘 훈련된 손과 기술이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기술개발은 시각예술의 환경을 급속히 변화시켰다. 사진과 컴퓨터의 자유로운 사용은 누구나 이미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카메라, 컴퓨터가 이미지를 포착하고 재현하고, 변조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이미지는 미술이라는 한정된 분야로만 한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 미술 고유의 분야였던 이미지의 생산과 분석은 오늘날 과학, 철학, 의학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오늘날 하이테크를 많은 쓰는 과학자나 의사, 기술자 등이 미술가 못지않게 새로운 이미지의 생산자가 될 확률이 높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누구나 이미지를 생산하고 조작가능한 시대가 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미술을 주도하게 될까? 아마 아인쉬타인같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이 강의는 필자가 2002년 출간한 『미술은 이렇게 세상을 본다』(도서출판 재원)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2004.4.9(금) KA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특강을 가졌었다.



박우찬(1961- ) 중앙대 문화예술학 석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학예연구사 역임. 현 대구시립미술관 건립전담관,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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