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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본 현대미술 전환점의 검증 '모노파-재고'

일본 현대미술 전환점의 검증 '모노파-재고'

_ 2005.10.25 - 12.18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오사카의 국립국제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모노파-재고(もの派-再考)'전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까지 일본 현대아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동향을 간주되었던 '모노파'를 재검토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으로 성찰하려는 것이다. 17인의 작가가 참가했으며 작품 수는 대략 60점 정도로 구성되었다.


‘모노파’ 작품의 특징은 종이와 나무, 돌, 철판 등의 소재들을 전혀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 세키네 노부오(関根伸夫)의 <위상-대지>(1968년)의 경우, 지면에 직격 2.2 미터에 깊이 2.6미터의 굼어을 파고, 파인 구멍에 같은 크기의 원기둥을 만들어 대비시켰다. 또한 코지미즈 스스무(小淸水漸)의 <종이2, 改題) 종이>(1969년)는 커다란 입방체의 돌 2개가 한 장의 종이 봉지에 둘러싸여있다. 다른 작품을 살펴보면, 큰 입방체의 철도의 받침목이 대량으로 펼쳐져 있거나 철판 위에 커다란 돌이 놓여 있는 등, 소재 그 자체를 가져왔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많았다. 사물이 가진 개념성을 벗겨내어 한 사람의 새로운 인간이란 시점으로 사물 자체와 접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 표현이었다. 그들에게는 특정한 그룹이나 선언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모노파’란 말은 단지 같은 시기에 같은 경향으로 제작했던 일군의 미술가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이론적 뼈대는 당시 일본에서 철학을 배웠던 한국인 아티스트로, ‘모노파’의 대표적인 멤버이기도 했던 이우환에게 의거하는 부분이 크다. 동시대에 서구에서 발흥했던 콘셉추얼 아트와 랜드 아트, 특히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와 비교되는 부분도 있지만, 작가와 소재의 관계성에 있어서 독자적인 부분이 보이기 때문에 서구의 동향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서 놀랐던 것은 작품의 크기였다. 물리적인 크기를 비교한다면 보다 거대한 작품들이 미술사 상에 많이 남아 있겠지만 전혀 가공되지 않은 목재와 돌, 숯 덩어리 등이 늘어선 모양에는 기묘한 박력과 긴박감이 있었고, 보는 사람의 뇌리에 물리적인 크기 이상의 인상을 남겨놓았다. 또한 전혀 가공되지 않은 소재가 가진 생생한 존재감 또한 두드러진 특징이었는데, 오늘날 유행하는 세련된 그래피컬한 작품에 길들여진 시선에는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번 전시회의 큐레이터인 나카이 야스유키(中井康之)는 기자간담회에서 “1995년 이후, 일본의 현대 아트 전체가 흥미주의랄까, 시각적 쾌락의 방향으로 과도하게 기우는 경향이 있다. 흥미는 있지만 서구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35년 전의 일본에 이와 같은 오리지널한 미술운동이 있었다는 점을 알리는데 의의가 있다.”고 했는데, 이와 같은 의도는 성공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랐던 것은 제 1전시장의 모습이었다. 정설과는 다른 작품군이 전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설명은 1968년 10월에 발표된 세키네 노부오의 <위상-대지>를 모노파의 시작으로 간주했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품에 앞서서 1968년 4월에 개최된 ‘트릭스 앤 비전전’과 이 전시회에 출품자인 다카마츠 지로(高松次郎)의 작품을 모노파의 맹아로 생각해서, ‘트릭스 앤 비전전’의 출품작품을 전람회의 모두에 배치해 놓았다. 이와 같은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람회에서 과거의 미술동향을 재검증하는 논의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전한 것이며, 이와 같은 도전성이야말로 전람회를 개최하는 의의가 아닐까. 이 점에 대해서는 이번 전시회의 팸플릿에 나카이씨의 면밀한 조사와 해석을 담은 글이 실려 있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모노파의 시대적 배경

그렇다면 어째서 ‘모노파’와 같은 움직임이 일어났던 것일까. 1968년에서 1970년대 전반기는 이른바 베트남 전쟁의 충격이 있었고 카운터컬처가 융성했던 시대였다. 일본에서는 학생운동이 격렬해졌고 기성의 가치관에 대한 회의가 점증했다. 동시에 고도경제성장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으며 그 상징적인 이벤트가 1970년에 개최된 오사카 만국박람회였다. 물질문명의 극단화와 기성개념에 대한 회의, 그리고 일본과 동아시아에 공통적인 애니미스틱한 가치관이 교착했던 시기에 일본이란 극동의 섬나라에서 ‘모노파’라는 오리지널한 미술운동이 탄생했던 것이다. 평범한 듯 하지만 작품을 직접 대면해보면 이런 분위기를 실감할 수가 있다. 앞서 나카이씨의 발언에서처럼 최근의 흔해 빶니 스타일리쉬한 기획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모노파-재고’전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모노파’를 동시대 감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신선한 놀라움과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노파를 동시대 감각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도 단순한 회고로 끝나지 않을 재발견이 있을 것이다. 큐레이터의 의도와 열정을 구석구석에서 감지할 수 있으며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동시에 이후로도 중요성이 증대될 전람회인 것이다.



고부키 다카후미(1964- ) 잡지 『피아』의 예술담당 편집자·기자로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서 미술관계의 집필활동과 큐레이션 활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다.


* 번역: 남도현(장편소설 『Y를 찾아서』로 작가세계 신인상 수상. 현재 기고와 번역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카이 다케시의 『니체의 눈으로 다빈치를 읽다』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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